기획특집 : 유사석유제품 근절 원년
1. 유사석유제품 사용자 처벌 규정 신설 배경과 의미 / 이병욱
2. 유사석유제품 시민감시단 발족의 의미 / 이은영
3. 유사석유제품 유통 실태 / 김동길
유사석유제품 시민감시단 발족의 의미
이은영_소비자시민모임 미래자원실장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에서는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고, 이미 우리 사회에 폭넓게 침투해 있어서, 이제는 올바른 행위가 오히려 예외적인 일로 인식될 정도이다. 경제활동에서 부패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기 보다는 매번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변명하기 일쑤다.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각종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사건들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이런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주변 상황만 겨우 파악하곤 한다.
누구나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획득하면서도, 내놓아야 할 것들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정정당당하고 투명한 경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경제활동의 주요 목표였던 상품과 서비스의 정상적인 거래가 더 이상 존중되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노력 없이 부를 얻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은밀한 뒷거래, 위법적인 사업 등을 통해 업어내는 부당이득이 대부분의 기업자와 경영자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된 것이다. 사기꾼 경제가 일상화 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라도 사기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점에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
소비자들은 자기 권익보호를 위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
주요시장에서는 공급자가 자기 제품 가격을 생산원가와 무관하게 소비자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책정하기도 한다. 소비자의 관심은 시대와 장소, 소득에 따라 변화하지만, 소비자의 일반적인 관심은 양, 가격, 안전성, 편의성에 있다. 소비자들은 과다한 가격, 가짜 상품, 위해한 상품에 노출되어 있으며 무가치한 상품들이 시장에서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시스템에서 소비자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없이 소비를 한다면, 소비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희생자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의 시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불공정거래행위, 사기성 거래행위들이 존재한다. 불공정거래행위의 세부 유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래조건의 차별, 거래상대방의 경제자유 구속, 경쟁방법에 있어서의 부당성이 포함된다. 수많은 불공정거래행위 중 사업자들은 막대한 부당행위를 취하면서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고 오히려 부당하게 소비자를 유인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유사석유제품의 판매를 들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석유제품 판매가격이 상승하면서 정상석유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한 유사석유 제품의 판매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유사석유제품은 일반적으로 페인트 등의 희석용으로 사용되는 공업용 용제에 석유화학제품인 톨루엔, 알코올 등을 단순 혼합하여 제조한 것으로, 시장에서는 주로 ‘첨가제’로 정상적인 유통경로가 아닌 비밀리에 길거리에서 불법 유통되고 있는 제품이다.
유사석유제품이 유통되는 이유는 석유제품간 세금을 차등부과로 인한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인데, 즉 비과세되는 용제를 세금이 높게 부과되는 자동차용 연료로 불법적으로 제조에 사용하는 경우 세금격차만큼 막대한 부당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량용 연료에 대한 세금 비율이 매우 높아 실제로 유류 중 경유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OECD 주요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유사휘발유의 불법 유통으로 인한 부당 이득 액은 막대할 수 밖에 없다. 유사석유제품의 경우 비밀리에 불법 유통되고 있고 그 거래 규모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여러 정황들에 비추어 막대한 양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용제의 소비는 2001년 이후부터 매년 급격히 증가하는 반면, 휘발유 차량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2002년 이후 휘발유 소비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어 불법 유사석유의 유통이 비밀리에 성행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정부의 자료에 의하면 2005년 기준으로 유사석유제품의 유통물량은 676비럴, 이로 인한 탈세액은 약 1조원의 규모일 것이라고 한다.
유사석유 제품 판매의 불법유통은 소비자, 동종기업, 정부에 모두 피해를 주고 있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차량의 수명 단축과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있어,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석유업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부당한 이익에 의한 고객유인으로 불공정거래 행위로 볼 수 있고, 정부의 입장에서는 탈세로 인한 국재 재정 수입의 감소 등의 문제점이 있다.
유사석유는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측면에서 소비자 권익을 침해한다.
이러한 유사석유제품의 판매로 인한 문제는 석유제품의 불법유통의 측면에서 주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상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유사석유제품 판매의 문제는 소비자보호 측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유사석유판매 그 자체가 불법행위이며, 사업자들이 비밀리에 암거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공정거래나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논할 여지도 없는 불법행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유사석유제품의 판매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고, 매년 그 규모가 증가하고 있으며, 합법적인 사업장에서도 유사석유제품을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를 기만하고 부당 이득을 챙기는 행위들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탈세 차원을 넘어선 소비자 보호 측면, 소비자를 기만한 불공정거래 행위 측면에서 행위의 윤리성 측면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23조 조항에서의 거래수단의 기만, 비윤리성에 따른 거래 조건 등을 기본 개념으로 한 공정거래저해성의 행위 유형 중 부당한 고객유인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의 부당한 고객유인 조항은 기만 또는 오인 유발에 의한 소비자의 피해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한 경쟁의 왜곡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법 적용대상이 줄어들고 경쟁업자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며, 상대적으로 소비자의 보호 차원에서의 금지 논리가 약한 편이다.
