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류 세금의 인하 필요성


글·신삼호|연합뉴스 기자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은 8할이 세금이다’

한때 휘발유에 붙는 세금이 너무 많다며 주유소들이 벽보시위를 할 때 나돌았던 여러 구호중 하나였다. 이 말은 지금도 휘발유값이 크게 올라가 수치는 약간 낮아졌지만 여전히 유용하다.

 최근 세금공화국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이는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세금, 담배로 인한 국민건강악화를 막는 데도 세금을 들고나오는 등 마치 세금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문제가 생기면 먼저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세금 만능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최근 세금부담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이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다. 세금에다 각종 사회보장성 준조세를 더한 국민부담액은 지난해 1인당 398만원(세금 315만원,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기여금)으로 지난 2000년의 290만원에 비해 37.2% 증가했다. 올해는 1인당 세금이 340만원으로 늘어나면서 국민부담금이 400만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를 4인 가족기준으로 환산하면 1천600만원 이상으로 올해 2분기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336만9천900원)의 약 5개월분에 해당한다. 다시말해 한 가족의 5개월치 소득을 세금이나 부담금으로 국가에 내는 것이다. 평범한 중산층의 가정주부가 단돈 몇 만원이 없어 쩔쩔매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과 비교하면 우리국민들은 대단한 애국자들이 아닐 수 없다.

  세금부담이 늘어나면 반대로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어 내수부진과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제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데도 아랑곳없이 세금이 늘어나자 사회 곳곳에서 세금 때문에 죽겠다는 아우성이 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때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했던 `국민연금이 숨겨진 ‘진실’과 같은 글들은 무거운 세금에 짓눌린 국민들의 신음소리로 들린다.

  이 때문에 세금을 낮춰 국민들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유가 급등으로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휘발유, 경유 등의 세금을 낮춰 국민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이중에서도 차량 한대에 가족의 생계를 걸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유가부담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고 이들의 유류인하 요구는 절규에 가깝다. 그러나 정부는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소비억제를 명분으로 내걸고 이런 유류세 인하요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휘발유, 경유 등에 붙는 유류세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역사가 꽤 길고 여러 사연도 숨어있다. 어쩌면 유류세 문제는 우리 정부의 세금정책으로 빚어질 수 있는 모든 문제들, 즉 과도한 세율, 조세 편의주의, 한번 생기면 없어지지 않는 목적세, 조세저항 등을 담고 있는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유류세와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세금이다. 현재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ℓ당 특소세 성격의 교통세 545원에 지방주행세 117.18원, 교육세 81.75원, 부가가치세 74.39원 등 모두 818.32원에 이른다. 여기에 원유를 수입할 때 무는 관세 ℓ당 3.8원, 수입부과금 14원 등을 감안하면 휘발유 1ℓ당 세금은 889원에 이른다. 휘발유 가격을 1천500원이라고 하면 59.2%가 세금인 셈이다. 휘발유 뿐 아니라 요즘 들어 소비가 늘고 있는 경유에도 ℓ당 총 568원의 세금이 붙고 등유에는 294원, 부탄 306원이 각각 붙는다. 특히 경유는 경유차가 늘어나면서 소비가 늘자 정부가 세금을 올렸다는 비난마저 듣고 있다.

  휘발유 등에 붙는 이런 세금규모는 영국,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세계 나머지 국가들보다 많다.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일본이 559원, 미국이 121원 등이다. 이 때문에 우리국민들은 미국은 물론, 일본 등 훨씬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의 국민들보다 절대금액에서 훨씬 높은 값에 기름을 사 써야 한다. 절대금액에서도 그렇지만 국민소득 차이까지 감안하면 우리국민들의 실생활에서 느끼는 체감 기름값 부담은 이들 국민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소비자들이 이렇게 비싼 기름을 사 쓰는 동안 정부는 지난해 유류세로 21조4571억원의 세수를 거둬들였다. 이 유류세가 작년 전체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2%다. 유류세는 지난해 석유소비량 1.4% 감소했지만 유류세는 오히려 늘었다. 유류세 총액은 지난 99년 15조8천544억원에서 2000년 16조1천749억원, 2001년 16조4천149억원, 2002년 18조5천5억원, 2003년 20조532억원으로 크게 늘고 있다.

이처럼 높은 유류세를 거론하자면 과거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전 휘발유 가격은 ℓ당 900원 아래였다. 외환위기로 환율이 달러당 900원대에서 1천900원대로 급등하면서 원유가는 배럴당 20달러대에서 거의 고정됐음에도 소비자 가격은 899원에서 1천200원대로 올라갔다.

