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오리멀전(Orimulsion)이란 무엇인가?
글·최종근|서울대학교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21C가 시작되면서 꾸준한 수요증가와 국제정세의 불안 그리고 일부 투기성 거래로 인하여 시작된 고유가는 일시적 상승에 그치지 않고, 배럴당 40달러를 넘는 “고유가 지속”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석유는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산업의 원료로 사용되어, 현대 산업사회의 “혈액”과 같은 요소가 되었다. 따라서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국가간 경쟁이 가시화되면서 에너지자원의 확보는 경제활동은 물론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다는 “에너지 안보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국내 상황으로 인하여, 신재생 에너지와 석유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풍력, 태양광, 수소연료전지 등으로 대표되는 신재생 에너지는 많은 연구와 세제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력의 한계와 고비용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따라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업계는 석유를 대체할만한 현실적 대체연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가 오리멀전(Orimulsion) 이다. 여기서는 공학자의 입장에서 오리멀전의 정의와 특징 그리고 사용에 따른 기대효과에 대하여 소개하여 일반인들에게 오리멀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석유의 정의 및 특징
오리멀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석유(petroleum)와 탄화수소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석유는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주어진 온도와 압력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탄화수소의 혼합물로 정의된다. 원유(crude oil)는 액체상으로 존재하는 석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석유는 미량의 질소, 산소, 황, 헬륨 등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주성분은 탄소(무게의 84-87%)와 수소(11-14%) 이며 탄소(C)-수소(H) 결합구조를 가지고 있어 탄화수소(hydrocarbon)라 한다. 구성성분이 비슷하면 이들의 물성이 유사하며 특히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하여 원유를 분리하는 것이 정제이다. 탄화수소를 이루고 있는 탄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비중과 끓는점이 증가하며 <표 1>과 같이 세분하여 나눌 수 있다.
탄소의 개수가 적은 메탄(CH4)과 에탄(C2H6)의 경우에는 지하와 지상 조건에서 주로 가스 상태로 존재하며 수송은 파이프라인이나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이루어진다. 석유가스라 불리는 프로판(C3H8)과 부탄(C4H10)은 대개 지하에서는 원유 속에 존재하며 (이를 용해가스(dissolved gas)라 함),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섭씨 30도 내외에서 쉽게 분리되며 이들을 액화한 것이 액화석유가스(LPG) 이다. 석유를 구성하는 탄소고리수가 5-18개 내외이면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고 그 이상이면 대개 고체상으로 존재한다.
탄소의 개수가 20개 이상으로 증가하거나 가벼운 휘발성분들이 줄어들면 밀도가 증가하고 유동성이 감소한다. 따라서 고온의 지하에서는 액체상태를 유지하나 온도가 낮은 지표면 부근 지층이나 지상에서는 고체나 반고체의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러한 석유를 역청(bitumen)이라 한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의 마지막에 남는 아스팔트나 광물밀랍(mineral wax)도 역청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역청은 목재와 배의 방수와 부식방지를 위해 고대부터 사용되었다. 요약하면, 석유는 탄수수소의 혼합물로 가스는 기체상, 원유는 액체상, 그리고 역청은 고체상으로 존재하는 석유의 대표적 예들이다.
오리멀전의 정의 및 특징
오리멀전은 베네주엘라(Venezuela) 오리노코 지대(Orinoco Belt)에서 생산한 천연 역청(natural bitumen)에 물과 계면활성제를 첨가하여 유화상태로 제조한 액상연료의 명칭이다. 에멀전(emulsion)이라 불리는 유화는 천연 역청을 크기가 작은 입자(13-15 마이크론)로 만들어 물속에 분산시켜 액체상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오리멀전은 생산지와 천연 역청을 유화한 특징을 그 상품명으로(Orinoco + Emulsion) 하며 천연 역청(~70%), 물(~30%), 그리고 소량의 계면활성제(0.2%)로 구성되어 있다. 물은 점도를 낮추기 위하여 사용하며 역청과 물의 혼합을 용이하게 하고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계면활성제를 추가한다. 계면활성제를 사용하면 오리멀전의 유동성이 좋아지고 연소를 위한 분사효율도 향상된다. 초기에는 주로 페놀계 계면활성제를 사용하였으나 생태계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위험성으로 인하여 지금은 알코올계 계면활성제를 사용하고 있다.
