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丙戌年) 개띠 이야기


“충성스럽고 영리한 희생양으로”


글·강욱|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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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띠를 가지고 삶을 영위한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기가 무슨 띠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띠는 아직도 우리의 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전통관념 중의 하나로, 각자 한국인의 심성에 자리한 자신의 모습이다.

새해는 병술년(丙戌年) 개띠의 해이다. 개는 한자로는 견(犬) 이외에 구(狗), 술(戌) 등으로 표기된다. 개는 포유류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화 되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주둥이가 뾰족하여 사냥을 잘하는 사냥개를 전견(田犬), 주둥이가 짧고 잘 짖어서 집을 지키는 개를 폐견(吠犬), 살이 많아 잡아먹기에 알맞은 개를 식견(食犬) 등으로 불렀다.

십이지(十二支)의 한 동물인 개는 일반적으로 온순하여 사람을 잘 따르고 사람의 일을 부분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동물로 알려져 왔다. 특히 사람에게 충성스러운 동물이기 때문에 충견(忠犬)이라는 명칭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대표적인 동물이다.

띠를 근거한 운세의 파악은 원천적으로 개의 충직성과 활발한 활동력 등을 바탕으로 한다. 특히 개의 영리함 등 개가 갖고 있는 동물적인 특성을 인간에게 부여함으로써 개띠의 상징적인 요소를 밝혀내고 있다. 개띠는 특히 예술적인 기예가 뛰어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실패가 적은 편이다. 한림의 ‘옛 조상의 삶 풀이’를 보면 개띠가 열두 띠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띠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띠의 사주로는 천예성(天藝星)이라고 하여, 기예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고 마음이 착하고 유순하다. 대개 부모형제와 인연이 없으나 부지런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재물운이 좋아 성공이 빠르고 청렴하고 정직한 편이다. 남자는 색욕이 강한 편이고 여자에게는 약하다. 호언장담을 잘하고 달변가나 가정에는 소흘히 하는 경향이 많다.

반면 여자는 재물을 모으는 일이나 자립심이 강하지만 수다쟁이가 많다. 그리고 여자는 팔자가 세고 남의 첩이나 재취 가능성이 높다. 남녀 모두 사치스러운 경향이 많고 새로운 일을 찾아 추진하는데 명수(名手)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기 때문에 근심과 고난도 많다.

세시풍속에서 개와 관련된 내용은 정월의 상술일(上戌日)과 정월 보름의 개보름쇠기, 그리고 삼복과 관련된 복날음식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정월의 첫 술일(戌日)을 개날이라고 하는데, 이 날에 일을 하면 개가 텃밭에 해를 끼친다고 해서 하루를 쉰다. 그리고 풀을 쑤면 개가 먹은 것을 토한다고 해서 풀을 쑤지 않는다. 또한 칼질을 하면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해롭다고 해서 칼질을 금하는 날로 전해져 왔다.

정월 보름에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개보름쇠기’가 있다. 이날 개에게 먹이를 주면 개의 살이 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 파리가 들끓는다고 한다. 강원도의 영동지방에서는 낮에는 밥을 안주고 아침저녁에만 밥을 준다. 경남지방에서는 저녁에 달이 뜨면 밥을 주며 “개파리 쓸자”하면서 개의 등을 비로 쓸어주는 풍속도 있다.

개보름쇠기의 특징은 개와 부녀자와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정월 보름에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달과 개의 상극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개에게 밥을 준다는 것은 달의 정기를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특히 달은 여성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여자의 본질인 음력(陰力)의 에너지원이다. 따라서 개에게 밥을 주는 여자는 자기의 음력을 스스로 소모시키는 행위였다.

여름의 삼복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우리는 보신탕과 삼계탕을 꼽는다. 이런 음식은 여름철의 더위에 지친 심신에 영양을 보충해 주는 보양제로써 효과가 있다고 전해왔다. 복날이 되면 사람들은 개를 개울가로 끌고 가서 잡아먹는데, 이를 충청북도에서는 ‘복다림’이라고 한다. ‘복날 개 패듯이’라는 속담은 복날에 개를 잡아먹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개는 살아 있을 때 집을 지켜주고 죽어서는 주인의 몸보신을 위해 희생하는 동물로써 상징된다. 이것은 소와 유사한 희생을 하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전국 각지에 산재한 ‘개무덤’ 전설에서 보듯 주인을 구하는 동물로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를 영감 있는 동물로 인식하여 왔다. 개가 10년을 넘도록 살면 둔갑을 하는 영물이 된다고 하여 늙은 개를 흉물시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개가 담 위에 올라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그 쪽 방향에 있는 집에 큰 흉사가 있을 것으로 알았다. 또 지붕이나 담 위에 올라가 짖으면 그 집의 주인이 죽는 것으로 알기도 하였다. 개가 앞마당에서 이유 없이 짖으면 경사의 조짐으로, 개꼬리에 지푸라기가 묻어 있으면 손님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개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속담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본래의 제 천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뜻으로 ‘개 꼬리 삼년 두어도 황모 못 된다.’고 하며, 평소에 좋아하는 것을 싫다고 할 때에 ‘개가 똥을 마다한다.’고 한다. 또 돈을 벌 때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벌어서 값지게 산다는 뜻으로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고 하며 보통 때에는 흔하던 물건도 필요할 때에 찾으면 드물고 귀하다는 뜻으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한다. 그 밖에도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 팔자가 상팔자’, ‘개싸움에 물을 끼얹는다.’ 등의 속담이 있다.

개는 우리 민족에게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을 받아왔던 동물이다. 특히 주인에게는 충성심을 가지며 그 밖의 낯선 사람에게는 적대심, 경계심을 갖는다. 집을 지키는 수호신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죽어서 인간을 보신시켜 주는 희생양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의 존재는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인간에게 매우 친근한 동물인 새해 개의 해를 맞아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