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의 국내 선물시장 상장 신중히 접근해야


- 이 복 재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 -

국제유가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1998년에는 연평균 배럴당 12.21달러이었으나 2000년에는 26.27달러로 상승하였다. 국제유가의 상승세는 지속되어서 지난해 두바이유의 연평균 가격은 배럴당 49.4달러이었으며, 현재에는 70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국제유가의 상승은 석유수급의 구조적인 불안요인에 더하여 주요 산유국들의 정치적·사회적인 불안, 예기치 못한 기상이변, 투기자본의 석유시장 출입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향후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국제유가의 불안은 선물시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격불안에 대한 대응수단 중 하나로서 선물시장에서의 Hedging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석유제품을 국내 선물시장에 상장시키는 것에 관하여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때에 국내 석유시장의 골간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제도인 수평거래 금지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국내 석유시장에서 확립된 유통질서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석유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하여 관련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제 석유 선물시장 도입배경

1970년대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 및 가스에 대한 국유화조치를 취하기 전에 국제 메이저들은 원유 및 석유제품의 가격불안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하였다. 상류부문과 하류부문간의 수직적인 통합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원유가격의 불안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석유제품 수급구조가 상이한 여러 지역의 하류부문에 진출하는 수평적인 연합관계의 구축은 석유제품 가격불안에 대한 효율적인 대처수단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 및 가스에 대한 국유화조치를 취하면서 메이저들의 상·하류부문간 수직적인 통합관계는 약화되었고 동시에 현물시장이 발달하면서 원유가격의 불안은 더욱 증대되었다. 이 결과 원유 및 석유제품의 가격불안에 대한 대응수단으로서 선물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선물시장은 메이저들이 산유국의 협조없이 원유가격의 불안에 대처할 수 있는 대응수단이 되고 있다.


국내 석유 선물시장 도입시 성공 요건

석유제품을 국내 선물시장에 상장하는 문제를 논의할 때에 유의해야 할 점은 선물시장이 위험관리의 유일무이한 수단이 아니라 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위험관리의 수단으로서 선물시장 이외에 상류부문과 하류부문 간의 수직적인 통합관계 구축, 수평적인 연합관계 구축, Swap거래 등이 있다. 국내 정유회사들이 석유제품을 다양한 국가들에 수출하는 것은 석유제품의 가격불안에 대한 대응조치로서 수평적인 연합관계 구축노력의 일환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위험관리의 필요성이 곧 선물거래의 필요성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선물거래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국내 석유 선물시장의 도입 필요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석유 선물시장의 도입을 위하여 국내 선물시장이 해외 선물시장에 비하여 우월성 내지 차별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국내 선물시장이 해외 시장과의 차별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내 정유회사들이 해외시장이 아닌 국내 선물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여야 한다. 특히, 국내 석유 선물시장이 싱가폴 석유시장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우월성이나 장점을 확보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미 싱가폴 석유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위험관리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국내 정유회사들의 참여를 유인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회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성공적인 석유선물시장 도입의 관건인 안정성과 유동성 확보가 곤란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동경선물거래소(TOCOM)가 정유회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어서 침체되어 있는 현 상황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내 석유 선물시장 도입시 기대효과 불투명

석유제품을 선물시장에 상장함으로써 기대되는 이익에 대한 면밀한 판단도 필요하다. 우선, 국내 석유시장의 투명성 제고 여부에 관한 것이다. 석유선물시장이 안정성과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근월물 거래가 활발하여 국내 석유제품의 수급상황이 선물가격에 적절히 반영될 경우 석유시장의 투명성 제고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안정성과 유동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투기성 거래인 원월물 거래 위주의 선물시장이 운영될 경우에는 국내 석유시장의 투명성 확보에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시장불안을 야기시킬 것으로 분석된다.
선물시장의 도입이 국내 석유시장에서 건전한 경쟁을 촉진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석유선물시장이 안정성과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근월물 거래가 활발하여 국내 석유제품의 수급상황이 선물가격에 적절히 반영될 경우 국내 석유시장의 경쟁을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안정성과 유동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투기성 거래인 원월물 거래위주 선물시장이 운영될 경우 시장혼란을 촉발하면서 Predatory Pricing이나 Windfall Profit을 초래할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시장 참여자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석유 선물시장이 현행의 석유 현물시장을 제도권으로 유인하여 양성화시킬 수 있을지에 면밀한 판단도 필요하다. 잉여공급물량을 해소하는 것도 국내의 현행 석유제품 현물시장의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반면에 제도권의 선물시장은 이러한 장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을 유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수평거래 허용시 주요 문제점

