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보고서>


유럽의 EMC(Energy Management Course) 벤치마킹을 다녀와서


글·김현철|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팀 과장



지난 6월 26일 인솔교수(1명), 교육생(27명), 지원업무(2명), 동행가이드(1명)을 포함한 31명이 한 팀이 되어 해외 벤치마킹을 위해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서울은 장마가 막 시작되려고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서둘러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장시간 있을 여행에 긴장하며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잡아보려고 애썼다. 파리는 중간 기착지로 인천에서 11시간 정도 걸렸으며, 파리에서 최종 기착지인 독일 프랑크푸루트에 도착하여 숙소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으로 밤 10시가 다 되었다. 보통 한국과 8시간 정도의 시차가 있으나, 서머타임이 적용되어 7시간의 시차가 났다.

14시간 동안 비행기안에서 답답하다 첫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그제서야 이국땅의 낯선 풍경이 들어왔다. 일행들 모두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보니 참 긴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짧은 여행기간이나마 좀 더 많은 것을 보고자 아침 6시에 일어나 호텔 주위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보기 위해 사진기를 들고 숙소를 나왔다.

나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일행들도 밖으로 나와 구경 중이었는데, 그 중 낯익은 사람들과 같이 동행하면서 프랑크푸르트 시내와 호텔 주위를 구경하였다. 프랑크푸르트는 80만명내외의 인구와 허브공항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 금융·상업 도시로 유명하다. 도시설계가 잘 되어 있는지 녹지공간도 풍부하였으며, 자연 풍광도 참 좋았다. 우리나라의 건물과 주택위주의 도시와는 많이 달랐으며, 아침 산책시 느끼는 공기도 참 상쾌하였다. 불현듯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 후, 전체 일정 중 첫 방문지인 프랑크푸루트에 있는 Joham Wolfgang Goethe 대학 대기환경연구소를 방문하였으나,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와 지나가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비해 작은 차는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차의 크기와 사람을 비례해서 보는 편견은 적어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은 차들이 많았지만 유독 아주 작은 자동차를 발견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후 사진상에 있는 자동차가 거리에서 활보하는 장면을 여러 곳에서 보게 되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20분 정도 기다리고 있다가, 약속시간이 되어  1시간 정도의 기후변화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독일에는 방문한 연구소보다 규모가 더 큰 연구소가 2~3군데가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프랑크푸르트의 뢰머 광장은 국가의 중요행사가 열리던 장소이며, 뢰머 광장 정면에 있는 시청사 건물 2층 발코니는 히틀러가 총통으로 취임한 후 대중들 앞에서 “하이 히틀러”를 외친 곳이기도 하다. 시청사 건물 2층 발코니는 한국사람으로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차범근(축구선수) 2명만이 올라가 봤다고 한다.

뢰머 광장을 뒤로 한 채 독일 정통 음식인 돼지발꿈치 요리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맛은 바베규치킨 맛이었으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일행들 모두 이국의 음식 맛에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고추장과 같이 먹었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독일의 정신적 지도자인 쾨테 생가를 방문하고, 프랑크푸르트 일정을  끝내고 베를린으로 향했다.

베를린은 위도 51도에 위치하여 6월부터 10월까지만 따뜻하고, 그 나머지는 춥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추웠다고 하며, 면적은 서울의 1.5배, 인구는 350만명, 인구밀도는 서울의 1/5정도밖에 되지 않아 삶이 쾌적하다고 한다. 베를린에는 운하 및 인공호수가 많은데 그 이유는 식수원 저장과 물류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고 수해 방지를 위해 건설되었다고 현지 가이드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베를린에 도착하여 저녁 12시가 다 되어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한국과 태국식의 퓨전 음식을 먹었으나, 매우 짜고, 향료 맛이 너무 강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견학 이틀째, 베를린에서의 아침도 일찍 일어나, 호텔 주위를 구경하였다. 호텔 주위에는 성당, 광장, 박물관 등이 여럿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반팔 T셔츠를 입고 나와, 날씨가 추워 고생을 했다. 6월말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했다.

