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즐기는 와인이야기사


구 본 준 한겨레신문 기자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즐기든, 어떻게 즐기든 자기 맘대로인게 취미겠지요. 취미마저 남들 기준 따라가고 남들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 의식한다면 이미 취미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무엇이든 내가 좋은대로, 내 맘대로 즐긴다는 점이야말로 취미의 본질일겁니다. 그런데, 이 취미인데도 ‘허락받고’ 해야 하는 취미도 간혹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총기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사냥 같은 겁니다.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하는 취미도 있습니다. 뭐냐구요? 바로 햄, 그러니까 아마추어 무선통신입니다. 즐기는 것은 자기 맘대로인 취미이지만 이 취미를 즐기게 되는 공간이 바로 주파수를 다루는 전파영역이기 때문에 일정 절차를 밟아야 한답니다. 목소리로 하는 통신을 하려면 전화급, 또는 전신급 같은 정해진 과목을 시험을 거면 마음대로 즐길 수 있지요.
취미와 생활 중간에 있는 즐거움 가운데 식도락이 있습니다. 맛난 음식, 좋은 음식을 즐기는 것은 단순한 식생활을 넘어서는 취미의 영역이라고 봐도 좋을겁니다. 그런데 이 식도락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 식도락이 있습니다. 바로 와인입니다.
‘무슨 먹을 것 먹는 데 공부까지 해야하고, 그런 시시콜콜한 것을 따져가며 먹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물론 그렇습니다’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귀찮고 따지는 것 많은 음식을 그렇게 따져가면서도 사람들이 먹고 있을까요? 그건 바로 모르는 이들에겐 귀찮을 수 있고 하찮아보이는 그런 여러 가지 알아야 할 것, 따져야 할 것들을 챙기는 것이 오히려 훨씬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와인은 먹는 취미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배워가며 즐기는’ 대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성이 바로 다른 음식과 달리 와인에 사람들이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라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와인은, 매번 다른 것을 즐겨도 평생 다 즐길 수 없을 만큼 가짓수가 많습니다. 그걸 먹을 때마다 하나 하나 무언가 알아두는 게 와인을 즐기는 재미입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새로운 와인을 접하다보면 지리 공부, 유럽 문화 상식 공부가 절로 됩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와인을 즐기려면 이를 도와줄 책을 읽어보는 게 거의 필수입니다.
와인책들은 처음 보면 무척 어렵고 별 희한한 것들이 가득하다는 느낌을 주기 쉽습니다. 그리고 다루는 내용도 거의 교과서처럼 비슷합니다. 와인을 즐길 때 알아야 할 기초 상식을 핵심정리하는 식입니다.
개인적으로 입문서로 가장 권하는 책은 가장 재미있게 와인을 설명한다고 보이는 책인 <올 댓 와인>(해냄 펴냄)입니다. 지은이 조정용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와인경매’란 독특한 직업을 가진 분입니다. 와인책들이 너무 와인을 진지하게, 그리고 와인 마니아들만 알아먹을 수 있는 이야기로 끌어가는 경향이 강한데 비해 지은이 조씨는 일반인의 눈에 맞춰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만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단순히 정보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런지를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점입니다.
가령 거의 대부분의 와인책들은 각 와인별로 마시는 잔이 다른 점을 아주 단순하게 잔 그림과 와인종류만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설명을 마칩니다.
예를 들어 달콤한 와인의 경우 가느다랗고 긴 잔으로 마십니다. 그런데 왜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은 잘 안해주고 무조건 단 와인은 긴 잔으로 마신다고만 언급합니다. 단 와인을 마실 때에는 가느다란 잔을 쓰는 것은 우리 입에서 맛을 느끼는 기관인 혀의 특성 때문입니다. 혀에서 단 맛을 느끼는 부분은 혀의 맨 앞부분입니다. 그래서 혀 앞부분에서 와인을 집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잔을 가느다랗게 만드는 것이죠. 반면 일반 와인은 단맛, 쓴맛, 떫은 맛, 짠맛, 흙맛, 열대과일맛 등등 다양한 맛이 들어있기 때문에 보다 혀 전체로 넓게 받아들이도록 전의 입구가 넓은 것입니다. 듣고나면 당연하고 간단한 설명이지만, 이렇게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 이유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 댓 와인>은 보다 친절한 와인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슷하게 와인 교양상식을 정리하는 책으로는 국내 와인전문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분 가운데 한 명인 고형욱씨가 쓴 <와인견문록>(이마고 펴냄)이 괜찮습니다. 유명한 와인 산지를 직접 찾아가서 보고 느낀 것을 썼기 때문에 여행책 읽듯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에티켓과 상식으로 알아야 할 와인 상식에 초점을 맞춘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넥서스 펴냄)도 설명이 어렵지 않고 그림이 풍성해 처음에 보기 좋은 와인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차게 핵심을 정리해 아주 실용적인 책입니다.
기본적인 이론을 알아도 실제 매장에 나가보면 종류가 너무 많아 기가 질리기 쉽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 아예 제품 카탈로그 개념으로 와인 제품을 기준으로 구매가이드처럼 와인을 설명하는 책도 있습니다. 이름도 <와인구매가이드:손진호 교수의 절대 실패하지 않는 와인 구매 기법>(바롬웍스 펴냄)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들보다 더 쉽게 와인과 친해지는 책들이 있습니다. 바로 ‘만화’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와인 열풍이 분 만화왕국 일본에서는 많은 와인만화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국내에도 소개된 것으로는 <만화로 보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와인>을 먼저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기본 와인입문서를 만화로 구성한 책이랄 수 있습니다.
아예 와인을 소재로 하는 만화들을 읽는 것이 오히려 와인과 부담없이 친해지는 지름길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만화로 유명한 <맛의 달인> 가운데 74권(7권이 아니라!)이 와인편입니다. 지식과 재미를 함께 얻을 수 있는 만화로 검증된 작품이니 이 와인편을 보시고 재미있으면 다른 음식들을 다루는 다른 권들을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와인을 다루는 만화로 역시 가장 권할만한 것은 최근 인기가 높은 최신작 <신의 물방울>(학산문화사)입니다. 현재 7권까지 나와있는데, 와인을 놓고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요즘 와인 열풍에 힘입어 와인팬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필수 코스로 손꼽힐 정도입니다.
그런데, 만화책이 와인을 다루는데 믿을만한지 안심이 안되신다구요? 이 <신의 물방울>이 1인분에 10만원이 넘는 국내에서 가장 비싼 프랑스 음식점이자 국내에서 가장 와인리스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청담동 프렌치 레스토랑 ‘팔레 드 고몽’에서 새로 들어온 직원 교재로 쓰고 있다는 말씀을 대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