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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현숙 |여행작가


대관령 아래 동해 안쪽에 자리한 강릉은 산 들 바다가 두루 아름답다. 예부터 예술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렸거니와 강원도를 대표하는 도시답게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오면서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는 이 고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강릉단오제는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과 농경의례에서 비롯된 일종의 향촌제(鄕村祭)이다. 강릉을 찾았다면 먼저 예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선교장으로 가보자. 강릉의 전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옛 가옥이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경포대와 어우러져 연중 가장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선교장(중요 민속문화재 제5호)은 행정구역상으로 강릉시 운정동 431번지에 속해 있으며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가옥의 규모도 크지만 4천여 점에 이르는 장서와 손때 묻은 생활유물, 거기에다 아담한 연못이며 널찍한 정원까지 갖추어 놓아 살림집으로서는 드물게 완벽한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선교장에 들어선 순간 방문객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 주택으로는 가장 넓다는 이 살림집은 조선 시대 상류 계층이었던 전주 이씨 일가의 삶터로 알려져 있다.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옛 지명 배다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경포호가 지금의 크기보다 훨씬 더 넓었을 때 배를 타고 건넌다고 하여 배다리 마을(船橋里)이라고 불렀다.

강릉 사람들은 선교장을 곧잘 아흔 아홉 칸 집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쉰 다섯 칸만 남아 아쉬움을 더해준다. 그렇다면 왜 99칸 집이었을까? 그 당시 조선시대 양반들의 집은 어떤 경우에도 아흔 아홉 칸을 넘을 수 없었다고 한다. 돈과 권세를 드날렸던 양반들에게 99칸의 의미는 자못 큰 것이었다. 궁궐의 법도를 지키기 위해서도 99칸 이상은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교장 주변으로는 유명한 경포대와 경포호수가 있고, 율곡의 탄생지인 오죽헌이 있으며 방해정, 금란정, 취영정,경호정 같은 여러 정자가 자리를 잡고 있어 역사 기행지로 손색이 없다. 또 호수 남쪽인 초당동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썼던 허균과 중국에까지 필명을 드날렸던 불우한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살았던 생가가 남아 있어 함께 둘러보길 권한다.

이곳에서 경포 해변길을 따라 5분쯤 가면 강문마을이 나타난다.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을 지닌 강문은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에 자리한 작은 포구다. 경포팔경의 하나인 강문어화(江門漁火)는 강문 앞바다에서 밤에 불을 밝히고 고기잡이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 밤바다를 환히 밝힌 불빛은 길손의 마음을 환상으로 이끈다.

해변길은 남쪽으로 쭉 이어진다. 그 끝머리에는 바다낚시터로 좋은 안목항이 있다. 안목은 원래 ‘앞목’이었다고 한다.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란 뜻이다. 일본인들이 앞목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안목으로 고쳐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들고나는 고깃배들, 고동소리는 아침을 깨우고

이번에는 비린내 나는 주문진항으로 간다. 강릉에서 가장 강릉답다는 주문진항. 왁자지껄함과 질펀함이 가득하다. 포구 바로 옆에 선 어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찼다. 아침 7시. 밤새 조업에 나섰던 고깃배들이 고동소리를 울리며 하나 둘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고깃배들은 새벽 4시경부터 시작해 해가 둥싯 떠오른 8시경까지 계속해서 드나든다. 어시장이 가장 붐빌 때는 오후 3시-5시 무렵으로 찬거리를 사러 나온 가정 부인들과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어시장과 붙어 있는 어판장은 배가 들어오는 새벽 시간에만 좀 붐빌 뿐 오후 무렵에는 대체로 조용하다. 항구 곳곳에는 늦겨울 햇살을 받으며 어망 손질이나 어선 정비를 하는 어민들이 보인다.


▼해안길을 따라 소돌까지

방파제가 있는 항구 끝에서 해안길을 타고 쭉 올라가면 그림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밀려오는 파도와 끼룩대는 갈매기, 아득한 수평선…. 굽이굽이 이어진 해안길은 한 폭의 수채화다. 해안길 중간쯤에 있는 소돌은 주문진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해안길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소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소돌이란 지명은 마을이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었다고 하는데, 소돌 해안가에는 소의 형상을 한 소바위가 있기도 하다. 소돌 앞 바다는 낚시터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스쿠버 다이버들이 즐겨 찾는 다이빙 포인트이기도 하다. 목선 십여 척이 떠 있는 소돌항에서는 사철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어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소돌항에서 바다로 나 있는 돌길을 따라가면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아들바위를 비롯해 기암(奇岩)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자식 없는 부부들이 정성껏 기도를 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인지 아들바위 앞에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