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미국



도 재 기 경향신문 문화부 차장·출판팀장


“오늘에 (한국과 미국)두 나라는 가장 긴밀한 관계에_적어도 한국 처지에서는_있다. 그러한 관계가 가까운 장래에 크게 달라질 것같은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지속되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근거도 별로 없다. 우리에게 미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새삼스런 질문을 다시 제기하는 이유는 미국의 행로와 사소한 선택마저도 향후 한반도 주민의 생존과 복지에 결정적인, 어쩌면 대단히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글은 모두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고 있다. 미국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글쓴이들의 고민도 함께 묻어난다. 놀라지 마시라. 두 글은 서로 30년의 시차를 두고 쓰였다. 앞 글은 1976년 손세일 당시 뿌리깊은나무 편집위원이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 썼다. 뒷 글은 2006년 `창작과 비평'(가을호)이 `미국이라는 우리의 난제'를 특집으로 게재하며 실은 취지문이다. 30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한 세대가 바뀌는 세월이다.

그러나 두 글은 하나같이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만큼 답이 복잡하다는 뜻이다. 우방이자 혈맹이면서도, 힘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제국주의자, 세계의 `경찰'이면서도 일방적 패권주의의 `폭군'. 우리에게 미국은, 근래 더욱더 이중적인 모습이다. 손 위원은 `성경과 추잉검'이란 윗 글에서 “성경책을 든 근엄한 선교사의 모습과 전쟁터에서도 추잉검을 씹으면서 곧잘 우스갯소리를 하는 미군병사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미국의 이미지는 너무나 복잡하다”고 말한다. 창작과비평도 `난제'라고 표현했다. 현대사를 전공한 박태균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는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에서 “한미관계를 규정하기위해 수많은 연구들이 진행됐으며, 수많은 이론들이 적용됐지만 한마디로 정확하게 규정하기란 쉽지않다”며 “(이 책에서)얻을 수있는 결론은 아쉽게도 한마디로 규정할 수있는 한미관계의 성격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복잡하다고 그저 밀쳐둘 수는 없다. 밤 사이의 나스닥과 다우존스 등락에 따라 우리 주가가 출렁인다. 미 행정부 관리의 말 한마디에 한국 언론이 들썩이지 않는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진행중이다. 세계화되면서 미국은 우리와 더 밀접한 존재가 되고 있다. 그렇다. 미국을 좀 알자,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술자리에서도 미국에 대해선 누구나 한마디씩 하지 않는가.

최근 출간된 `아메리칸 버티 고(Amercan Vertigo)'(앙리 레비/황금부엉이)는 미국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그야말로 현기증(vertigo)나는 미국을 다각도에서 살펴본다. 책 형식은 여행기다. `미국의 민주주의'란 명저를 쓴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토크빌이 걸었던 길을 레비가 2005년 1년동안 똑같이 탐사한 결과물이다. 레비는 현대문명 총합체인 뉴욕부터 잘나가던 산업도시에서 이젠 퇴락한 버펄로와 디트로이트 등 미국 전역을 발품팔았다. 유대인·아랍인·히스패닉 등 `인종 전시장' 미국의 많은 인종을 만났다. 사창가 쇼걸부터 최근 대선후보로 나선 힐러리와 배럭 오바마, 새뮤얼 헌팅턴, 프랜시스 후쿠야마, 워런 비티와 조지 소로스, 샤론 스톤, 우디 앨런 등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말에 자신의 식견을 버무려 레비는 미국을, 미국인을, 그들의 생각과 삶을 보여준다.

미국의 구석구석을 이처럼 광범위하고 다채롭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책은 드물다. 더 의미깊은 것은 보고 들은 것을 지식인답게 예리하게 분석·해석해낸다는 것. 유난히 많은 깃발들에서 `하나가 되려고' 애쓰는 미국을 전하고, 미국 최대 쇼핑몰 `몰 오브 아메리카'에서 자본주의의 승리와 함께 “유혹적이어서 더 위협적인 빅 브라더의 진면목”을 느낀다. 에버글레이즈 공원에서 자연관을 탐색하고, 길가 임시주택에서 개척자 정신의 유산을 끄집어낸다. “미국은 할리우드가 헤겔을 완전히 압도해버린 나라”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살고자 하는 각국 이민자들의 그 `역설적인 욕망'도 해석한다.

