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영철|대한석유협회 환경안전담당 과장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바람마저 불어 담배 한대 피우기도 힘들다.
우리 일행 7명은 마중 나온 가이드와 같이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버스정류장에 섰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우기가 시작되고 첫날 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얼마나 많이 들었던 도시 이름이던가!
미국의 상징 금문교가 있는 도시. 언덕을 오르내리는 전차, 영화 더록, 소살리토 등의 무대였던 도시. 우리 일행의 선진국 환경정책조사 출장 첫 출발도시는 그렇게 내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었다.
미국의 첫 번째 방문기관인 캘리포니아 대기보전국, 일명 CARB(California Air Resource Board)라고 불리는 곳을 가기 위해 우리 일행이 거쳐 가야만 하는 도시다.
가이드는 이리저리로 우릴 안내한다.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드라마처럼. 금문교, 전차가 다니는 언덕, 역사유적 등등. 샌프란시스코는 언덕과 계곡으로 형성된 독특한 지형 때문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꼭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금문교 앞에서 | 백악관 앞에서 |
개인적으로 이번 미국방문이 두 번째다. 15년전쯤 대학 4학년 때 2달간 배낭여행을 왔었다. 구세군회관에서의 공짜 잠, 애틀란타에서 거지와의 하루, 괴짜 유대인과의 만남 등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때는 미국이 너무 부러웠었다. 낮은 물가, 높은 복지수준, 그림 같은 집들, 해안가의 수많은 요트들이 우리나라와는 동떨어진 남의 나라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나라 같이 좁은 땅에서 그런 혜택을 누리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민소득 수준이 2만불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희망은 있어 보여 다행이다.
다음날 새크라멘토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엄청난 크기의 샌드위치를 먹었다. 일정이 빠듯해 기관방문을 마치고 이동 중에 잠시 들른 곳이다. 미국 직장인들은 대부분 이렇게 점심을 해결하는가 보다.
이곳은 영화배우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근무하는 캘리포니아주의 행정수도란다. 지나는 길에 혹시 아는 얼굴이 없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짧은 비행이후 L.A에 여장을 풀었다. 일정이 힘들어 모두들 쉬고 있을 무렵 일행 중 나이가 어린 김재일과장, 이임학박사와 함께 L.A밤거리를 나섰다. 밤에는 총 맞을지 모르니 돌아다니지 말라는 주위의 만류와 가이드의 충고를 무시한 채, 약간의 호기와 모험심으로 우리는 조그마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입구에서 1인당 12달러를 주고 안으로 들어서니 50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대부분 10대후반에서 20대초반으로 보이는 100여명 남짓한 젊은 남녀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시끌벅적 요란한 무대, 현란한 조명, 저절로 신이 났다.
몇 해전 인류학에 대한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 좀 더 사실적인 인류문화의 보편성에 대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넘 거창하나? 이들이 즐기고 있는 밤 문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 나선 길이었는데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다. 그들과 어울려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맥주도 마시며 그들의 문화를 경험했다. 나이를 망각한 채… 하지만 다음날 가이드와 일행으로부터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오후에 워싱턴DC으로 이동했다. DC는 District of Columbia의 약자로 특별구란 뜻으로 연방 직할지를 의미한다. 요즘에는 빌 클린턴과 르윈스키 사건이후 많은 사람들이 DC를 “위선의 도시(Deceitful Community)”라고도 한단다.
워싱턴의 겨울은 추웠다. 나중에는 눈까지 추적추적 내려서 더욱.
관광 온 사람도 별로 없어 백악관 앞은 썰렁하기까지 했다. 이곳이 세계 최고 국력을 가진 미국의 심장부인가? 여기저기 바리케이트와 경찰들… 9.11 테러이후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주요 건물들에는 차량폭발 테러 방지를 위해 건물주위로 돌기둥이 박혀 있었다.
아랍권에 대한 미국의 행동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이들 미국인들이 어쩐지 불쌍해 보인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세계 최고국가의 명암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환경부 청사를 방문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글쎄 통역이 안 되는 것이다. 어째 통역사가 한마디를 못 알아 듣는 것이었다. 미팅의 내용이 너무 전문적인 것이 문제였다. 통역사 자신도 난감해 했다. 다행히 우리 일행들 모두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과 아는 단어를 총 동원해 회의는 무사히 끝났다. 이번 출장을 통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통역사의 필요성을 느꼈다.
다음날은 뉴욕으로 향했다. 소형버스로 5시간을 달린 뒤 눈앞에 높은 마천루가 펼쳐졌다.
사실 나이가 좀 드신 우리일행은 이번 출장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좀 힘들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13시간 비행, L.A에서 워싱턴까지 5시간 비행, 뉴욕까지 버스로 5시간, 또 돌아갈 15시간 비행까지. 하지만 여러 도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지나 온 도시 모두 나름대로 특성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조용한 전원이미지, L.A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크고 넓고, 워싱턴은 잘 짜여진 이미지, 그에 반해 뉴욕은 전형적인 대도시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화려한 조명, 높은 빌딩, 뒷골목의 쓰레기들, 그 속에 숨어 있는 거지 등등…
우리 일행은 출장의 마지막 저녁을 그렇게 맨해튼의 한 귀퉁이에서 보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까지, 잠도 먹는 것도 담배도 술도 모든 일정을 함께 하다 보니 우리 일행은 서로 급속히 친해져 있었다. 개개인의 성격이며, 습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등등을 알게 되었고,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게 되었다. 이런 것이 여행의 장점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행은 그것이 어떤 성격이든지 간에 사람을 훨씬 성숙하게 만들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이번 출장은 미국의 체계적인 환경보호 시스템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우리 일행 모두 큰 탈 없이 건강하게 다녀와 더없이 기쁘고 유익한 여행이었다.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일행 모두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