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는 왜 불에 탈까?


이 덕 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불’은 탄소와 수소가 다시 만나 산소와 결합하는 것

인간은 지구상에서 불을 사용하는 유일한 생물종이다. 인류가 불을 처음 사용한 것은 50만 년 전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불은 추위를 막고, 어둠을 밝히고, 음식물을 익히는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우리가 30억 년에 가까운 진화를 통해 등장한 수많은 생물종 중에서 가장 뛰어난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우뚝 서게 된 것도 불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별다른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에게 불은 더 없이 훌륭한 생존 도구였고, 인류 문명의 발달을 촉진시킨 가장 중요한 촉매였다.

불은 ‘연료’라고 부르는 화학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빠른 속도로 결합하면서 많은 양의 열과 빛을 방출하는 연소 현상을 말한다. 식물의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셀룰로오스가 주성분인 낙엽이나 장작이 가장 오래 전부터 알려진 연료였다. 순수한 탄소로 구성된 석탄이나 탄소와 수소의 화합물인 탄화수소로 구성된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는 비교적 늦게 연료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런 연료는 연소에 의해 물과 이산화탄소와 같은 산화물(酸化物)이 된다.

연료가 타는 것은 그런 산화물이 화학적으로 훨씬 더 안정하기 때문이다. 본래 산소는 화학적으로 친화력이 매우 큰 원소여서 지구에 존재하는 산소는 대부분 다른 원소와 단단하게 결합된 산화물로 존재한다. 물, 이산화탄소, 실리카, 금속 산화물 등이 모두 그런 산화물이다. 물론 산소와 결합되어 있는 산화물들은 더 이상 연소시키기 어렵다. 그러니까 지구상에 연소시킬 수 있는 연료와 연소에 필요한 산소가 존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햇빛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광합성을 하는 녹색식물에 의한 지구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다. 석탄과 석유는 그렇게 만들어진 탄수화물이 분해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불은 그렇게 만들어진 연료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서 화학적으로 가장 안정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자연 현상이다. 녹색식물의 광합성 때문에 강제로 이별했던 탄소와 수소가 다시 산소와 만나 결합하는 것이 ‘불’이라는 뜻이다.


연료가 불이 붙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연료가 산소와 만나기만 하면 곧바로 불이 붙는 것은 아니다. 연료 분자가 산소와 결합하려면 상당한 양의 에너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이 붙으려면 연료의 온도가 충분히 높아야만 한다. 사용하는 연료보다 더 쉽게 연소되는 연료를 사용해서 만든 불씨나 고압의 전기에 의해서 생기는 전기 방전(放電)이 부분적으로 연료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이 된다. 물론 연소가 진행되면 불씨에 의해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가 열과 빛의 형태로 방출되고, 그렇게 방출된 열이 남아있는 연료의 연소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연료에 불이 붙는 온도(발화점)는 연료 분자의 크기가 커질수록 높아진다. 분자의 구조가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연료의 발화점은 연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기체 상태의 연료는 온도를 높이기도 쉽고, 산소와 쉽게 혼합되기 때문에 불을 붙이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액체나 고체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연료 전체의 온도를 높이기도 어렵고, 연소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해주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로 만든 ‘심지’를 이용하기도 하고, 액체를 작은 구멍을 통해 분사시켜서 불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고체 상태의 연료는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표면적을 넓혀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낙엽이나 장작과 같은 경우에는 미리 가열해서 수분을 모두 제거해주어야만 불이 붙게 된다.

