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사 글마당]

석유는 사랑과 우정을 맺어주고…

글 | 최종원 현대오일뱅크 영업기획팀 과장

올해가 2005년… 기름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지도 어느덧 햇수로 14년이 되어간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
1992년 7월 6일 처음 기름과 인연을 맺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또 학부형이 되고…
물론 30년이 넘게 기름땀을 흘리시는 공장의 선배님들도 많으시지만…
석유와의 인연은 단순한 직업이 아닌 내게는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건 바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나의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만나게 된 것도 바로 석유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내 결혼보다도 더욱 어렵다는 동기 여동생과의 결혼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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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사를 해서 연수를 받을 때 같은 반에 동기들이 약 20여명 되었다.
나는 학교를 일찍 들어가고 군대도 짧고 강하게(?) 다녀와 같은 반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재수는 물론 삼수, 다른 회사를 다니다 온 동기들… 무려 4년이나 차이 나는 선배님(?)들도 계셨다.
그런데 그 중 2년정도 차이 나는 형이 한명 있었는데 키도 크고 얼굴도 핸섬하고 분위기도 좋아 졸졸 쫓아 다니며 친하게 지내곤 했다.
물론 동기지만 깍뜻하게 형님으로 모셨고 갖은 아양을 다 떨며 기분을 맞추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혹시 여동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처음에는 전혀 그런 내색을 비치지 않다가 좀 친해진듯 싶어지자 나는 형에게 꼬리를 흔들며 의사 타진에 들어갔다.
“형! 내가 요즘 혼자 잖아요… 혹시 여동생 있으면 소개 좀 시켜줘요..”
아이고 이 말을 하려고 나는 그 동안 갖은 아양과 귀여움을 떨었던 거지..
그런데 들려오는 대답은 정말 기가 막혔다.
“나 여동생 있긴 한데…. 시집 갔다. 애도 하나 있는데…”
이런! 닭 쫓던 개가 하늘 쳐다 보는 격이라더니…
그 순간 난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한 참을 쏘와 보다 그냥 돌아서 자리를 떠나 버렸고 한동안 그 형과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선배형이 나를 부르더니 “아직 그 마음 변함이 없는거야?”
라고 물어 보는게 아닌가.
나는 다시 바싹 다가가서 후배라도 소개시켜 주려나 하며 반색을 보였다.
“동생이 한명 있기는 한데… 너무 어려서… 아직 학생이야.. 3학년이다!
그래도 만나볼 생각이 있으면 얘기 해라.”
나야 못만날 이유가 없지… “아이고 형님… 소개만 시켜 주세요! 하하하!!!”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 질 수 있을까…
며칠전만 해도 여동생 없다고 쳐다 보지도 않다가 이제 와서 이러니 어지간히 주책이긴 하네…
그러면서 시간이 되면 이번 주 청주(청주에서 대학)에 가서 직접 만나보라는 것이다. 자기는 시간이 없어 내려갈 수 없다고…
그날은 1992년 8월 15일 광복절…
청주로 내려가 약속했던 커피숖에서 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3학년 학생이라 아직도 상당히 앳돼 보이는 솜털 보송보송이…

그 솜털 보송보송이와 난 1년 3개월간의 연애끝에 양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무난히 결혼에 골인 하였다.
나중에 들을 얘기 였는데 처가에서는 아직 어린 학생이라 내게 소개시켜주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 했다고 한다.
거기가 직장인이니 아무래도 결혼을 전제로 만날 가능성이 높은데 너무 어린 나이가 부담스러웠다나…
하지만 동기 선배가 적극적으로 나를 추천하며 아주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냥 얼굴이라도 보고 오라고 강하게 밀어 주었던 모양이다.

충청도 양반들이신 장인 장모는 동기인 선배가 나를 어련히 알아서 추천했겠냐는 믿음과 정유사에 근무한다는 든든한 배경에 후한 점수를 주시면 결혼을 승낙 하시어 만난지 1년 3개월만에 우리는 웨딩마치를 울리게 되었다.
어느덧 결혼한지도 11년이 지나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이 되는 두 아이와 매일 매일 티격태격 싸우는 아줌마가 다 되었다.

집사람과의 인연 외에도 석유하면 떠오르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 주유소집 아들 승룡이 녀석이다.
초등학교 시절 난 하늘아래 첫동네인 강원도 대관령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동네가 워낙 작아서 대부분의 가게는 완전 독점이어 친구들 이름 대신 미장원집 누구, 이발소집 누구, 빵집 누구 이렇게 불리우곤 했다.
물론 승룡이 녀석도 동네 하나뿐인 주유소집 아들로 불리웠고 그 당시 주유소는 단순한 기름집이 아닌 부와 권력(?)을 상징하며 주유소 사장님은 마을 유지로 운동회나 소풍갈 때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시곤 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며 그 주유소의 폴싸인은 유공(SK의 전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든든한 후광 덕분인지 승룡이 녀석은 하루가 멀다하고 말썽을 부렸는데 그 대부분이 동네 친구들 또는 형들과의 주먹 다짐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녀석의 아버지는 주유소 사장님 이외에도 말썽꾸러기 승룡이 아버지로 더 잘 알려지셨고 하루가 멀다하고 말썽을 부리는 친구 녀석 때문에 여기 저기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 하시느라 허리를 펴지 못했다는 전설도 있었다..
가끔씩 집에서 쓰는 곤로에 사용할 석유(등유)를 사러가면 친구 녀석이 쪼르르 나와서 뒷 창고 기름통에서 됫박으로 퍼주곤 했다.
그 위험한 기름을 됫박으로 퍼주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 었으니…
아버지 몰래 기름을 반 됫박 더 퍼주며 씩 웃곤 하던 승룡이 녀석의 웃음이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난 비교적 조용한 성격에 몸집도 작은 편이었는데 덩치 크고 우락부락했던 승룡이는 이상하게도 나를 잘 대해주었고 전혀 괴롭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가 석유와의 최초의 인연이었으리라..
내가 커서 기름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사람들이 가끔씩 기름과 인연을 맺고 나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가 물어 볼 때 마다 나는 주저없이 이야기 하곤 한다.
귀엽고 건강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평생을 함께 하고도 부족해 다음 생에도 함께 하고 싶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또 하나 초등학교 시절 싸움꾼 승룡이 녀석이 아버지 몰래 반됫박 더 퍼주던 기름 창고의 됫박이 그립고 또 그립다…

석유에서는 기름냄새뿐 아니라 깨소금 냄새도 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기름냄새에서 어린 시절의 그리움과 우정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