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고유가 정착 및 교토의정서 발효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
김현진(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 수석연구원)
최근 에너지의 세계에는 거대한 트렌드 변화를 암시하는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급등하는 유가이며, 또 하나는 교토의정서 발효에 따른 온실가스 규제 사회로의 전환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1. 가시화되는 고유가 시대로의 전환
2003년 초반부터 급상승하기 시작한 유가가 최근 들어 원유가격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하고 있다. 두바이유는 배럴당 45달러를, WTI는 배럴당 55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2002년 초반만 해도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18-19달러에 불과하던 유가가 3년 만에 2.5배가량 급등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유가의 급등을 제대로 예측한 전문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일례로 2003년 말 대부분의 국제유가 전문기관은 2004년 유가를 배럴당 24-25달러 전후로 예측했다. 이와 같은 예측의 근거로는 이라크 사태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국제석유시장의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2004년 국제유가는 배럴당 33.74달러를 기록하여 예측치를 무려 10달러나 상회하였다.
2004년 말 권위 있는 국제유가 전문기관들은 또다시 국제유가를 예측하면서 2005년에는 2004년의 유가 상승기조에서 벗어나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판단의 가장 큰 근거로는 중국경제의 연착륙 가능성 등으로 수요의 증가폭이 완화되고 정치적 불확실성도 다소 해소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예측을 뒤엎고 2005년 초반에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하자 이제 이들 기관들은 앞다투어 국제유가 전망치를 상향조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4년 국제유가 전망치 및 실적치(두바이유)
전망기관 | 전망시기 | 전망치 | 2004년 유가 |
EIA | 2003.12 | 24달러/배럴 | 33.74달러/배럴 |
CERA | 2003.12 | 25.2달러/배럴 | |
ESAI | 2003.11 | 23.3달러/배럴 |
이러한 유가 예측의 가장 큰 오류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이라크 사태 등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라는 지정학적 요인에 대한 낙관론이며, 둘째는 국제석유시장의 수급상황에 대한 낙관론이다. 실제로 최근 1, 2년 사이에 석유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은 급격히 증대되고 있다. 석유 수요가 계속 예상을 웃도는 속도로 증가하여 통계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반면 공급 여력은 감소되고 있다. OPEC의 잉여생산능력은 2002년 700만 b/d 수준에서 2004년 8월에는 58만 b/d 수준까지 크게 떨어졌다. 기업의 합리화 및 비용 절감노력으로 석유재고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석유정제에 대한 투자 부족과 가솔린 품질규제의 강화 등이 맞물려 석유정제능력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지정학적 불안요인 역시 향후 고유가의 지속을 우려케 하는 최대 요인이나, 유가 예측에서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 국제석유시장의 발달과 함께 ‘시장상품’으로서의 석유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으나 9.11테러 이후 에너지의 세계에서는 ‘정치화’가 다시 가속화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 석유매장량의 2/3, 천연가스 매장량의 1/3이 집중되어 있는 중동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향후 수년간 유가 안정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거대에너지 소비국의 에너지 확보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있으며, 특히 거대 에너지 소비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에너지 확보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2. 온실가스 규제사회의 도래
에너지 세계의 거대 트렌드 변화를 알리는 또 하나의 현상은 바로 선진국에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과한 교토의정서의 발효이다. 교토 의정서는 2005년 2월 16일 미국의 탈퇴, 러시아의 극적 비준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체결된 지 8년 만에 공식 발효되었다. 교토의정서의 발효가 에너지 세계에서 지니는 가장 큰 의미는 국제사회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온실가스의 배출을 규제함으로서 화석연료의 소비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은 1차 의무이행기간(2008-2012년) 중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해야 하게 되었으며, 동 기간 중 미달성분의 1.3배를 2차 의무이행기간에 부과하는 제재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교토의정서 체결 당시 개도국으로 분류되어 1차 의무이행기간(2008-2012년) 중에는 감축의무 대상국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2005년 하반기부터 개시되는 2차 의무이행기간(2013-2017년)에 대한 추가협상에서는 OECD회원국이자 CO2 배출량 세계 9위인 우리나라에 대한 감축의무 압력이 거세질 것이 자명하다.
