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배경 및 전망


- 구 자 권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팀장 -


상반기 국제원유가 동향

2003년 이후 국제 석유 가격은 매년 시장의 예상을 크게 넘어서는 급등세를 이어오고 있다. 2004년(평균가격기준)에 20%이상 급등 한 데 이어, 2005년에는 50% 가량 급등하였다. 금년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년 초 중동산 두바이기준 55불 수준이던 국제 유가는 이란 핵문제, 나이지리아 공급 차질 등을 배경으로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1월 중순 60불을 돌파한 데 이어 5.3일에는 사상 최고 수준인 68.58불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5월 중순 현재 금년 평균 유가(중동산 두바이유)도 60불을 넘어서 전년 동기 대비 40%이상 급등하였다.

먼저 이러한 고유가가 몇 년째 지속되는 데는 근본적인 배경이 있다. 2000년대 이후 근본적으로 석유시장의 구조가 고유가 구조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즉 여유 공급능력의 부족,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견조한 수요 증가, 산유국들의 영향력 강화 및 고유가 정책, 석유 생산 비용의 상승 등이 그 배경이다. 지난 80년대 저유가 시대가 지속되면서 석유공급부문에 대한 투자부진으로 공급능력은 정체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반면 저유가 지속과 경제성장으로 석유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특히 최근 4년간 석유수요는 급증(연평균 2.4%, 570만 b/d) 하면서 여유 공급능력이 고갈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2003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세계 경기회복과 중국, 인도 등 개도국들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 석유수요가 견조한 상승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비OPEC 국가들의 공급증대는 한계에 봉착해 OPEC의 시장 점유율과 통제력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또한, 산유국들의 생산과세가 강화되고 철강 가격 등 투입비용이 상승하는 등 석유 생산비용이 증대된 점은 장기적인 유가의 하한선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요인들은 단기간에 해소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고유가의 고착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금년 상반기의 경우에도 이러한 구조적인 상승 요인이 작용하는 가운데, 몇 가지의 추가적인 강세 요인이 작용하였다. 첫째, 이란 핵문제의 부상이다. 금년 1월 이란이 핵 농축 활동을 재개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의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최악의 경우 석유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확산되면서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란이 세계 5대 산유국(하루 4백만 배럴 생산)인데다, 중동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지리적 정치적 위치 때문에 중동 정세 문제가 제기되면 가장 먼저 거론 되는 국가중의 하나이다. 그렇지 않아도 타이트한 수급상황에서 이란의 공급이 중단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수 있다는 것이 공급불안의 배경에 깔려 있다.
둘째는, 나이지리아의 공급차질이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하루 250만 배럴 생산)의 주 산유지역인 Niger Delta 지역에서 반군들의 테러로 석유생산이 중단되었다. 2월 중순 이후 현재까지 나이지리아 생산량의 20%이상의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반군단체들의 간헐적인 공격으로 석유근로자들이 일부생산시설에서 철수한 상태로 쉽게 생산이 재개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셋째는 미국 휘발유시장의 공급 불안이다. 미국은 광대한 영토와 대중교통인프라의 부족으로 개인용수송수단의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이에 따라 미국의 휘발유 소비량은 전 세계 휘발유 소비량의 50%가 넘는다. 특히, 5월말 미국 현충일부터 시작되는 여름철은 휘발유 소비가 크게 증가하는 드라이빙 시즌에 진입하게 된다. 따라서, 여름철의 국제석유시장은 미국의 휘발유시장이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금년의 경우에는 몇 가지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먼저, 작년 10월 미국 멕시코만의 허리케인내습으로 정유공장의 가동이 중지되거나 손상을 입은 경우가 많았다. 금년 들어서는 상당히 많이 복구는 되었지만, 유지보수기간이 연장되면서, 휘발유 성수기를 앞두고도 가동율이 매우 낮은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휘발유 성수기를 앞두고, 휘발유 재고가 9주 동안 감소하는 비정상적인 패턴이 나타나면서 휘발유 시장의 공급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더구나, 아직 에탄올을 공급할 충분한 인프라(수입, 수송, 저장시설)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휘발유첨가제인 MTBE 대신 에탄올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5월부터 전면 시행 되면서 공급불안이 촉발되었다. 이러한 휘발유시장의 공급불안은 휘발유가격의 급등 뿐아니라 국제원유가격의 상승 요인으로도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넷째는 국제 석유 시장의 투기자금들의 유입이다. 물론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요인들에 따른 후행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란 핵문제, 나이지리아, 미국 휘발유 시장 불안등이 악화되면서 차익을 노리는 국제투기자금들이 대거 유입된 것도 유가상승을 가속화 시킨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하반기 석유 시장의 주요 변수