실제로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공급하는 상품 또는 용역의 내용이나 거래 조건 기타 거래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실제보다 또는 경쟁사업자의 것보다 현저히 우량 또는 유리한 것으로 소비자를 오인시키거나 경쟁사업자의 것이 실제보다 또는 자기의 것보다 현저히 불량 또는 불리한 것으로 고객을 오인시켜 경쟁사업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소비자를 유인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한다면, 부당한 고객 유인 관련 조항은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소비자의 오인을 유발하는 행위,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여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소비자를 기만하고 피해가 직접적으로 소비자에 이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또한, 소비자보호법 제10조는 ‘사업자의 불공정한 거래조건이나 방법’과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고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다.
유사석유제품의 경우, 분명히 값싼 가격으로 차량용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제품인 것처럼 소비자를 유인하였고, 시장의 거래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물론 정상적인 휘발유나 경유보다 성능이 더 뛰어나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유사석유제품으로 인해 상대 기업이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사석유제품을 판매한 사업자들은 유사석유제품은 정상적인 차량의 연료와 성능은 거의 같으면서도 가격은 훨씬 싸다고 소비자를 기만하고 유인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가 이제는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 이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 동안 유사석유 제품 불법 유통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에서는 석유제품 취급 업소 단속을 강화하고, 신고포상제도를 운영해 왔다. 최근에는 신고 포상금을 대폭 인상하고 신고범위도 유사석유로 확대하여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에 의한 불법유류 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법 위반자의 처벌이 가볍고, 유사석유제품은 일반 석유제품보다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단속이 어려워 명백한 불법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이 쉽지 않았다. 그 결과로 기존의 제조, 판매업자 처벌에 그치던 것에서 오는 7월부터는 유사석유제품임을 알고 구매하는 사용자에게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사용자 처벌 조항이 시행되게 되기에 이르렀다. 즉, 사업자들이 부당이익을 얻기 위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제품인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케 하여 유사석유제품임을 알고도 사용한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구매 행위에 막대한 금액의 과태료를 물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사용자 처벌 조항은 유사석유제품의 암거래를 더욱 부채질할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더욱 치밀하게 유통을 할 수도 있다.
사업자들에게는 큰 이윤이 보장되지만, 처벌은 그에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소비자들만 힘든 상황에 처한다. 현명한 소비자는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시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소비자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소비자는 자신의 권리를 잘 알아야 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또한 소비자들은 자신의 구매행동에 더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유사석유제품의 사용이 왜 불법인지, 사용한 소비자에게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소비자들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업자들이 그들의 부당이익을 챙기기 위해 소비자를 이용하고 기만하는 행위를 모른 척 지나쳐서는 안 된다
서민들이 이전과 다른 소비 행동을 하는 것이 시장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 명의 소시민이 거대한 공급자들의 이해관계에 대항해 무모한 싸움을 하기 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이들과 연합해 조직적으로 함께 대항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보이코트의 형태로 대항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시민들이 이전과 다른 소비행동을 하는 것은 시장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불법적인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단결이며,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이다. 유사석유제품의 불법유통을 근절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정부의 강력한 처벌보다는 소비자들의 올바른 선택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유사석유제품의 근절을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불법제품을 감시하고 소비자가 합법적인 제품을 선택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들의 단결이 시장에서 어떠한 위력을 나타내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소비자나 시민들의 책임 있는 소비행동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 기업의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왜 소비자들이 불법적인 제품을 사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제품에 부과되는 과다한 세금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조정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가격체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하려는 정부의 의지 없이 소비자들의 책임 있는 선택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좋은 품질, 합리적인 가격, 고객을 보호하고 책임지려는 윤리적인 경영을 전제로 할 때 소비자들은 그 기업을 신뢰하고 제품을 구매하게 될 것이다.
사업자들의 불공정거래 행위, 사기성 거래 행위와 같은 불법 거래는 그 방법도 더욱 교묘모해지고, 앞으로도 계속 성행할 가능성이 많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다시 반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거의 일에서 교훈을 찾아내어 오늘날은 물론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현대의 경제체제에서 일반 시민과 기업, 정부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유도하는 요인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들을 잊지 말고, 현재의 소비행동뿐만 아니라 미래의 소비행동을 하는데 있어서도 소비자의 권리와 책임을 주장하고 지킬 줄 아는 성숙된 소비주체로 시장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