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너지안보를 위한 석유산업 시설투자

최기련_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1, 세계 에너지산업의 구조변화 추세
지난 수년간 고유가시대를 맞이하여 세계에너지기업은 단기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종래 보다 더 큰 시장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어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소비자선호가 급격히 고급, 청정에너지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투자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 에너지기업 경영전략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기존의 사고(思考)영역과 신념체계를 초월한 글로벌 차원의 경쟁에의 대비이다. 기술체계와 산업형성과정의 차이에 기인한 에너지사업간 영역구분이 없어지고, 오직 단기 수익성 강화와 장기 경쟁력 확보전략이 무차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M&A(인수합병) 열풍, 거대복합 에너지기업 출현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 다른 주목할 사항은 국가/공권력의 에너지시장 개입의 증대이다. 자원보유국들은 보유자원 개발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국영기업의 역할을 강화하고, 나아가 세계시장에서의 주도권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국영기업의 Swing Producer(시장조절기능을 수행하는 과점 공급자) 역할 강화를 통해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확보가 가능하다는 에너지경제학 기본논리에 따른 것이다.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투자부담을 에너지개발과 이용과정에서 유발되는 초과이윤(Rent) 활용권한을 정부로부터 양허 받아 손쉽게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보유국 국영 기업의 역할강화는 당연히 민간부문과 에너지수입국 국가전략변화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수입국들도 최근 국영기업을 통한 기존 시장지배력 유지와 에너지안보 강화전략을 단기적 경제성 차원을 초월하여 추진하고 있다. 해외에너지도입경쟁력 확보와 국내시장 안정화전략수행자로서 Swing Producer 기능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에 바탕을 둔 Swing Producer의 경우, 비록 민간기업일지라도, 투자재원조달, 기술혁신 등을 주도하고 복합에너지산업 국제경쟁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결국 현 세계 에너지산업의 주요 특징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재원 조달경쟁이라 요약할 수 있다.

2. 에너지산업 투자소요와 경쟁력
세계에너지기구 (IEA)의 최신 전망(World Energy Outlook 2006)에 의하면 2005-2030년 기간 중 세계 에너지공급인프라 조성투자 소요액은 약 20조 달러(20,200 billion달러, 05년 불변가격 기준)로 추계되고 있다. 이 중 전력부문에는 전체투자의 56%가 소요되고, 석유부문에는 21.1%(4,266Billion달러), 가스부문에는 19.4%(3,925Billion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역별로는 개발도상국들이 전체투자의 52%를, 특히 중국이 18%를 소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투자소요 급증의 원인으로는 현 시점에서 최선의 에너지문제 해결개념으로 간주되는 “지속가능한 화석에너지”(Sustainable Fossil Fuel)체계의 도입경쟁 때문이다. 이 개념은 지금 주종 에너지로 자리 잡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 및 소비체계에 대한 기술혁신을 통해 어떤 대안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는 한계(Frontier)자원 개발을 통해 자원고갈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심해저 및 극지부존 석유/가스 자원개발, 오일 세일 (Shale)등 신 석유자원 활용, 그리고 무한한 석탄의 청정화를 통한 가스 및 액체연료(Clean Coal제품)생산 등을 통해 향후 50년 이상의 에너지제약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복합 에너지공급체계 구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고유가와 기후변화에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청정석탄 개발, 석탄가스화복합발전 확대, 원자력에너지의 재평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화석에너지 개념은 수요측면 변화와도 부합된다. 즉 가스연료와 네트워크 형태 에너지원에 대한 소비자 선호 증대, 환경문제에 대한 고려증대 현상과도 부합된다.

3, 우리나라 에너지기업의 대응방향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시장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감안하여 경제성을 일부 간과한 독특한 “에너지안보”체계를 오랫동안 유지하여왔다. 지난 90년대 후반기까지 시행되어온 석유제품의 “소비지 정제주의”원칙과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예비전력설비유지정책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는 과잉투자, 정부규제의 비효율성, 독과점체재 허용 등에 기인한 속칭 “안보비용”지불을 감수하고 에너지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논리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정부실패”를 유발할 가능성이 컸다. 이에 우리나라는 지난 90년대부터 규제완화, 민간주도 시장논리 강화, 경쟁체재 도입을 위해 정책의 일대 구조개편(?)시행하여 기존 “에너지안보”위주 산업전략을 철폐하였다.