오리멀전은 중유와 역청탄(석탄)의 중간적 성질을 보이는 것 같지만, <표 2>를 보면 오리멀전의 많은 특성은 중유 특성의 70%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는 30%의 물로 천연 역청을 유화한 제조특성에 따라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석유와 석탄은 발열량이나 구성성분 등에 차이를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큰 차이는 석유는 석탄과 달리 연소시 발생하는 재와 불순물의 함량이 적어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리멀전도 연소시 발생하는 재가 0.1% 이내로 중유와 매우 유사하지만 석탄의 일종인 역청탄(5-20%)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오리멀전의 주원료인 역청은 석탄과는 달리 개질과 분해를 통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며 다른 석유제품과의 혼합사용이 가능하다. 황 성분과 부식성이 높은 바나듐의 함량이 높아 연소시설에는 탈황 및 오염저감 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매장량 및 공급
오리멀전의 주원료가 되는 천연 역청은 베네주엘라 오리노코 지대에 1조 2천억 배럴(1,860억 톤)이 부존하며 그 중 생산이 가능한 가채 매장량은 2,670억 배럴(410억 톤)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석유소비량이 8.4억 배럴이었으니 국내에서 약 32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역청의 부존은 1930년대 중반에 알려졌지만 채굴과 운반, 사용의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유가로 인한 경제성의 부재로 연료로 사용되지는 못하였다. 그 후 베네주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와 BP(British Petroleum)사의 계속된 연구로 물과 알코올계 계면활성제를 사용하여 역청을 유화한 오리멀전-400을 개발하여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천연 역청은 점도가 높긴 하지만 부존하고 있는 지하 500-1,000 미터 사이에서는 지열로 인한 온도 상승으로 유동이 가능한 액체상태로 존재하므로 석유공학에서 원유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기법을 이용한다. 역청이 부존해 있는 저류층과 유정(well)과의 접촉면적을 증가시켜 회수효율을 높이기 위해 일반적인 수직정이 아닌 저류층을 관통하는 수평정을 사용한다. 지상에서는 유정의 굴착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지상 한 지점에서 여러 개의 지하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방향성 시추기법을 사용한다.
지하 저류층에서 생산된 액체 역청은 지표면으로 이동되면서 온도의 감소로 인해 그 유동성이 급격히 저하되어 반고체화 되는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희석제를 사용한다. 희석제를 사용하면 생산지에서 오리멀전을 제조하는 공장이 있는 지역(Morichal 소재)까지 파이프라인을 이용하여 추가적인 가열이나 처리 없이 상온에서 수송할 수 있다. 도착된 역청은 염수제거와 재활용을 위한 희석제 회수과정을 거친 후 작은 입자상태로 물 속에 산재하는 유화상태로 만들어 진다. 30%에 해당하는 물은 인근 오리노코 강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제조된 오리멀전은 3oC 이상이면 유동이 가능하며 80oC까지 그 안정성이 유지된다. 따라서 상온에서 해안 수출터미널까지 300km가 넘는 거리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송하며 원유선적과 동일한 원리로 수송선에 선적하게 된다. 오리멀전의 누출로 인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중벽 탱크를 사용한 안전한 선박을 사용하고 있다. 오리멀전의 생산 및 판매는 베네주엘라 국영석유회사의 자회사인 비토르(Bitor) 회사(Bitumens Orinoco)가 맡고 있으며, 각 국가별 대리인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중국, 캐나다, 일본, 한국 등 세계 10여 개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많은 매장량으로 인하여 장기계약을 선호하고 있다. 비록 장기계약에 의한 공급을 받고 있지만, 한 회사에 의한 공급, 베네주엘라 정치불안, 노사갈등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한 수급의 불안정성을 염려하기도 한다. 따라서 국내 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일정량의 비축은 필요할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회원국으로 석유수출량 규제를 받고 있는 베네주엘라는 오리멀전을 석유와는 별도의 제품으로 분류하여 판매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연간 650만 톤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4년 이내에 그 생산량을 3배 이상 증가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오리멀전의 도입비용은 약 $70-80/톤으로 비교적 저렴하여 그 열량이 중유의 70% 수준임을 고려하여도 중유가격의 약 50% 수준이다. 그동안 지속된 고유가와 보다 저렴한 에너지자원을 확보하려는 각국의 노력에 의하여 오리멀전의 수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가격도 상승하는 추세에 있다.