석유제품의 국내 선물시장 상장과 관련하여 수평거래를 허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내 석유제품 유통시장의 근간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수평거래를 허용하는 것은 정상적인 유통 채널을 통하여 구입하는 석유제품의 가격보다 선물시장을 통하여 구입하는 석유제품의 가격이 저렴할 경우에 이루어지는 거래행위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이 거래행위를 촉진시킬 경우 정상적인 유통채널보다는 선물시장을 통하여 구입하고자 하는 유인이 나타나고, 따라서 국내 석유제품 유통질서가 크게 교란된다. 이는 국내 석유산업의 건전한 육성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석유제품 공급자를 불확실하게 하여 불량 석유제품의 유통을 통한 소비자 이익의 침해가 초래될 것으로 분석된다.
본 수평거래 허용 요구는 그 성격상 현행 현물시장에서 구입하는 석유제품에 대한 수평거래를 허용하라는 요구와 동일한 것으로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독립적인 폴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가 선물시장에서 구입한 석유제품은 다른 판매업자와 거래할 것이 아니라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하여야 한다. 이것이 소비자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수평거래 금지 규정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 이익 극대화를 위하여 석유제품 유통단계 및 거래의 회수를 최소화함으로써 유통비용 및 유통마진의 절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이를 통하여 최종소비자 가격의 최소화를 도모하여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하여 1998년 1월부터 정유회사와 주유소 간에 직거래를 허용한 바 있다. 수평거래를 선물거래에 대하여 허용할 경우 이 석유제품 유통단계 및 거래의 회수를 최소화하여 소비자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정부의 기존 정책에 반하는 것이다.
또한 선물시장 참여를 통하여 저렴한 가격의 석유제품을 구입한 시장 참여자와 그렇지 못한 시장 참여자간에 불신이 야기된다. 석유선물시장에 나오는 석유제품은 잉여 물량으로서 변동비만을 회수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으로 판매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정상적인 유통채널을 통하여 공급되는 가격도 이 수준으로 인하할 것을 유통업자들이 정유회사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으로서 국내 석유산업의 건전한 육성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과도한 가격인하 경쟁을 촉발하면서 석유제품 유통질서를 교란시킴으로써 국내 석유산업의 구조를 취약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분석된다.


신중한 접근 필요

석유제품 선물시장을 성공적으로 국내에 도입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안정성과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국내 정유회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긴요하다. 또한 독립적인 상표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 석유판매업자, 석유제품의 품질 보정능력을 보유한 사업자, 최종소비자들도 석유 선물시장의 중요한 참여자가 된다. 투기목적의 거래를 선호하는 시장 참여자(예: 대규모 Fund 운영자, 금융기관)도 필요하다.
특히, 근월물 거래가 활성화되어 선물시장가격이 국내 석유수급 상황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하여 실물인수도 능력이 충분한 국내 정유회사들의 참여를 위한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건조성을 위하여 싱가폴 석유시장과의 차별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틈새시장(Niche Market)의 개발을 통하여 정유사 욕구충족을 도모하여야 한다. 이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중한 검토하여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 TOCOM의 발전과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금년 하반기에 개장 예정인 중국의 상하이 석유거래소의 활동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국내 석유 선물시장의 도입조건을 세련시켜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