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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마당 - 책에서 책을 만나다.


구 본 준 한겨레신문 기자


책의 종류는 정말 많습니다. 이 가운데 아주 작은 틈새 장르를 형성하고 있지만 무척이나 오래되고 꾸준한 장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책에 대한 책’, 또는 ‘책을 말하는 책’입니다. 책도 읽기 쉽지 않은데 책에 대한 책까지 읽어야 하느냐구요? 물론 힘드시겠지요.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을 직업으로 해본 경험에 의하면, 책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 예상보다 훨씬 가볍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물론 지은이들은 대부분 ‘책벌레’들입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수도 없이 권해본 이들이고, 그래서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게 얼마나 힘든 노릇인지 알기 때문에 이런 책들은 정말 재미있게 쓰는 것 같습니다.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니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보다 그냥 책과 관련된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테니까요. 다시 한번 요약하면 그냥 책들은 재미없기 십상이지만, 책에 대한 책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재미는 있다는 것, 그래서 책을 골랐을 때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찾아보면 이런 ‘책에 대한 책’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읽고 나면 교양 상식이 늘어나는 책,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기 편하게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들 가운데 우리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책 위주로 골라봤습니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는 한마디로 잘 쓴 교양 수필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책을 주제로 이야기하지만 “어떤 책이 좋다, 어떤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강권하는 법이 없습니다. 책과 연관된 지은이의 경험, 그리고 책에 대한 단상들을 인문학적 지식을 버무려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수필이 무척이나 드물어졌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읽고 나면 뭔가 지식도 늘고 향기도 나는 수필을 읽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책과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워도 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엿보는 재미가 만만찮습니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가 우리 필자가 쓴 가볍고 산뜻한 책 이야기라면, 외국의 이름난 글쟁이가 제법 본격적으로 책 읽는데 미친 ‘독서가’라는 종족들을 살핀 책이 있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펴냄)란 책입니다. <독서의 역사>란 제목을 듣고 떠올리셨겠지만, 이 책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만드는 제목이 가장 큰 약점입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게 딱딱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 또는 독서가의 역사를 단순히 연대순으로 나열해가면서 그 의미와 역사를 나른하게 훑어가는게 아닙니다. 책이란 것이 탄생하면서 등장한 독서가, 도서관, 서점, 인쇄업계 등의 다양한 모습을 만화경처럼 들여다보면서 책과 독서에 헌사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은이 망구엘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지 독자들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듭니다.
<독서의 역사>가 주는 딱딱하고 교훈적인 느낌이 싫으시다면 다른 책들은제쳐놓고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존 맥스웰 해밀턴 지음, 열린책들 펴냄)부터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적어도 책에 대한 책 가운데 가장 웃기고 재미있는 책으로 꼽힐만한 책입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책, 독서, 출판에 대한 웃기고 재미있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잔뜩 모아놓은 이야기 보따리같은 책입니다. 지은이 존 맥스웰 해밀턴은 정말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꿰고 있는 사람인데, 무엇보다도 유머러스한 문체가 아주 매력적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책에 대한 거의 모든 궁금증이 풀린다는 점입니다. 우선 책 제목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립니다. 카사노바는 난봉꾼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책에 있어서도 도사였다고 합니다. 여자 못잖게 책을 좋아한 사람이 바로 카사노바였다는 것이죠. 실제 카사노바는 지은 책이 40권이나 되는 작가이자 출판인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훔쳐가는 책은? 이 책에 따르면 <성서>라고 합니다. 왜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서평은 찬사 일색일까요? 유명인사들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은 어떻게 이뤄지며 해프닝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지 등등을 코믹하면서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책은 정신을 담는 미디어이지만, 지금처럼 책이 흔하기 전에는 정말 귀한 보물같은 물건이었다고 합니다. 책을 아무나 만들수도 없었고, 또한 만들 때에는 정말 온갖 치장을 해서 정말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던 시절이 훨씬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장식품이자 예술품으로서의 책을 다룬 책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이광주 지음, 한길아트 펴냄)이란 책입니다. 서양의 온갖 아름다운 책들에 얽힌 옛날 이야기 책인데, 예술적인 책들에 대한 화보가 풍성해서 보는 맛이 좋습니다. 그래서 책장에 꽂아두면 폼나는 장서용 책으로도 제격이란 평을 듣고 있는 스테디셀러입니다. 역시 책에 대한 온갖 잡다한 지식들이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수록한 그림들만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 독서광들도 입을 모아 칭찬하는 책에 대한 아름다운 수필집 <서재 결혼시키기>(앤 페디먼 지음, 지호 펴냄)도 책에 대한 책으로 빼놓을 수 없는 책입니다. 이 책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여성 저널리스트가 결혼해서 남편의 서재와 자기의 서재도 하나로 합쳐지게 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두 사람의 취향과 지향,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서재라는 개인적인 것들이 어떻게 주인 부부처럼 하나로 변하게 되는지 잔잔하면서도 따듯한 문체로 풀어나갑니다.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고 책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면서도 지은이는 결코 잘난척 하는 법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자기 가족들의 이야기를 배꼽 잡게 그려냅니다. 지은이처럼 책을 열심히 읽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책이란 것과 독자의 따듯한 소통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소설도 하나 덧붙입니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아예 소설로 쓴 소설책으로, 책 제목 자체가 <소설>(제임스 미치너 지음, 열린책들 펴냄)입니다. 책을 만드는 출판업종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일하며 책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모은 소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