메탄, 에탄, 프로판, 부탄과 같은 작은 탄화수소의 경우에는 상온에서 작은 불씨만 있어도 폭발적으로 불이 붙는다. 분자의 구조가 단순해서 산소와 쉽게 결합하기 때문에 온도가 높지 않아도 연소가 잘 일어난다. 사실은 연소가 너무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기체 상태의 탄화수소를 연료로 쓰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연료가 새나가면 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휘발유는 액체이지만 분자사이의 인력이 크지 않아서 쉽게 기체로 변한다

연소 과정에 필요한 산소의 양은 연료 분자의 크기에 비례해서 늘어난다. 그래서 프로판과 부탄이 주성분인 LPG을 쓰는 경우에는 주성분이 메탄인 도시가스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산소가 혼합되도록 연소기의 노즐을 바꿔주어야 한다. 연소에서 방출되는 열의 양도 역시 연료 분자의 크기에 비례해서 커진다. 많은 양의 음식을 조리하는 식당에서 도시가스 대신 LPG를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화학적으로만 보면 더 많은 동력이 필요한 대형 버스에는 압축천연가스(CNG)보다 LPG가 더 적절한 연료인 셈이다.

탄소의 수가 많은 탄화수소로 구성된 휘발유는 상온에서 액체이지만 분자들 사이의 인력이 충분히 크지 않아서 쉽게 기체로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을 때 심한 냄새가 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액체의 휘발유가 연소되려면 휘발유 전체의 온도가 충분히 높아야 하고, 많은 양의 산소를 효율적으로 공급해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액체의 휘발유가 아니라 표면에서 기체로 변한 휘발유 성분에 불이 붙게 된다. 일단 증발한 휘발유 기체에 불이 붙게 되면 방출되는 열 때문에 주위의 온도가 올라가서 더 많은 휘발유가 증발되고, 불은 빠른 속도로 휘발유 표면 전체로 퍼져나가게 된다.

휘발유 표면에서 불이 번지는 속도는 주위의 환경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밀폐되어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는 휘발유의 연소에서 방출되는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휘발유 표면 전체에서의 증발이 빨라진다. 그런 경우에는 불이 삽시간에 휘발유 표면 전체로 퍼져나가서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휘발유용 엔진에서는 휘발유를 작은 구멍을 통해 분사시켜서 한꺼번에 폭발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준다. 그러나 운동장처럼 열이 주변으로 쉽게 확산되는 곳에서는 불이 붙더라도 휘발유 표면의 증발 속도는 크게 빨라지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는 휘발유에 붙은 불이 번지는 속도가 아주 느려지게 된다. 실제로 휘발유의 불이 번지는 속도는 바닥의 온도나 기온 등의 많은 요인에 의해 달라진다.


많은 양의 열을 얻으려면 특수한 연소장치가 필요

그러나 심지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연료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연소 속도가 느리고, 방출되는 열이나 빛의 양도 적을 수밖에 없다. 많은 양의 열을 얻으려면 특별한 연소 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보일러나 자동차 엔진에서는 등유나 경유를 작은 노즐을 통해 분사시켜서 연소 속도를 증가시킨다. 그런 장치를 사용하면 대형 보일러나 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연료가 완전히 연소되지 못하게 되어 검은 매연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매연은 연료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된다.

연료가 연소되면서 만들어지는 불꽃의 색깔은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온도가 낮으면 붉은 색으로 보이고, 온도가 높아지면 점차 노란색으로 바뀌게 된다. 촛불의 불꽃에서 옅은 노란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붉게 보이는 부분보다 뜨겁다는 뜻이다. 불꽃의 온도가 더욱 올라가면 푸른색이 도는 흰색으로 바뀌게 된다. 바짝 마른 장작을 태우면 아궁이가 하얗게 보이는 것도 온도가 높기 때문이다. 대장간이나 용접에서 사용하는 하얀 불꽃은 그 온도가 1천도를 넘어서 쇠를 녹여버릴 정도다.

탄화수소가 연소되는 경우에는 온도가 매우 높지 않은 경우에도 불꽃에 푸른색이 도는 경우가 있다. CNG나 LPG를 사용하는 가스 레인지의 불꽃이 그런 경우다. 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데도 푸른게 보이는 것은 연소되는 과정에서 탄화수소 가스가 분해되어 만들어진 CH2 조각 때문이다. 뜨거운 CH2 조각은 독특한 푸른빛을 방출한다. 물론 그런 조각도 결국에는 산소와 결합해서 산화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