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친해보실래요?
글·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
예술가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예술 장르는?
정답은 ‘건축’이다. 건축은 한 마디로, ‘남의 돈으로 하는 예술’이다.
건축이 예술이란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그 이유는 우리의 건축 풍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사람들이 건축을 예술로 느낄 기회는 거의 없다. 건축이란 부동산의 다른 이름일뿐이거나, 또는 건설이란 개념속에 갇혀있다. 대충 그까이꺼, 하는 식으로 집을 지어서 20년은 커녕 10년만 지나도 헐고 다시 짓는 풍토속에서 건축과 예술을 이야기하기조차 쑥스러을 지경이다.
물론 아주 일부, 극히 부자들에게만 건축이란 예술을 ‘소유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경우에도 예술이 잘 안나온다. 돈을 대는 건축주가 시키는대로만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실정이 이렇다해도 분명 건축은 예술이다. 물론 예술로서의 건축은 그 속성상 다른 예술 장르에 견줘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부자들의 예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뜻밖에도 건축은 오히려 다른 예술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이기도 하다.
미술을 보자. 미술은 소유의 측면에서는 가장 비 민주적인 예술이다. 미술은 본질적으로 작품을 소유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다. 물론 미술작품을 도록이나 화보로 감상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진품은 아니다.
음악은? 미술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 아무리 비싼 베를린필하모닉의 연주도 돈 만원만 주면 CD로 사서 즐길 수 있다. 가끔 라디오에서도 해준다. 물론 진짜 현장에서 생으로 즐기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래도 음악은 미술과는 달리 장르 자체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점은 영화도 비슷하다.
그러면 건축은? 분명 건축물은 어느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대신 건물 그 자체는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다. 그 안에는 들어가보기 어려워도. 예술 작품으로서의 건축물은 감추기가 쉽지 않다. 일단 공개된 공간에 지어지면 모두가 보고 즐길 수 있다. 한때는 임금님만 보고 즐기던 건축물도 이젠 모두의 것으로 돌아왔다. 그런 점에서 잘 지은 건축물은 그 자체가 바로 공공예술품이 된다.
지금은 건축이 전체 예술 분야의 하나로 갈래가 나뉘었지만, 사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예술이 건축에 종속되어 있었다. 건축 자체가 하나의 종합예술인 탓이다.
가령 회화의 경우만 해도 건축의 일부일뿐, 그 것이 독립된 장르는 아니었다. 그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 천정의 그림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당이란 건축에 종속된 것일 뿐이었다. 그런 점은 조각도 마찬가지였다. 건축을 장식하는 꾸밈새의 일부일뿐, 조각품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곧 건축은 모든 조형예술을 통합한 거대예술이었다. 실제 우리가 유명한 화가나 조각가로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 등의 인물들도 당시 개념으로 보면 건축가로 볼 수 있다. 건축가이면서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고 그랬던 것이다.
건축이 예술인 것은 여행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국내외 유명한 곳을 찾아갈 때, 목적지는 거의 대부분 자연이 아니면 ‘건축물’이다. 우리가 유명한 사찰을 찾아가는 것은 결국 그 사찰 건축물을 보러가는 것이고, 우리가 외국에서 유명한 궁전을 찾아간다면 역시 궁궐건축물을 보러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건축물을 보러 여행을 다니고 답사를 다닌다. 건축이란 예술을 찾아가는 것이 여행의 속성인 것이다.
이 건축란 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이 지대하다. 사람은 사는 곳의 지배를 받는다. 사는 곳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곧 집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자신이 사는 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하면 집다운 집으로 만들 것인지 고민했다. 오늘날 우리도 물론 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집, 집의 교환가치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건축가였다. 자신이 거처할 공간을 직접 설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직접 몸을 움직여 집을 짓지 않을뿐, 방향 배치와 방의 구조, 풍수적 입지 등을 모두 스스로 고려해 집을 지었다. 집의 넓이와 가격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을 수양할 곳으로서의 집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살 집은 자기가 지었다. 땅이 작으면 작은대로, 재료가 적으면 적은대로 고민해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초가집일망정 자기가 원하는대로 지었다. 온갖 지혜와 꾀로 자기 집을 꾸미고, 필요하면 고쳐나가며 살았다. 모든 사람이 건축가였던 시절이다.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해도 그랬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현대인들은 과거 모두가 지니고 있었던 건축적 마인드를 거세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공장에서 지어내 파는 집들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변화의 결과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는 것은 큰 문제다. 건축을 경제행위로만 만들어 장난치는 이들이 판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장사들의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소비자들에게 용인되는 것은 건축문화가 그만큼 얕다는 반증이다.
다행히 최근들어 우리의 건축문화는 조금씩 바뀌어가는 추세다. 예전의 권위적이던 관공서건물들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이 그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성냥갑처럼 획일적이던 아파트들도 나름대로 멋을 내기 시작했다. 건축이란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건축가도 이젠 스타가 나올법해졌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지만 건축이란 직종에 대한 인기는 분명 높아지고 있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수준이 올라갔다는 말이다. 먹고 살만 해야 건축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건축에 대한 책은 어떨까.
아쉽게도 우리 건축책의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알기 쉬운 건축책들이 최근들어서야 조금씩 나오고 있다. 그러나 좋은 건축화보집이나 이론서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외국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 시각으로 글을 쓰는 필자들이 서서히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건축이란 무엇인지 재미있게 알려주는 길잡이책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절하고 쉽게 건축이란 분야에 대해 소개하는 책으로는 서현 한양대 교수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98년에 나온 이래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최근 개정판이 다시 나왔다. 보통 건축관련 일반책들은 건축가들의 사변적 에세이나 기행문이 많은데, 이 책은 온전히 건축 입문서로 기획되어 나온 책이다. 전혀 전문적이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빼어난 장점이다. 차분하고 흥미롭게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건축의 세계를 소개하면서 건축에 대한 호감도를 서서히 높여준다.
국내 건축학자 가운데 가장 열심히 일반독자를 위해 책을 내는 임성재 이화여대 교수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도 검증된 건축 입문서다. 책 제목은 다소 딱딱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임 교수 특유의 진지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풍성한 교양상식을 함께 가르쳐준다. 주요한 건축물들의 가치를 보는 법, 건축을 이끌어온 흐름들, 그리고 건축가들의 고민 등등을 옛날 이야기 듣듯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건축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양상현 교수의 책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 통렬하게 우리 의식에 죽비를 내리친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의 문제점을 건축이란 키워드로 하나하나 ‘조져나가는’ 책이다. 건축 현실을 비판하는 교양서로 역시 임석재 교수의 책 <건축, 우리의 자화상>도 비슷한 시기 나왔다.
외국 멋진 건축물들을 시원한 사진과 함께 보면서 눈요기라도 하고 싶다면? 시공사에서 나온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건축의 역사>(조너선 클랜시 지음)가 제격이다. 컬러사진이 많은 책 치고는 값도 싼 편이다. 고대 건축물부터 최근 현대건축의 주요작까지 이른바 ‘핵심 정리’가 잘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