독일 연방환경·자연보전·원자력 안전부를 방문하려 가는 길에 베를린 장벽을 구경하였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 주민 6명중 1명(1,800만명중 300만명)꼴로 망명하여 61년 7월 43.1킬로미터 길이로 지금의 콘크리터 장벽으로 설치하였다. 지금은 많은 부분이 철거되었으며, 일정부분만이 관광자원으로 보전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휴전선이 철거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과 한편으로는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도 통일하는데”하는 안타깝고 씁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독일 연방환경·자연보전·원자력 안전부를 방문하여 교토의정서 발효 이후 독일의 기후변화협약 대응책에 대해 1시간 정도 설명을 들었다. 독일은 교토의정서에 의한 1차 감축대상국으로 지금까지 동독의 비효율적인 시설개·보수 등을 통하여 19%를 감축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2011년까지 21% 감축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었다.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원자력 활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원자력은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원자력 의존도를 감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듯 하였으며, 우리도 한번 더 되새겨 보아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옛말에 돌다리도 두들겨서 건넌다는 속담처럼….

우리일행은 점심식사후 GEOSOL(태양광발전회사)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방문하기 위하여 라이프찌히로 이동했다. 태양광 발전단지의 현장 근무자 1명이 반바지 차림으로 우리를 맞이 했다. 우리 일행에게 발전단지 내부를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태양광 발전단지는 1km×100 m 크기이며, 건설비는 2,200만 유러(원화 250억원), 규모는 5천kw로 세계2위(작년 독일 작센주 6천kw 건설-1위)이다. 집광판(셀)은 독일, 미국, 프랑스에서 생산된 제품이며, 사용연한은 40년이다. 정부가 20년간 45센트/kw를 보전해 주면, 10.5년부터 수익이 발생한다고 한다. 집광판 받침대는 아카시아 나무로 되어 있었다. 알루미늄보다 건설비용이 저렴하고, 병충해에 강하여 아카시아 나무를 사용한다고 한다. 

발전단지 주위에 아카시아 나무 1~2그루가 식목되어 있었는데, 현장 안내자는 아카시아 나무(우리나라와 동일)에 대해 병충해에 강하고 해충을 방지해 준다고 극찬하였다. 현장 안내자는 아카시아가 생명력이 너무 강하여 다른 나무를 고사시킨다는 것을 알고 나 하는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태양광 발전단지 견학을 마치고 라이프찌히 시내의 음악의 아버지인 바하가 지휘자로 있던 성당 및 동상을 둘려 보았다. 라이프찌히는 유럽 최초의 금속활자로 유명하며, 지금도 인쇄/출판 산업이 발전되어 있다. 라이프찌히 시청 지하 식당에서 독일 맥주와 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하고 하노버로 이동했다.

여기서 잠깐 독일인들의 식성을 보면 음식들이 대체로 짜다. 우리나라도 짜게 먹는다지만 우리가 짜다고 느낄 정도이니 서방세계 치고는 예외가 아닐 수 없다. 옛날에 먹을 것이 없어 짜게 해서 먹었던 것이 습관이 됐다는 얘기도 있고 옛날에 소금이 귀해서 지금 짜게 먹는다는 설이 있으나, 전자가 더 맞는 얘기일 것이다.

6월 29일 오전 하노버의 시청사 및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교회(성당분위기가 나는 교회) 등 시가지를 답사하고, 지질 및 자원연구소를 방문하여 지열 활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오후에는 폭스바겐 공장을 방문하여 1시간 정도 공장 투어를 했다. 폭스바겐측은 공장 출입시부터 카메라, 핸드폰 휴대를 금지시키는 등 보완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썼다. 공장 규모는 연간 1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었으며, 대부분 산업용 로봇이 작업을 수행하는 등 자동화 되어 있어 사람이 작업하는 구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공장 투어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을 하였으나, 직접 생산되는 과정을 보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폭스바겐 공장 견학을 마치고 하노버에서 오후 6시 40분에 네덜란드 암스텔담행 기차를 탔다. 저녁식사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한식)으로 먹었는데 독일인들은 마늘 냄새를 시체 썩는 냄새로 인식한다고 하여 동승한 독일인들을 신경쓰면서 되도록 빨리 먹었다.