그러나 최근 고유가시대의 정착 등에 따라 또다시 에너지안보가 가장 중요한 전략요소가 되고 있어 또 다른(?) 정책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에너지안보 달성을 위한 투자여건조성이 시급한 현안과제가 되고 있다. 이 경우 시장논리에 의거한 정책목표 달성의 한계극복문제가 정책대안이 논의의 중심이 된다. 시장논리를 초월한 재정투자의 확대, 독과점기업 혹은 국영기업 허용여부, 시장선점을 통한 ‘영역의 경제”(Economy of Scope)효과추구 등 ”차선의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세계 석유소비 7위인 우리나라의 석유산업은 정유부문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 현 정제능력은 2600만b/d 로서 세계 5위 수준으로 에너지 안보를 위한 “소비지 정제주의”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간 과잉투자와 정부특혜 논란을 유발해온 이러한 설비수준은 세계적인 정유시설 부족이 현 고유가사태 지속의 한 원인이라는 점에서 향후 에너지안보에 기여하는 순기능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현 경영구조는 복합에너지산업으로의 구조개편 등을 통한 장기적인 지속성장과 에너지안보에의 기여도 확대를 보장하지 못 한다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정유부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수익극대화가 가능한 상류부문 진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몇 년 간 고유가사태로 우리 정유산업 수익구조는 개선되어 왔다. 그러나 2006년부터 지속성장세가 주춤하는 느낌이다. 06년 정유사 매출액은 전년대비 14% 증가한 약 71조원이나, 영업이익은 14% 감소된 2조9400억 원으로 보고 되고 있다. 이에 영업이익률은 1.6% 수준이다. 더구나 그 수익의 70%가 비-정유부문(석유화학, 윤활유 등)에서 창출되고 있다. 이에 반해 정유사 매출의 80%가 정유부문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06년 국내 정유부문 매출 중 수출비중이 51%를 차지하고, 수출단가의 지속적 상승(범세계적 정유설비 부족에 따른)으로 정유부문 이익창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복합에너지산업화 등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투자재원 조달에의 한계가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석유산업 지속성장을 위한 정책과제로는 다음과 같이 대별된다.
- 석유제품 부과 조세율 조정을 통한 제품가격 안정화
- 고도화시설투자 강화 등 적정규모 투자수준 유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실질 가격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높은 세금비중 때문이다. 휘발유의 경우 세금비중이 60% 이상이다. 이 결과 휘발유소비자 가격을 1인당 국민소득으로 나눈 뒤 한국을 100으로 놓을 때 일본 31, 미국은 14,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46에 불과하다. 지난해 유류세로 21조4571억 원을 거둬들였다. 전체 국세 세입의 18.2%에 이른다. 따라서 고유가의 부정적 파급효과가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다. 원유관세 완전철폐의 국민경제에 미치는 후생효과가 1,25배라는 일부 연구결과에 비추어 이제는 석유제품 부과조세 세율인하가 국민후생 증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최근 석유소비 증가세의 하락도 결국 불합리한 고가격 수준에 일부 근거한다고 주장도 있다. 그러나 관련 정부당국은 아직까지는 세율인하와 징수된 세금의 에너지부문 전용투자를 거부하고 있다. 조만간 적정수준의 검토를 거친 합리적 조정을 기대한다.

이에 반해 적정 투자수준 유지는 이제는 정부투자보다 민간기업의 자발적 선택영역에 있는 과제이다. 목적세 행태의 석유세금으로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석유부문에 충당 가능한 세수로는 3.8% 수준에 불과한 자주 공급률 제고투자에 배정하기에도 모자란다. 중국 등 경쟁국에 크게 못 미치는 정부투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에너지안보시책을 추진하기에는 애당초 한계가 있다. 이에 에너지안보와 민간투자의 경제성 확보라는 두 가지 목적이 동시에 달성될 수 있는 새로운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석유제품의 수출확대를 위한 설비투자, 경질 석유제품 수율확대를 위한 정유부문 고도화설비투자, 정유부문 투자수익의 원유개발을 위한 상류부문 투자 등을 지속, 확대할 정책 프레임 정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기존 석유산업이 가지는 국제경쟁력 요소의 확대발전방안을 우선 검토해야한다. 예컨대 우리 석유제품 수출채산성은 세계적인 지난 10여 년간의 정유설비투자 부족으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석유제품은 이미 우리나라 5대 수출품이다. 이에 적정 규모의 수출능력을 가진 정유설비 유지는 석유제품 수급안보에 기여할 뿐 아니라 에너지안보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는 현재 석유제품이 원유보다 국제교역을 통한 시장안정 달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소비자는 원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석유제품을 소비한다. 소비자가 느끼는 석유위기는 제품수급위기일 뿐이다. 해마다 여름철이 닫아오면 미국의 휴가철 휘발유 부족 가능성을 염두에 둔 원유가격 상승이 있어왔다. 이는 석유제품 수급안정이 원유시장 안정, 나아가 에너지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석유제품 수급 안정, 나아가 해외시장 확대를 위한 투자여건 조성이 우리나라로서는 현 시점에서 가장 손쉽고 경제적인 에너지안보대책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준비사항은 민간 정유회사들의 정유부문 수익성 강화를 위한 여건조성 대책이다. 내수부문 정유사업 채산성 확대가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 이를 위해 당연히 획기적인 석유관련 조세정책 조정이 필요하다. 이 경우 더 이상의 석유제품 실질가격인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세조정이 거의 유일한 정책수단이다. 일정수준의 원유/석유제품 간 관세차등화폭(현재 4%)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간의 자발적 투자증대에 의한 간접적 “소비지 정제주의 효과”를 유지하고 나아가 에너지안보능력을 제고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채산성을 확보한 에너지산업 만이 복합 에너지산업으로 발전적 구조전환을 추구하여 글로벌 차원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글로벌 에너지확보전쟁에 즈음하여 모든 국민들은 어느 수준의 단기 에너지안보비용을 지불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 안보비용은 공공투자 확대를 위한 세금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가장 경제적인 것이 민간의 자발적 투자를 유도하는 여건조성이다. 조세 및 관세부과를 통한 시장실패보완이 최적 대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투자 확대를 위한 전재조건인 효율적 에너지 조세/관세부과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모두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진지한 연구검토가 조속히 시행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