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주권확보를 위한 석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최 종 근 -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시작하며

국내 휴대폰 가입자 수가 4,000만에 육박하는 정보화사회에서도 에너지자원의 안정적 공급은 지속가능한 사회유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들어 배럴당 70 달러를 초과하는 고유가 현상이 계속되어 국민생활과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연내 100 달러도 가능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석유와 가스로 대표되는 에너지자원은 국가경제발전의 원동력이며 국가경쟁력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석유에너지의 확보는 경제활동은 물론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에너지 안보론’이 제기되고 에너지 주권확보를 위한 국가간 무한경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세계 10위이지만 에너지수입의존도는 97%로 국제유가변화에 따른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원유 자주개발율은 비록 그 수치가 최근에 긍정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5% 수준으로 낮아 석유위기 발생시 원유공급 안정성에 취약하다. 아직 기술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대체에너지의 경제적 보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예측대로 2050년에도 원자력을 포함한 화석에너지가 일차에너지 공급의 90%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가들이 모두 에너지산업을 국가기반산업으로 집중육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외 석유산업의 현황을 살펴보고 에너지 주권확보를 위한 석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외 석유산업 현황

국내 석유산업은 에너지 다수요형 구조를 가지면서 공급부분에 취약한 하류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행히도 2004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동해가스전개발은 국내 상류부분 최초의 성공이며 국내외 유전개발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지난해 에너지 총수입액은 667억 달러로 총수입액의 25%를 차지하고 같은 해 수출 1, 2위를 차지한 반도체(300억 달러)와 자동차(295억 달러)의 수출액 합계를 초과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고유가의 고착화로 계속될 전망이며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자원확보의 필요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정유업계의 경영여건도 변화되고 있다. 하류부분에 대한 지속적인 규제철폐와 시장개방으로 국내 정유사와 석유업계는 지역을 벗어나 국제경쟁시대를 맞고 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외국자본과의 합작은 원유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이루었지만 상류부분 및 신규사업 진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석유제품의 수출입이 자유화되면서 가격경쟁이 심화되고 시장에서의 품질관리와 경영관리의 투명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교토의정서가 2005년부터 발효되었고 환경보호와 웰빙에 대한 관심으로 고급제품의 생산을 요구받으면서도 제품가격인상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국민정서에 직면해 있다. 국내정유업계는 연간 매출액 50조 이상을 올리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매출액의 3% 이하로 경영부담을 안고 있다. 지속되는 고유가로 인하여 원유공급 시장교란과 불안정성, 상류부분 진출준비의 부재,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패러다임에 적응이라는 부담을 석유업계는 안고 있다.
외국 석유업계도 동일한 여건에 직면해 있지만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그 대응능력이 뛰어나고 오히려 위기가 새로운 사업기회가 되고 있다.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모든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중요한 석유보유국을 선점하여,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안전하게 석유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고유가가 국민에게 미치는 경제적 부담을 제외하고는, 메이저 석유회사의 수익사업에는 더 유리한 조건이 되고 있다. 이는 매년 보고되는 석유회사의 순이익분포에서 상류부분이 70-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데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력, 기술력, 정보력을 바탕으로 유전개발 성공률은 25% 내외이며 하류부분 정유산업의 전략적 운영으로 순이익을 최대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 뿐만 아니라 메이저형 석유개발회사를 가진 나라는 공통적으로 석유자원개발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으며, 또 이미 확보한 매장량을 통하여 안정적인 원유공급을 확보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제2의 석유소비국이 된 중국은 에너지자원의 확보를 위해 국가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국영석유회사(CNPC)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국내외 석유개발과정에서 얻은 기술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캐나다, 러시아 등 거의 전세계 유망지역 석유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자원외교와 경제협력을 통한 독자적 에너지확보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의 자원확보경쟁을 가속하여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되지만 에너지위기가 오면 국제분쟁은 쉽게 야기되고 그 징조도 이미 보이고 있다. 원유공급의 핵심역할을 하며 향후 그 역할증대가 예상되는 중동산유국과 베네주엘라, 나이지리아 등 주요산유국은 많은 정치불안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상황변화는 적극적으로 해외자원개발을 계획하는 우리에게는 자본과 기술력의 열세 외에도 외교력과 군사력 열세라는 부담을 추가로 주고 있다.