오늘도 저녁 11시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호텔 로비에서 간단하게 조별, 회사별로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여행의 피로를 잊었다. 한국에서 땅콩을 준비해 온 일행이 있어 오래간만에 반가운 고국의 맛을 보았다

6월 30일 오전 풍차마을인 잔세스탄스로 이동하여 풍차를 구경하였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50%가 바다보다 낮아 풍차는 하천, 바다보다 낮은 땅에 있는 물을 퍼 내는 데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전기 펌프 등이 보급되어 관광지 외에는 풍차가 사라졌다고 한다. 믿어지지는 않지만 원래 네덜란드 국민은 다른 유럽민족에 비해 왜소하였으나, 우유와 치즈를 먹으면서 네덜란드인들의 골격이 커졌다고 한다. 현재 남자 평균 키는 183센티미터, 여자는 175센티 정도라고 한다.

오후에는 헤이그로 이동하여 이준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당시 만국평화회의장(현 국회의사당)를 구경하고, 쉘화학 유럽본부를 방문하여 미래 에너지원의 변화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쉘의 장기 전략은 “먼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로 요약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신선한 충격과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쉘과 같은 전략에 동참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 또한 인생을 계획하는데 좀더 적극적이고 치밀한 계획과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무엇인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겨났다.

다음 날 오전에는  WTC의 유럽기후변화거래소(EXC, European Climate Exchange)를 방문하여 유럽기후변화거래소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2005년 4월 22일 거래가 시작된 이후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40유러에서 지금은 100유러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기후변화거래소의 견학을 마치고 오후에는 프랑스로 출발하였다.

프랑스에 도착하여 몽마르뜨의 언덕, 성심성당을 구경하고 프랑스 현지식 식사를 하였다.

해외연수 일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우리 일행들은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매일 저녁 11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하고, 아침부터 일정에 따라 강행군을 하여 많은 것을 배웠지만 머나먼 이국땅에 공기는 익숙해 지지 않았다. 벌써부터 마음은 가족이 있는 집에 가 있는 듯 했다. 일행은 저녁식사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이국의 정취와 향수에 취해 들었다.

식사후 에펠탑 정면에서 사진을 찍고, 세느강의 유람선을 타고 시내야경 투어를 했다. 세느강은 작았지만, 유람선에서 보는 파리 야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유람선에서 미스 파나마를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해외연수의 마지막 밤을 모두 아쉬워 하면서 보냈다. 다시 오기에는 너무나 멀어서일까… 앞으로 언젠가 오게될지 몰라서일까, 아쉬움에 이국의 밤의 향취는 더 했다.

마직막 날, 에펠탑을 구경하였는데, 명성답게 굉장하였다. 대부분 중국, 한국 등 동양계 관광객이 많았으며, 긴 줄을 서서 구경을 했다.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관람을 하므로 수익도 엄청날 것 같았다.(관람료 10.7유러, 원화로 1만 4,000원)

에펠탑 관광을 끝내고, 개선문 및 샹들리제 거리를 관광하였다. 개선문은 나폴레옹 때, 전쟁에 나와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해 만든 문이며, 개선문 안에는 전쟁터에서 전사한 군인들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또한,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였는데 박물관 안에는 19C 제국시대때 이집트 등으로부터 침탈해 온 문화재가 진열되어 있어서 마침 요즘 우리나라와 프랑스간의 문화재 반환문제로 대두된 ‘외규장각’이 떠올랐다..언젠가 신문 사설에서 얼핏 본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라는 책을 언급한 일도 생각이 났다..수많은 소장품들이 자국의 식민지나 패전국들로부터 약탈해 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엄연히 있는 것은 어찌되었든 돌려주는 것이 도리고 섭리 아니던가… 이런 저런 생각에 씁쓸한 마음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소를 뒤로 한 채,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서둘러 끝냈다. 규모가 너무 커서 1~2시간내 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마지막으로 이번 해외연수 과정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파리 드골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연수과정에서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적극적이었던 김재학 과장님,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일행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정남일 상무님, 제 룸메이트인 김민배 차장님 그리고 모든 일행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회를 빌어 해외벤치마킹 일정을 짜고 동행해 주신 서주석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