교토의정서는 발효 이후에도 온실가스의 규제강도나 감축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3월에 교토의정서 탈퇴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미국은 자국 경제에의 영향, 온실가스 거대 배출국인 중국 등이 빠진 상태에서의 실효성, 과학적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교토의정서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교토의정서와 다른 길이란 온실가스 배출을 의무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 아닌 획기적인 신기술의 개발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2002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1990년 대비 10.9% 증가하는 등 교토의정서상의 감축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EU는 에너지 효율이 낮은 동구권 국가들을 통합하여 배출감축 목표의 달성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상태이다. 향후 환경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함으로서 EU내에서 활동하는 기업 및 EU로 수출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EU의 규정을 따르도록 강제할 예정이다. 따라서 EU는 미국 기업 역시 EU에서 기업활동을 하거나 EU에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이 규정을 준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미국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교토의정서 체제로의 복귀가 불가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 기업 경영환경의 지각 변동
교토의정서 체제를 둘러싼 여러 가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감축 및 에너지 효율에 대한 규제 사회의 도래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 세계의 변화는 기업의 경영환경에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기(CO2)에 가격이 형성되어 유통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라는 20세기형 성장모델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닌 국가들을 중심으로 탄소세 도입 등 환경규제의 대폭적인 강화가 현실화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규제 강화는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직결되고 있다. EU역내 국가들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탄소세를 도입하여 교토의정서 발효에 대비해 왔으며, 일본도 2006년부터 환경세를 도입할 예정이다.
정부의 탄소세 도입검토에 대해 일본 재계는 이례적으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원유가격의 상승과 온실가스 감축의무 부담 등으로 비용 증가에 직면해 있는 상태에서 탄소세 등의 규제강화까지 겹칠 경우 원료의 조달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경우 국제경쟁력이 크게 손상된다는 것이다. EU는 폐가전 수거의무화(2007년), 가전제품에 대한 유해물질 사용 금지(2006년) 등을 도입할 예정으로 있으며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담은 ‘REACH'시스템도 현재 검토되고 있다. 'REACH'시스템이 발효되면 소재・부품 기업들의 원가 상승이 불가피해짐으로서 관련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적용될 경우에는 경제 및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심각해 질 것이 자명하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전력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의 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적용되어 온실가스 배출에 상한치가 부과될 경우 자체적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서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거나 배출권 시장을 이용하여 배출권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이 불가능한 최악의 경우 생산량 자체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급증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 비용 및 에너지 효율 제고를 위한 투자비용으로 생산원가가 급증하게 되고 이는 물가 상승과 경제성장률 저하로 직결된다.
4. 국내기업,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유가의 지속과 온실가스 규제사회의 도래라는 변화에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첫째, 고유가 시대와 온실가스 규제사회의 도래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직시하고 에너지 사용 절감 및 효율화를 기업의 필수적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이제 환경경영은 기업의 이미지 제고 등을 위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가야만 하는 그리고 갈 수밖에 없는’ 길이 되고 있다. 또한 환경경영은 이미 기업의 긍정적 이미지 구축을 넘어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다국적 화학회사인 듀폰(Dupont)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69% 감축함으로서 20억 달러의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BP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까지 1990년 대비 10% 감축한다는 목표를 9년 앞당긴 2001년에 달성하였으며 이로 인해 6억 5천만 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따라서 조기에 지속가능경영체제로의 전환을 도모하여 강화되는 규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에서 진행 중인 CDM프로젝트
업체 | 승인일자 | 대상국가 | 개요 |
도쿄전력 | 2004.10 | 칠레 | 메탄가스를 회수, 연소 |
J파워 | 2004.7 | 칠레 | 천연가스로의 연료 전환 |
스미토모 상사 | 2004.5 | 인도 | 대체 프레온의 파괴 |
이네오스 케미칼 | 2003.7 | 한국 | 대체 프레온의 파괴 |
도요타 통상 | 2002.12 | 브라질 | 목탄을 이용한 철강 생산 |
둘째, 패러다임의 변화는 항상 새로운 사업기회를 동반한다. 고유가 시대의 도래와 교토의정서 발효를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의 기회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급성장하고 있는 공기시장은 다양한 신 사업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의 현지조사 및 실시, 시장거래 중개 업무, 온실가스 감축량 인증 서비스 등 관련 비즈니스가 급성장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 절약 관련 시장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에너지 절약기술을 청정개발체제(CDM)에 활용하는 움직임도 대두되고 있다.
셋째, 기업간 그리고 업종 간에 연계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여 신기술이나 관련 규제 동향 등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온실가스 감축비용을 절감하도록 공동 대응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