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석유제품, 이대로는 안 된다


글·김노아|월간주유소 취재팀 팀장


유사

석유제품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하지만 참으로 끈질기게도 유사석유제품을 적발하고 유통업자를 처벌했다는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이렇게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첫째, 유사석유제품 전문업자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차단막을 칠 때마다 전문업자들은 돌파구를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자동차 첨가제로 위장한 유사휘발유 때문에 골치를 앓던 정부는 2003년 8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을 통해 ‘0.55ℓ이상의 첨가제는 자동차 연료용으로 쓸 수 없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업자들은 이를 악용해 첨가제 용기를 즉 500㎖ 단위로 제작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단속을 피한 후 실제로는 500㎖ 용기 20개(10ℓ)를 상자에 담아 박스째로 판매하거나 배달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에서 ‘버터플라이’라는 이름의 자동차 첨가제를 제조하는 업자는 “아무리 정부가 막으려고 해도 업자들은 계속 방법을 찾아내고 유사휘발유를 만들 수밖에 없다. 높은 마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어떤 식으로 법을 개정하든 ‘항상 길은 있다’는 것이 전문업자들의 주장이다.


하루 40만원 버는데 ‘생계형 범죄’라니

둘째, 유사석유제품 단속이 그저 형식에만 그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유사석유제품을 전문으로 취급했던 전력을 가진 경기도 일산시의 한 주유소 사장은 도대체 유사석유제품 유통의 실체를 정부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유사석유제품을 만지는 사람들 중 누가 제일 많이 돈을 버는 줄 아나? 바로 길거리 판매상이다. 페인트 가게만 해도 임대료가 매달 들어간다. 누구는 생계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범법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웃기는 소리다. 이들은 유사 세녹스를 하루에 70~80통씩 판다. 통당 마진은 5,000원선이다. 하루에 40만원을 버는 것이다. 한달이면 도대체 얼마인가? 이런 사람들한테 몇 백만원씩 벌금 물려봐야 사라질 리가 없다. 생계형이라는 말도 그렇다. 그러면 주유소를 경영하는 사람은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길거리 판매상을 비롯해 소매점들을 상시적으로 단속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를 통해 제조자들이 팔 곳을 찾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 단속 효과를 높이고 나아가 유사석유제품의 유통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장으로 단속을 나간 경찰들은 “먹고 살려고 할 수 없이 유사석유제품을 팔고 있다”는 길거리 판매상들을 오히려 봐주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다. 형사 입건을 해도 몇 푼의 과태료만 내면 다시 풀려 나오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일벌백계’의 개념은 적어도 유사석유제품에 관한 한 무용지물이다.

셋째, 이미 유사석유제품은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소비자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 들었다. 요즘 유사석유제품의 ‘대표선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나다. 2004년 말과 2005년 상반기 동안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으로 기름값이 크게 치솟으면서 신나의 수요와 공급은 크게 늘어났다. 배달 판매를 홍보하는 명함이 주택가 골목에 돌아다니고 페인트 가게를 두 집 건너 하나씩 볼 수 있을 정도로 신나 판매가 성행하고 있다.

“한 통만 주문해도 배달을 나가는 업자들이 대부분이다. 경쟁이 워낙 치열해 어떤 식으로든 고객 데이터를 많이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마치 주유소가 난방유를 파는 식으로 소형 트럭에 신나를 가득 싣고 천천히 돌아다니다가 사무실에서 배달을 지시하면 갖다 주는 영업방식까지 동원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주유소 사장은 인근 페인트 가게의 영업행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오프라인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신나 판매업자들이 개설한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가 회원들을 모집하며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경우 ‘희석제, 그 유용함에 대하여(http://cafe.naver.com/tolsol.cafe)’,‘신나러브(http://cafe.naver.com/sinnalove2004.cafe), 석유화학제품(http://cafe.naver.com/bestsobu.cafe)’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밖에도 다음이나 야후, 엠파스 등 대형 포털 사이트마다 신나 판매정보를 나누는 동호회들이 수없이 많다.

