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마당>
자연을 간접 경험하게 하는 책
구본준_한겨레신문 기자
사람은 왜 소금을 먹지 않으면 안될까?
답은 ‘진화의 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바닷속에서 살던 생물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은 바다속에서는 살 수 없도록 진화했지만 여전히 소금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지금 인간의 모습은 그 오래전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어떤 생물과는 전혀 다르지만 자연의 근원적인 법칙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소금이란 근원은 다시 말하면 자연 그 자체다. 인간이 아무리 도시를 만들어 자연과 스스로 떨어져 살아도 마음 한구석에는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이처럼 벗어날 수 없는 근원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바다를 떠났어도 몸이 소금을 찾듯이 도시에 살아도 마음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물론 막상 자연속으로 가서 살 수 있는 이는, 자연속에서 사는 번거로움을 견뎌낼 이는 몇 안되겠지만.
이처럼 자연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에게 잊었던 자연을 간접 경험하게 해주는 괜찮은 책들이 많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 있고, 얼마전 세상을 떠난 전우익 선생의 책 등 국내외 수많은 문인 명사들이 이런 책을 남겼다. 실제 서점에 가면 이런 주제의 책이 예상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데 놀랄 지경이고, 그래서 막상 찾아보려면 더욱 고르기 힘들 정도다.
최근에 아주 부담없이 자연속의 생활을 책을 통해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책이 2권 나왔다. 조근조근 이야기 들려주듯 쉬운 문체에 자연에 살아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지혜가 오롯이 담긴 책들이다. 두 책 모두 많지 않은 분량이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거창한 구호를 힘주어 외치지 않으면서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이 무엇인지 저절로 일깨워준다.
지난 70년대 노동운동의 대모였던 조화순 목사의 책 <낮추고 사는 즐거움>은 세련된 요즘 책들 사이에 끼어있다면 얼핏 놓칠 정도로 그 내용처럼 디자인도 차분하다. 하지만 이 작고 당찬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읽는 이를 놓아주지 않는 은근하고 강한 힘이 배어있다. 조화순 목사가 ‘노동운동가’라고 해서 지레 과격한 운동권 이미지를 떠올리지 말기를. 조 목사는 평생 상식적인 가치를 추구했고, 그랬기 때문에 어두운 시대속에서 남을 도울 수 밖에 없었던 이다.
조 목사는 당연한 권익을 찾으려다 ‘인분 테러’를 당했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동지로 옥고까지 치른 바 있다. 그렇게 18년 동안 노동운동에 헌신한 뒤 목회 현장으로 돌아가 농촌교회에서 10여년 동안 목회활동을 했다. 평생 변변한 집 하나 마련하지 못했을 정도로 남을 위해서만 살았다. 하지만 미련없이 그는 떠났다. 떠날 때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우연히 아는 사람이 시골로 오라고 했고, 그는 마치 미리 정해졌던 것처럼 도시를 떠났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평생 살아온 그는 역시 가슴속 목소리를 따랐던 것이다.
조 목사가 들어간 곳은 강원도 봉평 태기산 자락이다. 바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바로 그 봉평이다. 예순 두 살 이던 지난 96년 해발 750미터의 산 속으로 들어가 이후 혼자서 흙집 짓고 살고 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와도 친구가 되고, 해 뜨면 일어나 날 저물면 잠든다. 그렇게 10년을 사니, 저절로 그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한다. 머리는 하얘져도 얼굴에는 발그레한 생기가 도는 것을 보면 자연이란 최고의 의사이자 건강 트레이너이며, 카운슬러다.
책은 앞부분에서 자연속에서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후반부에서는 조 목사가 지난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자연속 삶에 이어지는 조목사의 지난 삶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들을 던져준다.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일체의 꾸밈이라곤 없다. 현란한 글 솜씨나 문학적 비유는 없어도 투명하고 맑은 삶과 지혜가 있다. 조 목사는 책에서 결코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자기가 자연속에서, 평생 노동운동하면서 배운 것들을 살짝 귀띔한다.
자연과 가장 친숙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라면 단연 첫 손 꼽힐만한 이들이 바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다. 이들이 여전히 ‘인디언’이란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에서 이들의 처지를 알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인간이 가장 잔인하게 같은 인간을 살육한 사례가 바로 미국의 역사다. 그 죄과를 감추기 위해 미국을 만든 백인들은 원주민들의 모든 문화를 멸종시켜버렸지만, 그들이 가꿔온 소중한 가르침들은 간신히 명맥을 이으며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요즘 이 원주민의 정신이 새로운 대안적 가치로 주목받고 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으며 인간의 선한 부분을 최대한 북돋워주는 평화적 가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우족 추장 ‘서있는 곰’이 쓴 <숲속의 꼬마 인디언>은 이 원주민 문화의 장점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추장 ‘서있는 곰’은 영어 이름이 ‘루터 스탠딩 베어’로,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사라져가는 원주민 문화를 가르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이다. 이 책은 그가 전통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로서 백인 어린이들이 원주민 어린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기 위해 쓴 책이다. 자신이 어떻게 자연속에서 원주민 방식대로 교육받으며 컸는지, 그리고 그 교육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책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자서전 형식이기 때문에 쉽게 따라 읽으면서 지금 현대인들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자연 중심의 교육과 가치관을 만날 수 있다.
이 ‘우뚝 선 곰’은 1868년, 열한 살 나이에 처음이자 마지막 들소 사냥을 한 뒤 백인들이 가르치는 칼라일 인디언 실업학교에 들어간다. 아버지 추장이 바뀐 세상의 흐름을 보고 아들의 교육을 놓고 고심하다가 아들을 위해 백인 학교로 보낸 것이다. 하지만 그곳 학교는 그가 배워오던 ‘자연속 학교’와는 너무나 달랐다. 모든 것을 강제로 시키는 백인식 교육 속에서 그는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경험은 그에게 평생 씻지 못할 가슴속 상처로 남았다. 원주민들은 결코 자녀들을 다그치거나 때리지 않고 타일러서 키웠기 때문에 그에게 그런 폭력적 교육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훗날 어른이 된 우뚝선곰은 1931년 그가 백인학교로 떠나기 전까지 받았던 수우족의 전통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으로 정리했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뭇 숨탄것들과 하나로 연결되어 살던 이야기, 그리고 꼬마에서 소년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의 이야기는 자연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우며, 그 속에서 겸손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또한 지금 현대인들은 자연과 소통하기보다는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하려고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을 꼬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