에너지 주권확보를 위한 국내 석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 중장기 국가에너지 전략의 수립 및 정책적 지원
에너지정책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자율적 경쟁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에너지자원은 공공성이 강하고 또 국민생활과 경제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며 그 어느 때보다 국제적 자원확보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국제에너지시장은 공급자시장으로 개편되었고 유가안정을 위한 산유국과 미국의 노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시장경제원리에만 의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시장의 특성상 위기상황이 되면 쉽게 그 기능이 마비되는 취약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의지와 정책적 배려는 기업활동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핵심인자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래비전을 가진 정부의 중장기 에너지전략 수립과 이를 위한 정책지원이다. 에너지자원의 중요성과 신고유가 고착화를 인식한 참여정부가 과거 단기적인 처방위주의 정책에서 고유가 체질개선정책으로 그 기조를 바꾼 것은 매우 적절하고 현명한 판단이다.
구체적으로 ‘국가에너지자문회의’를 구성하고 전략에너지자원의 자주개발능력 대폭확충, 비축유의 효과적인 활용을 통한 안정적인 석유수급,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산업자원부의 조직을 확대개편하여 에너지자원개발본부를 신설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정부는 2013년까지 석유와 가스의 자주개발율을 각각 18%, 30%로 향상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경제규모와 자주개발율에 상응하는 행정조직을 통하여 지속적인 전략수립과 정책추진은 물론 국제자원외교와 산유국-소비국간 협력도 효과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 해외 자원개발역량 및 국제자원협력 강화
2005년 해외자원개발 투자액은 11억 달러를 넘었고 원유자주개발율은 과거 3% 이하에서 5%로 향상되었다. 정부는 해외생산광구 매입을 검토하고 있고 일일 30만 배럴 생산규모를 가진 지역 메이저급 전문기업을 육성하고 자원개발사업을 새로운 수익창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자주개발원유는 국제유가변화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또 공급안정성을 확보하여 자원의 국외비축과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역할도 한다. 무엇보다도 해외개발원유는 그 단가가 배럴당 평균 15 달러 내외이며 이는 70 달러 내외의 국제유가와 비교한다면 경제적으로 큰 유익이 있다. 예멘, 베트남, 리비아, 브라질, 미얀마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유전개발사업은 그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업계도 단순 지분참여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수익사업을 위한 재원준비와 전문인력 확충으로 에너지확보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해외자원개발의 핵심요소는 매장량이고 이 매장량의 확보와 생산을 위해 가장 필요한 두 가지 요소는 바로 자본과 인력이다. 세계석유공학자협회(SPE)에 따른 매장량(reserve)의 정의는 ‘현재 확립된 기술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이 없이 상업적으로 생산가능한 양’이다. 현재 석유 가채년수는 40년 인데 이는 확정매장량을 연간생산량으로 나눈 값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40년 전에 예상한 석유매장량도 40년 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류부분 산업계가 회사의 존립과 원활한 경제활동의 지원을 위해 40-50년간의 매장량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표>에서 보듯이 ‘석유매장량 40년, 가스매장량 70년’이라는 가채년수는 변함없지만 연간생산량의 증가로 인하여 총매장량은 오히려 20년전 대비 각각 56%, 88% 증가하였다. 궁극적으로 석유자원이 유한하고 작업환경이 어려운 지역도 있지만 그 어려움의 정도를 숫자적으로 나타내면 생산비가 단위 배럴당 4-5 달러 비싸졌다는 의미이지 생산이 불가능하거나 단기간 내에 고갈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석유개발사업은 초기에 많은 자본이 투자되면서 불확실성에 기인한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재원확보가 핵심요소 중의 하나이다. 재원의 확보는 회사자본, 정부융자금, 은행융자, 유전개발펀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위험요소 감소를 위한 정부지원과 투자전략이 가능하다. 투자대상이 결정되고 재원도 마련되었다면 결국 이 같은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운영할 기술 및 지역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 해외자원개발에 참여하는 국내기업들이 경험과 자본이 부족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업을 추진할 기술 및 지역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필자는 모든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맺으며

만일 국내 휘발유가격이 현재의 5배로 오른다면, 서울시내 자동차의 수가 교통체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 것인가? 아마도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고유가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외국에 비하여 높은 세금과 가격의 문제점, 에너지분야 정부정책과 준비의 문제점, 가격담합의혹, 분노한 소비자, 기타 에피소드들이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함께 언론매체의 주요뉴스만 될 것이다. 경제발전과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향후 유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해도 국내외 석유수요는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제3의 오일위기가 온다면 그 때는 지역적 정치위기에 따른 일시적 위기가 아닌 공급량의 절대부족으로 인한 총체적 위기일 것이다. 이에 대한 현실적 대책은 자주개발 역량강화를 통한 매장량 확보와 안정적인 수급관리이다. 비록 국내에너지 구조가 취약하고 국가간 자원확보경쟁이 치열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업계의 참여로 2013년 원유자주개발율 18%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위해 국내 전문인력과 투자재원을 잘 활용하고 자원외교를 통한 전략과 협력이 필요하다. 산학의 자연스런 연계를 통하여 업계의 애로사항을 기술지원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전문인력 양성과 보급으로 해외자원개발 역량강화와 자립화를 이루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공급자시장으로 개편된 국제 에너지시장에 적응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체질개선을 통하여 에너지 저소비와 고효율의 미래사회로 준비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