사용에 따른 기대효과
오리멀전이 처음으로 상품화에 성공하였을 때는 석탄수준의 가격, 일정한 품질, 액체연료의 장점, 상온에서의 수송 및 저장, 풍부한 매장량, 연소 시설의 유사성 등으로 인하여 “전기생산을 위한 꿈의 연료”로 인식되어 발전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페놀계 계면활성제가 인체와 생태계에 미치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면서 일부 환경론자들로부터 “지옥에서 온 연료”라는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8년 이후에는 알코올계 계면활성제를 사용함으로써 이와 같은 문제점을 완화하였고 온실가스, 미립자와 미량원소, 질소 산화물 등도 중유 연소와 비슷한 결과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비록 황 성분과 부식성이 높은 바나듐의 함량이 높지만 이들은 발전소의 표준적인 탈황시설과 집진시설로 충분한 처리가 가능하지만 일반적 탈황·집진시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오리멀전은 그 유화 특성으로 인하여 상온에서 점도가 일반 중유보다 낮으며 석유의 수송과 저장에 사용되는 장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의 중유는 120oC 내외의 예열을 필요로 하는 반면, 이미 작은 입자의 형태로 유화된 오리멀전은 60~65oC의 예열만 필요하다. 특히 일반 연소기를 통하여 얻게 되는 입자보다 더 작은 크기를 유지하므로 빠르고 완전한 연소가 가능하여 불연소 탄소량이 매우 적다. 중유나 석탄을 사용하던 발전소도 최소한의 구조변경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상온에서의 저장 관리와 낮은 예열온도로 인하여 환경문제를 제외한 연소측면에서는 중유시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해상에 누출된 유류는 그 유류의 특징, 누출량, 조류, 그리고 바람에 의해 그 확산의 정도가 결정된다. 물보다 가벼운 대부분의 유류는 해수면을 따라 확산되는 현상을 보인다. 오리멀전은 분산성이 좋고 비중이 물보다 무거운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소량이 누출되었을 경우에는 해수면뿐만 아니라 물속으로도 분산되므로 빠른 희석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많은 양이 누출된 경우에는 광범위한 지역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고 오염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없으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해양 오염은 오염원의 차단과 복구가 어려우므로 오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맺으며
석유는 탄화수소의 혼합물로 탄소고리의 개수와 주어진 온도 압력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역청은 탄소수가 대부분 70개가 넘어 상온에서는 고체상태로 존재하는 석유의 대표적인 예이며 온도를 증가시키면 점성이 감소하여 액체상태로 유동이 가능하다. 오리멀전은 천연 역청과 물을 혼합하여 유화상태의 액상으로 제조한 상품명으로 가격과 열량, 매장량, 사용의 편의성, 연소시설의 유사성 등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황과 바나듐의 함량이 높아 비록 환경적인 우려는 있지만 현재의 기술과 실제 사용되고 있는 결과들을 살펴보면 사용에 따른 큰 문제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화석원료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사용에 따른 환경부담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고 공급자도 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공급책임이 있다. 따라서 화석연료 사용과 배출가스 저감 규제에 대한 준비는 필요할 것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오리멀전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으며 그 논쟁의 핵심은 오리멀전의 분류와 분류에 따른 세금과 의무부담 여부이다. 행정적인 결정은 관련 이익집단과 국가정책의 영향을 받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분류와 합리적인 관리이다. 이와 같은 정확한 분류와 관리는 향후 유사한 문제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고 그 관리 능력을 향상시킨다. 장기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한 시장질서가 확립되고 궁극적으로 국내 에너지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관련 업계도 이윤추구와 사회책임이라는 두 가지 기업의 존재목적을 이루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