인터넷에서 유사석유제품은 소위 ‘물’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좋은 물을 찾습니다”라는 문의가 게시판에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일상적으로 유사석유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디가 ‘톨쏠’인 한 운영자는 “도료사업자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소방서의 지정수량만 지키면 아무리 단속이 심해도 별 탈이 없다”며 “마진을 늘리기 위해 저질 신나를 파는 짓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 신나가 자동차 연료로 양성화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제조원료 단속 필요

앞서 지적한 세 가지 문제점의 뿌리는 주지하다시피 유류에 붙는 세금이다. 워낙 세금이 높으니 전문업자들은 유사석유제품의 제조와 유통을 그만두지 못한다. 지난 7월 2주 현재 휘발유가격에 포함된 세금은 ℓ당 868.65원. 세전가격(공장도가격)은 ℓ당 500원이지만 여기에 교통세 535원, 교육세 80.25원(교통세의 15%), 주행세 128.40원(교통세의 21.5%), 부가세 125원 등이 그 내역이다. 같은 시기를 기준으로 경유 세금은 ℓ당 551.97원이다. 지난 2000년부터 에너지세제개편안에 따라 경유에 붙는 세금이 매년 오르면서 경유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유사 경유가 크게 늘어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경유세금 인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금 외에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유사석유제품 제조에 필요한 소위 ‘용제’를 구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제조원료 단속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유를 정제하면 납사유분이 나오는데 이것을 가공해서 휘발유와 용제 그리고 납사를 생산한다. 납사는 원유 정제량의 30% 가량을 차지한다. 이 납사는 석유화학산업의 원료로 휘발유와 비슷한 성상을 갖고 있지만 세금은 전혀 붙지 않는다. 납사는 휘발유와 공장도가격이 거의 동일한 상태에서 석유화학공장이나 기타 제조공장으로 유통된다. 이 과정에서 불법 유통된 납사와 용제들이 유사석유제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용제 생산량 추이를 따져보면 이와 같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석유품질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와 석유화학회사가 생산하는 용제 생산량은 2001년 790천배럴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2002년에는 1,300천배럴, 2003년에는 2,590천배럴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 2004년에는 무려 3,799천배럴을 생산함으로써 생산량은 불과 3년 만에 5배 이상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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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 홍보와 추가 예산 확보 절실

한국석유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유사휘발유의 유통량만 봐도 대략 연간 515만배럴(내수시장의 8%)에 달한다. 액수로는 연간 1조1,064억원에 달하는 양이다. 또 세금 탈루액은 연간 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물량을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일단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왜 유사석유제품을 사용하면 안 되는지를 국민들에게 자세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유사석유제품은 자동차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라는 주문이다. 최근 유사석유제품 사용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자동차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시동이 잘 걸리고 주행이 부드러우며 연비도 휘발유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박용성 박사는 “신나의 경우 기본적으로 고온에서 활성화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 탈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며 “하지만 6개월 이상 사용하면 자동차 엔진은 거의 망가질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정품 휘발유를 기준으로 제작한 자동차라 신나의 발열성을 엔진 부품이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홍보비가 절실하다. 이는 정부에서도 예산을 받아내야 하는 부분이다.

또 석유업계의 각 주체들이 갹출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2004년에만 대소비자용 홍보를 위해(광고선전비) 48억원을 지출했다. 물론 덩치가 다른 회사를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옆 동네’는 이 정도로 홍보에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석유업계는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이다.


정상적인 사업자에게 절망 줘서야

유사석유제품이 많이 팔리면 누가 피해를 보는가? 정답은 석유업계다. 정유사, 대리점, 주유소 모두에 해당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석유업계 전체가 힘을 모아 유사석유제품 홍보와 근절 활동을 벌인 적이 거의 없다. 따라서 정부측에 단속 강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석유업계 전체적인 근절 대책을 세우고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절실하다.

유사석유제품은 서두에 지적했듯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경제에서 거대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석유업계를 좀먹고 나아가 공권력을 무시하는 범죄행위다. 특히 꼬박꼬박 세금을 내며 주유소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무시하기란 어렵다. 유사석유제품의 최대 폐해가 이것이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금을 내고 고생을 감수하며 주유소를 해야 하나?”

성실하게 사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유사석유제품, 이제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액션을 취해야 할 때다. 더불어 석유업계도 자체적인 유사석유제품 근절 활동에 빨리 돌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