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고유가 정착과 대응
고 광 진 대한석유협회 회장
고광진 |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유인 두바이유가는 미국• 이라크전 개전 직후인 2003년 4월에 배럴당 23.8달러를 저점으로 하여 올해 3월에 45.8달러로 급등함으로서 2년만에 92%의 상승율을 기록한 후에도 연일 사상최고치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어 그 결과와 파장을 아직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수년 내에 유가가 최고 배럴당 1백달러 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해외 증권기관의 전망은 기우가 아닌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유가에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차 에너지원중 석유의존도가 45.6%로 주종에너지원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자주원유개발 비율은 지난 해 3.8%로 전년에 비해 다소 높아지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소요 원유의 대부분을 해외로부터 도입에 의존하고 있고,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유가상승은 직접적으로 원유도입비 부담 증가를 가져와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서민경제에는 물가상승에 따른 소비침체를, 기업에게는 원가상승에 따른 채산성 악화와 투자 위축을 초래하여 겨우 되살아 나기 시작한 소비회복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유가 상황은 일시적인 수급차질이 아닌 구조적인 수급불균형에서 비롯되고 있는 점이 과거 경험했던 석유위기와 다른 점입니다. 전세계 석유매장량의 77%, 석유공급의 40%를 차지하는 OPEC의 추가 공급능력이 거의 소진된 반면, 전세계 석유 소비의 25%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석유수요가 경제성장에 따라 급증을 지속함에 따라 수급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는 가운데, 소비국 각국의 비축수요 확대로 이어져 수급불균형을 심화시키고, 투기세력이 가세하여 유가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문제는 산유국의 지정학적 불안정과 수급 불균형 심화 등 석유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쉽사리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어 고유가의 고착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제에너지(IEA)기구가 최근에 원유 수입국들에 대하여 고유가에 대한 비상대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하는 경고음을 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석유의 고갈과 에너지 부족에 대한 우려가 증대됨에 따라 자원확보를 둘러싼 각국의 첨예한 경쟁과 대립은 점차 격화되고 있습니다. 탈 화석연료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일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으나 향후 수 십년 동안에도 석유 기반 경제가 지속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따라서 수급불안이 가중되고, 고유가가 지속될수록 석유의 ‘정치화’는 가속화될 것이며, 세계 제 2위 및 3위 소비국인 중국과 일본의 석유확보 노력이 최근에는 영유권 다툼으로 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양국은 시베리아 송유관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데 이어, 인도양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유전과 천연가스 개발을 둘러싸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조어도의 영유권을 놓고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이 최근 독도 영유권을 제기하는 배경에는 주변해역의 부존 자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범 국가적 차원의 자원 확보 대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고, 민관이 합심하여 산유국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2008년에 자주개발 원유공급비율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아래 노무현 대통령이 자원확보를 위한 활발한 순방외교를 펼치고, 아프리카에 대한 자원외교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민간 기업도 정유업체를 중심으로 에너지 주권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종전의 지분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해외 유전의 광구 운영권을 인수하는 직접 투자 방식으로 전환하고, 대상지역을 아프리카, 중남미, 러시아 등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석유개발 투자는 투자의 회임기간 길며, 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최근 에너지 위기를 맞아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해외 유전 개발 투자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울러 해외 자원 확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한국계 석유메이저의 육성을 위한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거대 석유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공기업 위주의 석유개발 전략에서 탈피하고, 효율성 제고를 위해 민간주도로 전환하고 있음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급변하는 에너지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에너지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법적 • 제도적 정비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제기돼왔습니다. 이에 따라 에너지 법체계를 통괄하는 ‘에너지기본법’이 국민적인 관심 속에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 법이 담고 있는 새로운 기구인 ‘국가에너지 위원회’의 운영을 둘러싼 이견으로 인해 ‘에너지 기본법’ 제정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음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루 속히 합의점이 도출되어 에너지 백년대계의 초석이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에너지 공급대책과 아울러 수요관리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국민적 호응이 요구됩니다. 고유가의 파고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함은 물론이거니와 오는 2013년부터 우리나라도 이행 당사자가 되는 기후변화협약에 대비하여 지금부터 체질개선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