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전쟁과 국제질서 : 에너지와 군사력의 결합


글·김재두|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동물들은 짝짓기 계절에 피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상 가장 강한 우두머리가 짝짓기에서 우선권을 가진다. 그러다보니 그 아래 서열 중 강한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내편, 네 편이 명확했던 냉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국가 간의 이합집산이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긴 인류 역사를 볼 때 국가 역시 짝짓기를 잘 해야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기가 훨씬 더 길었다. 국가 간의 짝짓기를 조금 현학적으로 표현하면 동맹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그 동맹재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냉전기의 연결고리가 이데올로기의 공유였다면 지금은 자원협력과 군사협력이 병행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테러전쟁에 대한 동참 여부를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고유가는 에너지안보와 테러전쟁이라는 연결고리에 의해 국제사회가 달아오르는 현상중의 하나이며 지역적으로 가장 열기가 치열한 곳은 유라시아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다. 2006년 3월 중국과 러시아는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임을 천명했으며 중국은 2006년을 ‘러시아의 해’로, 러시아는 2007년을 ‘중국의 해’로 선포했다. 두 나라간의 에너지 협력 관계는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군사적인 관계 역시 에너지 분야 못지않게 끈끈하다. 세계 무기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미국의 판매액 기준 1위 자리는 최근 러시아에게 돌아갔다.

중국이라는 큰 손을 형제국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이미 중-러 양국군은 2005년 8월 황해에서 5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이라는 “평화의 사명 2005”(Peace Mission 2005)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한바 있다.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 정상회의에서는 미군의 중앙아시아 철수를 한 목소리로 요구하기도 했다. 유라시아의 팬더와 북극곰이 오일과 미사일을 매개로 해서 결합했으니 그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인도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Chindia냐 아니면 Usindia가 될 것이냐가 핵심이다. 유씬디아(Usindia)는 미국이 인도 끌어안기를 성공한 형태다. 미래의 세계 패권 구도를 전망할 때 인도의 향배는 대단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만일 유일 초강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약화된다면 1强(미국)-2弱(아시아와 유럽) 간의 3각 구도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현재 국제질서는 중국-러시아 전략연대와 미-일 동맹축의 중간에 인도와 호주가 위치해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단, 인도는 중-러 연대 방향으로 호주는 미-일 동맹 방향으로 조금 다가서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인도가 핵기술 이전에 합의했다고 해서 이런 구도가 쉽게 바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도는 연평균 7%대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 석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소비량의 70%를 수입해 쓰고 있다. 석유 확보를 위해 이란∼파키스탄∼인도를 잇는 송유관 건설 계획을 강행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요인만을 놓고 볼 때 인도는 러시아와의 동맹이 바람직하나 중국과의 경쟁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는 이미 페트로카자흐스탄(PK) 인수전에서 중국에 낙찰된 사례로 입증된다.

‘친디아(Chindia)’로 불리는 중국과 인도는 정치·외교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군사훈련도 다양하게 실시되고 있지만 보다 가시적인 것은 무기거래다. 물론 러시아에 비해 중국이 인도에게 줄 수 있는 첨단 무기 체계는 그리 많지 않다. 러시아의 경우 MIG-29 제공시에도 SU-35의 성능에 버금가는 각종 첨단 장비를 동시에 판매하여 미국과 호주 등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핵 기술 협정으로 인도의 전략적 기로를 바꿀려고 하는 만큼 중국은 러시아와 연대하여 인공위성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인도와 협력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셋째는 중국의 중앙아시아 및 남미에 대한 에너지 외교망 강화를 들 수 있다. 2005년 봄에 공사가 개시된 중국과 카자흐스탄간의 파이프라인 공사는 카스피해 지역의 자원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암묵적 갈등을 입증해주고 있다. 중국과 카자흐스탄은 1997년 이 사안을 최종 합의하기까지 상당 기간을 소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단계에서는 매년 천만 톤을 운송, 2단계에는 2천만 톤, 장기적으로는 매년 5천만 톤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 파이프라인은 2005년 말이면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며, 카자흐스탄은 2008년에 원유 운송 개시를 기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 파이프라인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이 파이프라인은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지 않는 첫 수출 송유관이다. 이 송유관은 카자흐스탄에게 수출의 독립성을 줄 뿐만 아니라 7억 불에 달하는 투자유치 효과를 준다.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될 원유를 어느 유전이 공급할 것인가가 오늘날 이해 당사국들의 관심사인데 중국의 CNPC가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 파이프라인이 수익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카샤간(Kashagan)유전 생산 원유를 중국으로 운송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현실이다.