그렇다면, 이러한 고유가는 하반기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공급능력 부족, 개도국 수요 증대, OPEC 고유가 정책 등 구조적인 요인은 하반기에도 그대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 금년 하반기가 아니라 최소한 향후 수 년간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두바이 기준 50불이하의 유가 안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둘째, 이란 문제도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요인이다. 실제 군사적인 충돌로 발전할 지는 미지수이나, 미국과 이란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마주 달려오는 열차를 연상시키는 국면이다. 또 이 과정에서 심리적인 불안감은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란 사태가 악화되어 군사적인 충돌로 발전하여 공급차질을 유발하든가, 서방측의 제제조치에 반발하여 이란이 금수조치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상반기 유가수준을 크게 넘어서는 추가적인 유가 급등은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아도 타이트한 수급상황에서 대규모 공급차질이 발생한다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1/3이 통과하는 호르므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심각한 위기국면의 발생이 불가피하다. 100불이상의 유가 급등도 불가피하며, 세계경제에도 일대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장기화는 모두의 공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역사적으로도 해협의 봉쇄가 발생한 적은 없다. 두 번째로 나이지리아 공급차질문제도 단기간 에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요 산유지역의 주민들은 석유생산의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한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결국 문제가 된 것이 이번 사태라고 본다면, 사태의 조기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특히 내년 나이지리아 대선을 앞두고 있어 사태지속가능성은 더욱 높다.
세번째로 미국시장의 휘발유 공급불안이다. 휘발유시장의 공급불안 문제는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는 생각이다. 아직도 공급이 불안하기는 하지만, 최근 가동율이 증가하면서 재고가 다시 증가하고 있고, 고유가에 따른 수요 둔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정부의 공급불안해소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산유지역인 멕시코만의 기상은 또 하나의 변수가 된다. 최근 지구 온난화 등으로 해수면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허리케인의 내습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작년의 경우는 매우 비정상적인 경우라고 불 수 있지만, 금년의 경우에도 안심하긴 이르다. 마지막 변수는 고유가에 따른 수요 둔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작년 허리케인 내습에 따른 고유가지속으로 수요 침체(demand destruction)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물론 금년에도 상반기의 고유가 추세는 분명 수요 둔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가 70달러를 넘어서면서, 특히 미국 시장의 휘발유 가격이 3갤런당 3달러를 넘어서면서 고유가 문제는 심각한 정치 경제적 문제로 부각하였다. 우선 미 부시행정부는 여러 가지 가격 안정화 조치를 내놓았고, 소비자들의 소비행태의 변화를 암시하는 움직임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 부분은 분명히 하반기 시장 수급에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의 경우 나이지리아 생산차질, 이라크 생산 차질 등으로 매우 타이트한 수급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하반기에 이러한 수요 둔화 움직임이 구체화된다면, 유가 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반기 유가전망

먼저, 미국 휘발유 시장의 공급 불안은 다소 완화되고 있다. 휘발유 가격 급등에 따른 수요 감퇴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유가안정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이란 핵문제나, 나이지리아 공급차질은 단기간에 해결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하반기에도 유가강세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란 문제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이란 사태가 악화되어 금수조치, 군사적 충돌 국면이 발생한다면, 유가는 큰 폭의 추가 급등이 불가피하다. 대부분 전문기관들은 대체로 이란 사태가 공급 차질등의 최악의 사태로 악화되지는 않고, 쌍방간의 지루한 밀고 당기기 게임이 지속되며, 허리케인 내습 등으로 인한 작년 같은 대규모 공급차질 사태가 없다는 가정하에 국제 유가는 60~65달러 수준(두바이 기준)에서 변동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 사태가 악화되어 공급 차질로 이어질 경우 국제유가는 두바이 기준 75~80달러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