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마당>

나이들기 전 꼭 읽어야 할 책

구본준 | 한겨레신문 기자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분명 ‘나이듦’이다.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같은 말들이 들려오면 겉으로는 아직 먼 이야기처럼 여기면서도 가슴 한구석으로 남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끼는 이들이 많을듯하다.

사실 ‘나이듦’이란 단어도 이런 요즘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새로운 말이다. ‘늙음’이란 단어의 어감을 고려해 순화시키면서 많이 쓰이게 된 말인 것이다. ‘나이듦’은 ‘늙음’과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늙음’은 정말 ‘노인이 되는 것’이란 의미가 직설적이지만, ‘나이듦’은 모든 세대에 해당하는 단어로 들린다. 모두가 늙은 것은 아니더라도 모두가 나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니까.

분명 나이듦은, 노년기는 피할 수 없다. 따져보면 사람이 직장을 갖는데, 그러니까 사회에 나와 돈을 벌고 살아가게 되는 데 걸리는 준비기간이 무려 30년에 가깝다. 남자들의 경우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나면 취직하는 나이가 20대 후반이 될 수 밖에 없다. 요즘에는 대학을 나와도 대학원에, 해외 어학연수에 이것저것 갖출 것 갖춰야하는 분위기다보니 여성들도 20대 중반을 넘어서야 ‘밥벌이’에 나서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오래 기다려 들어간 직장에서 보내는 기간은 오히려 더 짧다. 한 직장은커녕 전체 직장생활 기간을 20년 채우기도 힘들어졌다. 어찌어찌 버텨서 간신히 30년 동안 돈을 번다고 해도 다시 30년이 기다리고 있다. 인생의 3분의 1 이상인 이 기간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돈이 몇억이다. 부부가 함께 최소한의 기본적인 수준의 삶을 유지하려면, 1달에 한 번 부부가 영화 한편 보는 비용까지 집어넣는다면, 최소 지금 5억원 정도의 재산을 마련해놓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준비해야 물질적으로 인생의 마지막 30년을 버틴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사는 이 모든 것은 실은 노년을 준비하는 과정일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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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정신적으로는 어떻게 노년을 준비해야할까?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절로 살다보면 나이 먹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인생을 더 산 사람들이 덜 산 사람들에게 늘 “너희는 그러지 마라, 준비 안하고 있다보면 바로 이 나이가 되어 있더라”고 하는 말에 정답이 있다. 특히 인생 바쁘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느날 문득 돌아본 자신의 나이는 충격일 때가 많다. 그 유명한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 중 가장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작가 시몬 드 보봐르는 아예 <노년>이란 책까지 썼던 사람인데, 그 책에서 “노년만큼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도 없지만, 또한 노년만큼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없”더라고 했다.

이처럼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결론은 한마디로 ‘나이듦’이란 절대 ‘연착륙’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준비하고 대비해야만 진정 노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든다는 것은 단순히 해가 갈수록 크리스마스가 자주 오는 현상이거나, 아니면 안경 찾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자손의 숫자가 친구의 숫자를 역전하는 것만도 아니다. 흔한 말로 “곱게 늙었다”라는 말 들으려면 미리부터 마음속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인생의 노화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런 참고서라도 있느냐, 궁금해질텐데 세상의 모든 것은 책으로 다 나오는 법. 나이드는 것에 대한 멋진 참고서들이 있다.

‘나이 듦’에 대한 책은 의외로 많이 있고, 그 역사도 오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국내에도 출간된 책은 로마시대의 정치인이자 웅변가인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궁리 펴냄)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1세기때의 이야기지만 나이듦의 본질이야 달라질 것 없는 탓에 이 책은 이 분야의 고전으로 꼽힌다. ‘플루타크 영웅전’에도 나오는 이 유명한 키케로가 역시 그 영웅전에 등장하는 정치인 카토가 두 젊은이가 나이드는 것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을 빌어 ‘노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독재에 반대했던 인물로도 유명한데, 카이사르가 암살 당한 뒤 집권한 안토니우스가 무자비한 정치를 펴자 다시 한번 반대했다가 안토니우스가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이 <노년에 대하여>는 그가 죽기 1년전인 62살에 쓴 길지 않은 수필이다.

이 책에서 키케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년’에 대한 통념을 정면으로 깨뜨린다. 노년이란 결코 모든 욕구와 능력이 사라진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청년, 중년, 노년 모두 각 시기별로 그 시기에 알맞은 욕구와 능력이 주어지며, 그런 욕구와 능력을 잘 조절하고 발휘할 때 가장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여정은 정해져 있으며 자연의 길을 하나이며 단순하지. 또 인생의 각 시기에 적절한 특징이 주어져 있다네. 그리하여 유년기의 연약함, 청년기의 격렬함, 중년기의 장중함, 노년기의 원숙함은 각 시기에 거두어져야만 하는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다네.”라는 구절이 특히나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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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의 책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사람 소노 아야코가 쓴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리수 펴냄)다. 이 책은 지은이가 마흔한살이던 1972년 쓴 뒤 일본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 지은이가 쉰한살 때와 예순다섯살 때 고쳐 다시 펴냈으며 지금도 계속 팔리는 스테디셀러로도 유명하다. ‘늙음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계로록’(戒老錄)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소노 아야코는 이 책말고도 <중년이후>(리수 펴냄)도 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가치있는 삶과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중년부터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직설적이고도 구체적인데 가령 연륜 대신 뻔뻔스러워지는 노인들의 습성은 왜 그런 것인지 분석하는 내용 등이 특히 그렇다.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려랴, △노인이라는 것은 자격도, 지위도 아니다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라 등을 강조하면서 노인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철저하게 자립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예 작정하고 유쾌하게 나이듦을 다루는 책으로는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민음사 펴냄)이 있다. 이 책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그림동화작가 존 버닝햄(68)이 경로우대증을 받고 새삼 자기 나이에 충격을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구상한 책이다. 자신이 직접 쓴 것은 아니고 주변 사람들, 그리고 영국의 저명인사들에게 ‘나이듦’에 대한 감상이나 나이드는 것의 의미를 물어 이야기를 모았다. 그리고 수많은 책 속에서 노년에 대해 다룬 유명 글귀를을 묶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버닝햄 자신은 특유의 유머러스한 삽화를 그려넣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유쾌하고 솔직담백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한결같이 나이 든다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우며 새로운 삶의 여정인지 가르쳐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년기를 행복하게 보내려면 ‘유머 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또한 “많은 것이 변하지만, 더 많은 것이 그대로 남는다”는 프랑스 속담이야말로 노년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도 귀띔하며, 나이들어 줄어드는 것은 성생활뿐이니 변화를 두려워말고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그리고, 오히려 나이들어 더 좋아지는 점도 상당하다는 것을 들려준다. 그게 무어냐고? 책을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