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남을 이해하는 재미있는 심리학
- 구 본 준 한겨레신문 기자 -
1964년 뉴욕, 제노비스라는 20대 여성이 새벽 3시 자기 집 앞에서 칼로 난자당해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이 여성의 목과 성기를 칼로 찔러댔다. 희생자는 칼날을 피해 소리질러 도움을 청하다가 결국 숨지고 말았다. 경찰 조사결과 놀랍게도 범인은 희생자와 아무 관련이 없었고, 당연히 범행 동기도 없었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발견됐다. 희생자가 살해당하는 순간을 본 목격자가 무려 38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희생자가 여러차례 칼에 찔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것을 알았을텐데도 단 한명도 신고하지 않았다. 목격자들이 자신이 스스로 위험에 빠지는 것인데도 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사건은 심리학적으로 많은 의문을 낳았다. 그래서 두 명의 심리학자가 조사를 시작했고, 심리학 역사에 기록된 주요한 실험으로 기록됐다. 그 결과는? 궁금하신 분들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코의 서재 펴냄)란 책을 읽어보시길.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 슬레이터가 쓴 이 책은 앞서 말한 제노비스 사건을 다룬 심리학 실험 등 20세기 심리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10가지 심리학자·정신의학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정통 심리학의 영역을 다루지만 읽기 쉽고 재미가 있어 요즘 많은 인기를 누리면서 최근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심리학 열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심리학책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해 출판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였던 심리학책 열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스키너의~>를 비롯한 최근 심리학책들은 예전 심리학책들보다 훨씬 인문학적인 무게도 더해졌다. 그만큼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곧 예측 불가능한 인간 심리에 대해 묻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남들 생각, 그리고 자기도 잘 모르겠는 자기 마음에 대한 궁금증을 책으로라도 알아보려는 이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나온 심리학책들 가운데 직장인들의 평소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법 하면서도 읽는 재미가 있는 심리학 관련 책 3권을 골라봤다. 앞서 말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책이다. 인간의 기억이란 어떤 것이며, 마음은 또 어떻게 움직이는 것인가를 살핀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고 똑똑한 엘리트들이었던 독일 장교들은 왜 지금 보면 말도 안되는 히틀러의 미친 짓에 그토록 복종했던 것일까? 사람의 기억은 왜 선택적으로 저장되는가? 가난한 사람들은 왜 부자보다 더 약물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은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보려 한 심리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주제가 너무 거시적이라고? 그러면 우리 생활속에서 만나는 심리학적 궁금증들을 살펴보자. 도대체 왜 저 박과장은 저렇게 거짓말을 잘할까? 뉴스에 나오는 저 훌륭하신 분들은 왜 저런 뻔히 들통날 사기극을 저질렀을까? 우리 팀장은 왜 저렇게 꽉 막혀서 이야기가 안 통하는 걸까? 왜 저 아줌마는 저렇게 심리상태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듯 극단적으로 바뀌는 걸까? 저 친구는 왜 저렇게 남들에게 매달리기만 할까?
이런 심리를 알고프다면 <나만 모르는 내 성격>(오카다 다카시 지음, 모멘토 펴냄)이란 책이 요긴하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잖게 마주칠 수 있는, 정신병이라고 보기에는 좀 약하지만 그렇다고 정상은 아닌 듯한 이들의 심리를 읽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정신병자는 아니지만 남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이런 이들은 한마디로 ‘성격장애’란 문제를 지닌 이들로 볼 수 있다. 책은 이런 성격장애를 유형별로 나눠 특징과 원인, 그리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대처법을 가르쳐준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주변 사람들 가운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린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만나기 쉬운 이같은 성격장애라는 문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 은근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격장애를 한번 살펴보자. 거짓말을 일삼는 ‘히스테리성 성격장애’란 것이 있다. 아주 드물지 않아서 전체 인구의 2~3%가 이 성격장애자라고 한다. 이 히스테리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아주 말을 잘한다. 그리고 남들에게 감동까지 준다. 친절하고, 남을 잘 도와주며, 실제 많은 일을 했다고 밝힌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의 경우 모두 ‘뻥’인 것이다! 아주 유명한 인사인데 알고 보면 사기꾼인 경우 여기 속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궁금한 것은 왜 그렇게 무리하게 거짓말을 하느냐는 것이다. 겉보기에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이 이렇다면 더욱 의아할 노릇이다.
그 이유는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자들은 ‘남을 매료시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자기에게 반하지 않으면 자기가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언제나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거짓말도 눈 깜빡 않고 한다. 때로는 그런 거짓말을 하는 본인도 자기가 했다고 하는 거짓말이 사실이라고 믿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이성에게 무지하게 강하다! 그건 당연하다. 남들을 매혹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타입이니까. 요즘처럼 겉으로 나타나는 성과에 집착하는 사회에선 이런 이들이 훨씬 더 많이 본색을 숨기고 활약하고 있을지 모른다.
“줄기세포, 없습니다. 하지만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언젠가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이런 변명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히스테리성 성격장애’란 분석틀에 대입해서 다시 그런 행동을 읽어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더 잘 알게 된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피곤해진다는 점이다. 책의 지은이는 그렇다고 해서 이런 ‘뻥쟁이’의 가면을 무리하게 벗기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런 유형은 누가 자기의 거짓을 폭로하면 처절한 보복에 나서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과 싸우게 되면 오히려 정상인이 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정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말보다 그가 늘어놓는 거짓말을 믿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성격장애는 못고치는가?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겠지만, 방법은 늘 있다. 다만 쉽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과 주변 사람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이런 성격장애를 극복할 경우 사람은 더욱 원숙하고 아름다워지게 된다. 지은이가 책을 쓴 이유도 성격장애를 이겨낸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강인함이 얼마나 멋있는 것인지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학과 자기계발을 연결시킨 책은?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21세기북스 펴냄)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이 책은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여섯가지 법칙을 뽑아 특정 상황에서 특정하게 반응하곤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한다. 무언가를 받으면 자신도 무엇을 주게 되는 상호성의 법칙, 자신이 예전에 했던 행동에 맞춰 현재의 생각을 바꾸는 일관성의 법칙, 많은 이들이 하는 행동에 따르게 되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 등등이 그런 불변의 원칙들이다.
1985년에 나온 이 책은 심리학쪽에서는 현대판 고전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고, 독자들에게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2년에 나온 뒤 꾸준한 인기를 누리면서 무려 80만부 가까이 팔렸다. 영화에서 1000만 관객이 나와서 80만이란 숫자가 작아 보이지만, 출판시장에서 1년에 80만부 넘게 팔리는 책은 몇권 안나올 정도로 엄청난 숫자다. 심리학책으로는 엄청나게 성공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이 이처럼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누구나 설득의 문제로 고민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남의 부탁을 쉽게 거절 못해서 고민하면서 반대로 자신은 남을 설득하지 못해 힘들어한다. 책을 쓴 지은이 치알디니 교수도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 늘 잡상인들에게 속아 넘어가고, 원하지도 않은 잡지를 구독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설득을 요구하거나 요구받으며 산다. 그런 설득의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분명 없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이해하게 해주는 책 가운데 이 책이 가장 인기가 좋은 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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