특유의 긴 문장, 수많은 인용, 인문학적 비유 등이 책읽기를 어렵게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더 되새김질하면 오히려 읽는 맛이,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저자는 100여쪽이나 되는 에필로그에서 미국 탐사기를 잘 정리해 놓기도 했다. 물론 프랑스인의 시각에서 미국을 봤다는 점은 인식해야 한다.

유럽인이 미국을 분석한 책은 2004년 나온 `Made in USA, 미국 문명에 대한 새로운 시선'(문학세계사)도 있다. 유명 문명비평가인 프랑스의 기 소르망의 저서로 유럽에서 미국을 바로 알자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만들어낸 `미국산 문명'을 `유럽산 문명'과 비교·분석해 그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미국을 해석한다. “친미적‘이라고, 한국을 다룬 부문에서는 단견을 보인다는 일부의 비판도 있지만, 화제를 모았다.

사실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는 미국이 더 중요하고, 의미가 깊다. 그러나 국내 저자들의 책은 종합적이기 보다는 한 분야만을 다룬 게 대부분이다. 우리는 아직 번역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식 수입국'인게 현실이다. 국내 저자들의 책으로는 `살림지식총서 1~10'(살림출판사)이 미국을 다뤘다. 제 1권인 미국의 좌파와 우파(이주영)를 시작으로, 미국의 정체성(김형인) 마이너리티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손영호)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김형인) MD미사일방어체제(정욱식) 반미(김진웅) 영화로 보는 미국(김성곤) 미국 뒤집어 보기(장석정) 미국 문화지도(장석정) 미국 메모랜덤(최성일)이다. 제목처럼 미국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100쪽 안팎의 얇은 책으로, 지나친 단순화의 단점이 있지만 `우리의 눈'으로 본다는 데 의미가 크다.

한국과 미국 사이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훑어보는 데는 지난해 여름 나온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박태균/창비)가 좋다. 해방직후 부터 80년대초 까지 미국의 대한(對韓)정책과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 비밀해제된 대외관계 문서 등 풍부한 사료가 책의 신뢰성을 높인다. 한미 서로의 관계사를 살펴보면 제목처럼 미국은 `우방'이면서도 `제국'인 이중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미국은 대한 정책을 꾸려가면서 기존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검토해 충분한 `학습효과'를 누리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며 학습효과를 강조한다. 학술서 분위기의 책은 미국의 이승만·김종필의 제거계획 등 사연많은 양국관계의 역사적 사실들을 드러내 흥미롭다.

이밖에도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앨런 브링클리/휴머니스트)는 통사다. 모두 3권으로 1권은 식민지 시기부터 남북전쟁 전까지 미국의 틀을 보여주고, 2권은 미국사회의 개혁움직임과 남북전쟁, 국가 재건과 서부정복, 산업화 등 20세기 초반까지다. 3권은 1차세계대전에서 9.11 등 21세기 초반까지로 세계 최강자로 부상하는 미국의 면모를 살핀다. 미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다양성, 그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내는 통합성이 미국역사의 줄기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어판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모방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세계가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나라이기도 하다”며 “공포와 반감을 자아내고, 안정과 사회적 진보에 공헌하는 미국의 두가지 면모를 이해하는 데는 과거에 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한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케네스 데이비스/책과함께)는 대중교양서다. 일반인들이 궁금할 만한 질문을 던지고 여기에 답하는 형식을 취했다. `콜럼버스는 정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까'`카네기와 록펠러, 포드와 린드버그의 공통점은'`링컨은 정말 정직했을까' 등에 유머러스한 문체로 답을 한다. `미국의 양심'이라 불리는 노엄 촘스키가 쓴 `불량국가'(두레)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신랄하게 꼬집는 책이다. `미국 vs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로버트 케이건/세종연구원)는 국제사회에서 부딪치는,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미국과 유럽을 비교·분석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칼을 소유한 자는 곰을 피해다니지만 총 소유자는 곰을 찾아내 제거한 뒤 편하게 살려고 하는 데 미국은 총을, 유럽은 칼을 소유했다는 비유가 눈길을 끈다.

30년이 흘러도 똑같은 질문을 하기 때문일까. 지금도 미국 관련 책은 많이 출간된다. 친미든, 반미든 진보든, 보수든 어떤 시각에서 미국을 보든 가장 중요한 것은 편협되지 않는 것이다. 편협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확한 사실을 알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살피는 일이다. 어쩌면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미국. 당신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