카샤간 유전은 최근 20년 사이에 발견된 가장 큰 유전이며 2009-2010년경 연 2,250만 톤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자흐스탄의 원유 터미널인 아타수(atasu)에서 중국 소재 알라샨코우(alashankou)를 잇는 988km 길이다.
카샤간 유전 석유의 운송 경로를 살펴보면, 중국-카자흐스탄을 잇는 아타수-알라샨코우 라인의 전략적 중요성이 드러난다. 그 뿐만 아니라 카스피해 원유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간의 치열한 에너지 확보전을 목격할 수 있다. 만일 카샤간유전 오일을 중국으로 보낼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카스피해의 CPC(Caspian Pipeline Consortium) 프로그램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CPC는 현재 카스피해 오일을 러시아 흑해로 운송하고 있는데 운송 능력에 한계가 노정되고 있다. 현재 연간 2천8백만 톤의 운송 능력을 6천7백만 톤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카샤간 원유를 지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공세적 자원외교를 지속하면서 자원의 선점현상과 더불어 해외군사기지의 확보와 해상수송로에 대한 안전망 강화 노력도 눈길을 끌고 있다. 한편, 중국의 남미를 향한 에너지외교 노력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11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기타 남미국가들을 방문해서 1,000억 달러에 상당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12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베네수엘라 유전에 3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고 매달 12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기로 했다. 다른 한편으로 브라질은 중국과 11개 항목에 걸쳐 100억 달러에 달하는 에너지와 수송 계약을 했다.

네 번째는 베네수엘라의 ‘페트로 아메리카’ 구상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석유의 무기화를 통한 반미 전선에 있어 적극적인 베네수엘라는 중남미 국가들을 연계하는 ‘페트로 아메리카’(Petro-America) 협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2005년 10월 초 아르헨티나의 일간지 클라린과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는 지정학적 무대에서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석유 카드를 통해 지역통합의 이익을 관철할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또한 9월 말 이미 중남미국가공동체 첫 정상회담에서도 중남미 대륙 전체를 포괄하는 에너지 동맹으로 평가되는 ‘페트로아메리카’ 협정 추진을 본격화할 뜻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차베스 대통령의 구상이 현재로서는 실현될 가능성이 그다지 커보이지는 않지만, 평소 베네수엘라가 가진 강력한 ‘석유 카드’로써 미국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최근 선거의 압승, 이란과 중국의 측면 지원을 감안하면 상당기간 석유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다. 특히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 정권이 출범하고 브라질이 간접적 협조 관계를 설정함에 따라 가능성은 다소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카프카즈 3국과 중앙아시아지역은 에너지 관점에서 볼 때 그 자체가 중요한 오일 생산국이자 동시에 파이프라인의 교통로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동맹정책이 어디로 기우는가에 따라 중국 및 러시아의 해당 세력권에의 진출을 봉쇄할 수 있는가라는 내륙봉쇄선 성격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또한 동맹이나 유대의 강도에 따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대처 선택 영역이 늘거나 줄어드는 파장은 미국의 시각에서는 매우 심각하다. 중동과 서남아/동남아 지역은 에너지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해상수송로와 이미 세포 분화된 테러조직에 대한 대처에도 중요한 변수 역할을 한다. 이 지역에 있어 중국 진출 구도는 봉쇄 그물망을 교묘히 탈피해나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소소한 형태의 대립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에너지를 매개로 하는 이런 형태의 블록 대 블록 갈등이 구체화되면 고유가 현상은 수요 공급 구조와 무관하게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다. 고유가는 패권경쟁의 산물이라는 진단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당분간 지구촌의 대립구도가 해소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