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 절약도 생산이다




지금
우리는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4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新 고유가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에 우리가 겪었던 고유가 상황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신고유가 상황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유가상승의 추동요인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물론 이란 핵문제, 나이지리아 사태 등이 유가 급등세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로서 현재 산유국들의 공급여력이 중국, 인도 등의 영향으로 폭증하는 세계 석유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국제유가의 견조한 상승세를 유지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국제유가는 작은 요인에도 매우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신 고유가에 대응하여 정부에서는 국제유가와 석유수급상황에 따라 강제적 에너지소비억제책을 포함한 단계별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수급 자체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강제적 석유소비 억제책 보다는 자발적인 에너지절약 실천 유도와 함께 우리사회의 구조를 에너지를 덜 쓰는 시스템으로 개선하고 에너지절약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인 대처 방안이다.


에너지 효율성 향상됐으나 아직 미흡

사실 지난 1,2차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절약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통해 우리의 에너지효율도 크게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고효율기기 보급과 에너지절약시설투자 확대 등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원단위는 지난 98년 이후 33%가 향상되었다. 그러나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동일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일본과 에너지원단위를 비교해보면 아직까지 우리가 동일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세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1인당 에너지소비량을 따져봐도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2-3배 이상 높은 독일, 일본등과 비슷한 수준에 이를 정도로 많은 편이다.

이렇듯 우리의 에너지소비가 많은 것은 지난 고도성장기에 철강, 석유화학산업등을 집중 육성한 결과, 산업구조 자체가 에너지 다소비형으로 형성된데다 납사, 제철원료탄과 같이 원료로 사용되는 에너지원의 비중도 큰 것이 가장 주된 원인이다. 또한 물가안정과 산업경쟁력 향상을 위해 그동안 꾸준히 저에너지가격 정책을 이어온 까닭에 에너지절약에 대한 동기부여가 약하다는 점도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우선 기존의 산업시설에 대한 에너지절약 시설투자를 통해 에너지소비효율을 높여 나가면서 에너지 저소비형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여 에너지다소비형 산업구조를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업부문의 에너지절약을 위해서 가장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정책은 바로 에너지절약 자발적협약(VA)이다. 기업이 자체적인 절약목표와 이행계획을 수립하여 정부와 협약을 체결하고, 이에 대해 정부가 자금, 세제 등을 지원하는 자발적협약제도는 지난 9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이후 총 2조 5천억원의 에너지절약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올해 자발적협약 대상기업을 에너지사용량 연간 2000toe 이상의 산업체의 80%인 1,303개 사업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올해부터 에너지다소비사업장에 대한 진단의무화를 실시하여 산업설비와 공정에서의 에너지절감요인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시설투자를 유도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올해 6,549억원의 자금을 마련하여 에너지절약 시설투자에 장기 저리로 융자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에는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더 많은 혜택을 보도록 자금을 운용할 계획이며, 에너지절약전문기업에 대해서도 1,237억원을 따로 배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부문의 에너지절약과 함께 에너지다소비 건물에 대해서도 에너지절약 자발적협약을 추진하는 한편, 내년부터는 건축물의 단위면적당 에너지소비량을 제한하는 에너지소비총량제도를 도입하여 원천적인 에너지절약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석유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차량 에너지절약을 위해서 자동차 제작사를 대상으로 ‘평균 에너지소비효율제도’를 실행하고 경차 및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여 자동차의 연비를 향상시키도록 유도하는 한편, 유료도로의 통행료 전자지불시스템(ETCS)도 확대시켜 톨게이트에서의 교통혼잡을 완화시켜 나갈 예정이다.


에너지 소비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그러나 이러한 효율화 정책과 함께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에너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비용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만 있다면 에너지를 얼마든지 사용해도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에너지에 대한 이러한 안일한 인식으로는 최근의 급변하는 국제에너지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특히 기업 경영 차원에서 에너지를 단순히 생산과정의 원자재로만 인식해서는 안된다. 지속되는 고유가와 기후변화협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윤리경영이나 환경경영과 같이 에너지경영을 기업경영의 핵심요소로 인정하고 에너지관리를 유틸리티 담당자 차원이 아닌 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핵심 경영전략으로 발전시켜야만 한다. 때문에 에너지관리공단에서는 올해부터 ‘에너지경영’ (EQM; Energy Quality Management) 이라는 개념을 에너지다소비사업장을 중심으로 도입하도록 현재 추진중인 에너지절약 기술정보협력사업의 활동사를 중심으로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에너지 사용행태를 윤리문화 차원에서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냉난방문화를 살펴보면 여름에는 냉방병을 걱정해야 할 만큼 강한 냉방을 하는 반면, 겨울에는 실내나 지하철 등에서 두꺼운 옷이 부담스러울 만큼 강한 난방을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높고 에너지도 풍부한 나라에서도 겨울철에는 내복을 입고 에너지절약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정말 지독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에너지낭비와는 반대로 우리 사회 한편에는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소비도 부담스러운 이웃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유가, 그리고 기후변화협약 시대에 어울리는 우리 국민들의 에너지소비윤리 확립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때문에 에너지관리공단에서는 올여름 에너지절약과 불우이웃 돕기를 결합한 『에너지(-), 사랑(+)』캠페인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 캠페인은 전국의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전기절약을 실천하여, 전기절감량에 따라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일정금액을 적립하여 이를 소년소녀가장, 장애인복지시설 등의 에너지비용이나 고효율기기 구입에 지원하도록 하는 행사로서, 여름철 전력부하 저감은 물론 어려운 이웃의 에너지복지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실시한 『선풍기로 시원한 여름나기 캠페인』의 경우 전국에서 147만명이 참여하여 일평균 최대전력 증가율을 전년대비 5.9%p 감소시키는 등 실질적인 에너지절약 효과를 거둔 바가 있다. 따라서 올 여름 온국민이 『에너지(-), 사랑(+)』캠페인을 통해 이러한 국민의 힘이 모아진다면 에너지절약과 에너지복지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기를 한번에 잡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의 노력이 합쳐진다면 당면한 고유가는 단순한 어려움이 아니라 급변하고 있는 에너지 패러다임에 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절약도 생산이다.

지난 2월 20일 발견된 우리나라 세 번째 가스전인 고래-14구조의 가스매장량은 22만톤으로 울산시민이 114일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에너지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 이렇듯 국내 에너지생산이 늘어나고, 또 해외 에너지자주개발이 늘어나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개발 못지 않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바로 에너지절약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에너지절약을 통해 하루 20만배럴의 석유소비를 줄일 수 있다면 이것은 일일 석유생산량 20만배럴의 영원히 샘솟는 유전을 개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고갈되어 가는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생활은 폭포의 상류에 있는 잔잔한 강물위에 떠가는 배를 타고 가는 승객의 처지와 같다. 폭포까지 어느정도 남았는지 확인하고 미리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잔잔한 강물은 순식간에 폭포로 변할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