  그런데 선뜻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한때 1천900원대까지 갔던 환율이 1998년 연말 1천200원대로 떨어졌으나 휘발유 소비자가격은 내려가지 않은 것이었다. 환율이 떨어지면 당연히 휘발유 가격을 내려야 하는데도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그해 세차레에 걸쳐 390원인 휘발유 교통세를 650원으로 올리면서 소비자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한마디로 외환위기 당시 정부 못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국민들에게 고통을 전가했던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국민들에게 휘발유 교통세를 중과하면서 원유가나 환율 상승으로 휘발유 가격이 1천200원을 넘어서게 되면 교통세를 조정해 이 선에서 소비자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며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후 원유가격이 높아지고 환율도 올라가면서 휘발유 가격이 1천300원, 1천400원대 등으로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교통세를 낮춰 1천200원대에서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얘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유야무야됐다.정부는 소비절약을 이유로 유류세를 인상했지만 유류세 인상이 과연 의도한 만큼의 소비절약으로 이어졌는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물론 세금을 많이 매겨 가격을 올리면 소비가 줄거나 소비 증가율이 둔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류는 가격에 대해 상당히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가격인상으로 소비를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자동차가 생활필수품화 돼 있기 때문에 가격에 비탄력적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과거의 통계를 보면 석유소비는 지난 2000년 7억4천255만배럴에서 2003년 7억6천294만배럴로 증가했고 작년 7억5천232만배럴로 약간 줄었지만 대체적으로 기름값과 석유소비량 사이에는 큰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정말로 석유소비를 줄이려면 하이브리드 차 등 차세대 연료절약형 자동차가 개발이나 실용화에 적극 나서는 게 옳은 방향이다. 국민들에게 고통을 강요해서 기름소비를 줄일 생각을 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백번 타당하다.

  아울러 막대한 유류세를 거뒀으면 운전자를 위한 교통여건 개선이나 각종 편의시설 설치 등에도 적극 나서야 하는 데 정부가 이런 쪽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해 운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경사가 심하거나 굴곡이 심해 교통사고가 잦은 도로가 여전히 방치돼 운전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일이라도 줄여야 유류세에 대한 저항이 조금이라도 낮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석유소비 증가, 이라크 전쟁 등에 의한 중동정세 불안 등으로 국제유가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이 사상 최고인 1천500-1천600원대로 높아졌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름값 인상이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니다. 물론 차를 놓아두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구조조정 당하지 않으려고 새벽 같이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상당수 직장인들이나 외근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이용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세수타령을 내세우지 말고 국민들의 생활보호를 위해 유류세를 내려 기름값을 낮춰야 한다.

  미국 조지아주는 최근 유가가 오르자 시민들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갤런당 7.5센트인 휘발유 세금과 4센트의 판매세를 받지 않기로 했다. 오클라호마, 매사추세츠, 코넷티컷, 팬실베이니아 등도 유사조치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가 상황에서는 주정부는 물론이고 시민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고통을 우선 고려했다는 점은 한국 상황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평가된다.

  정부는 세수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일엔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일단 세금을 붙이면 계속 걷으려 하고 한번 올린 세금은 웬만큼 비난이 쏟아져도 그 수준을 유지하려는 우리 세정의 고질병은 유류세 특히 두드러진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도 세금을 깎아주면 세수에 구멍이 뚫리고 마땅한 다른 세원을 찾지 못하는 한 국가재정에 주름살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금인하에 극히 인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민간 기업 이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또 고소득 전문직이나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세금탈루가 없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살펴보면 정부가 조세편의주의라는 타성에 젖어있는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과연 세금 증가에 따른 국민 부담이나 부작용을 정부가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새로 생긴 세목이나 인상된 세율에 따른 세수증가를 당연한 기득권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전제로 사업들 벌이고 씀씀이를 결정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정부는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사회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강 건너 일이라는 듯 계속 몸집을 불리고 행정복합도시 건설 등 여기저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참여정부들이 몇몇 부서에 제2차관을 두는 등 장관급 4명, 차관급 18명이 늘었고 각종 자문위원회를 12개 신설하는 등 정부는 비대화 됐다. 아울러 부동산 정책 홍보비로 43억원의 별도예산까지 책정하는 등 부적절한 데 사용된 세금도 적지 않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지방의원 유급화로 2천억원이 넘는 세금 부담이 생긴다.

  세금징수에 관련해서도 정부가 쉽게 거둬 쓸 수 있는 간접세에만 의존한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공평과세 논란이 참여정부에서도 여전히 일고 있다. 아울러 17조 6천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제일은행을 되팔아 1조 2천여억원의 차익을 얻은 뉴브리지캐피털이나 스타타워 빌딩을 매각해 2천600억원의 차익을 얻은 론스타를 비롯, 상당수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기업이나 부동산 거래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거두고도 세금을 한푼 물지 않았다. 물론 이들이 조세회피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등 한국정부가 세금을 거두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미리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법규정을 손질했다면 이들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막대한 차익을 들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수 감소를 내세우며 높은 유류세를 포함, 국민들에게 많은 세금 부담을 안기는 상황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설득력이 한참 떨어지는 일이다.

  세금이나 각종 국민 부담이 늘어왔지만 그동안 심각한 조세저항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별 고민없이 소주 주세를 올리기로 했다가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재검토하겠다며 우왕좌왕하는 등 정부는 세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커다란 산을 온통 쓸어가 버릴 것 같은 엄청난 눈사태를 일으키는 것은 마지막의 조그마한 충격 하나다. 눈이 쌓여 눈자체의 하중이 한계상태에 이르게 되면 조그마한 충격하나만 더해져도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지금 각종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직전에 와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조세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너무 과도하게 물린 휘발유 세금부터 낮추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