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다시
100
달러에 이를 것처럼 상승하던 국제유가가 다시 저유가 수준으로 회귀했다
. 2019
년초
이후로 형성되는 유가 수준은
WTI
기준으로 봤을 때 약
55
달러
내외에 불과한데
, 2015
년 저유가 국면이 시작된 이래로 평균 유가 역시 이 정도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
회귀
’
했다라는 표현이 딱히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
유가가
2015
년부터 장기적인 저유가 구간에 접어든 이유는 단순하다
. 2000
년대
BRICs
전성기 시절에 나타났던
100
달러 이상의 고유가에 익숙했던 석유업계가
,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려가며
2015
년에서는
30
년 래 최대라 할 수 있는 과도한
투자수준을 보였기 때문이다
.
즉 지금은 그렇게 과도하게 투자되었던 그 유전들이 속속들이 생산을 시작하면서
전반적인 공급과잉이 이어지는 국면으로 이해하면 된다
.
실제로 엑손모빌
(ExxonMobil),
쉐브론
(Chevron),
쉘
(Shell), BP,
토탈
(Total)
세계
5
대 오일메이저의 투자비율
(
자본투자
/
매출액
)
을 조사해보면
, 2015
년
15%
수준에 근접해
1988
년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바 있다
.
이런 현상은 싸이클산업
(cyclical business)
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과거에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던 패턴들이다
.
투자비율이 최고였던 순간은
1985
년이었다
.
그 때도 지금과 분위기는 비슷했다
. 1973, 78
년 두 차례 오일쇼크는 전 세계를 고유가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다
.
그 대단한 미국이 석유부족현상에 겁을 먹은 나머지 수출금지조치를 발표하고
,
중동의
OPEC
이 북미
/
서유럽으로부터
50
년
넘게 유지되었던 석유패권을 빼앗아 간 것도 모두 이 때 발생했던 일들이다
.
당연히 당시 사람들은 큰
돈을 벌 수 있는 석유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
일례로 멕시코는 그 즈음에 칸타렐
(Cantarel)
이라는 초대형 유전을 발굴해냈는데
,
이로 인해 자금이
대규모 유입되면서 경제가 활성화되며 한 때 세계
GDP 10
위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
정말이지 석유붐
(boom)
이었다
.
그러나 늘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
그렇게 끝 모르고 개발되던
투자유전들이
1990
년을 전후로 속속 신규가동을 시작하자 석유시장은 서서히 공급과잉 국면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
때 마침 석유를 덜 쓰려는 기술들
,
예를 들면
고연비 자동차나 가스발전소 등이 속속들이 등장하면서 소비마저도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
이는 자연스럽게
유가의 하락을 불러왔고 놀랍게도
1998
년까지
10
년 넘게
내리 추락하기만 한다
.
게다가
1998
년은 우리에게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겠지만 아시아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 순간이었다
.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WTI
기준으로 봤을 때
1998
년 한 해 동안
평균 유가는
14.4
달러에 머물고 만다
.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치일 것이다
.
심지어
Dubai
는 일시적으로
9
달러까지 하락하기도 했었다
.
그야말로
10
년 넘게 이어진 충격적인 장기 저유가 국면의 결과물이었다
.
그렇게 충격적인 저유가 구간을 경험하고 나니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과거 고유가 시대의 경험을 망각한다
.
한 때
15%
근접할 때까지 상승했던
5
대 오일메이저의 투자비율은
2000
년
~2005
년 구간에는
5%
레벨까지 급락을 한다
.
이제는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다
.
그렇지만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전에서 산출될 수 있는 석유물량이 갈수록 부족하게 되고
,
때마침
BRICs
라는 개발도상국 중심의 에너지 수요 폭발기에 진입하면서 유가는 다시 상승세를 그리기 시작한다
.
결국
2007
년에는 오일쇼크 때를 뛰어넘는
150
달러에 도달하기도 했고
,
리먼사태의 위기로 급락이 있었지만 곧바로
회복되어 그 이후
2014
년까지는
100
달러 내외에 머무는
고유가 시대에 안착하게 된다
.
이 때 또 1998 년 평균 유가 14.4 달러의 공포를 완전히 망각하고 지나치게 과도한 투자를 집행한 것이 바로 앞서 설명했던 2015 년이다 . 그리고 이 때까지 투자되었던 유전들이 현재 생산으로 속속들이 연결되면서 결국 석유의 공급과잉 시대를 우리는 ‘ 다시 ’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 마치 1985~2000 년 구간처럼 말이다 .
통상 유가는 고유가와 저유가의 싸이클 (cycle) 을 각각 10 년 정도 유지한다 . 즉 주기가 10 년 내외다 . 이 같은 일 발생하는 이유는 유전개발의 기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일반적으로 유전을 개발할 때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7~8 년 , 많게는 10 년의 기간이 소요가 된다 . 이 부분이 핵심인데 , 석유업계가 2000 년에 저유가의 공포에 휩싸여 아무도 투자하지 않고 있다가 2005 년을 전후로 유가가 급격히 오르자 그 때부터 급하게 다시 유전투자를 재개했어도 , 결국 실질 생산으로 연결되는 것은 약 10 년 뒤인 2015 년부터이기 때문이다 . 즉 2019 년 지금에서도 저유가인 이유는 10 년 전에 투자했던 물량들이 속속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투자가
2015
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공급과잉의 압박은
2025
년 전후한 시점까지는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
.
올 초
EIA
가 이미
1,100
만
b/d
를
넘어 세계 최대
,
사상 최대 산유량을 기록 중인 미국이
2022
년에는
1,500
만
b/d
넘게까지 산유량이 늘어나게 된다고 전망한 것도 이와
연관된다
.
뿐만 아니라 올 해부터는 멕시코와 브라질의 대규모 신규유전도 가동이 시작된다
.
즉 적어도
2019
년 현재 시점에서 다시 유가가 급반등을 해서
100
달러 시대에 진입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싸이클산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기에 나오는 분석들에 불과하다
.
이제 다운스트림
(downstream)
으로 내려와서 살펴보자
.
정유산업은 기본적으로 석유와 일관공정화 되어 있는 산업이다
.
한국은
비산유국임에도 독특하게 석유 없이 정유
-
석유화학의 대규모 공단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렇지
,
사실 일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은 구조를 지닌 국가 및 기업은 많지 않다
.
석유
-
정유
-
화학이 일관공정으로
통상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
원유
(crude oil)
는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
정유설비를 거쳐 휘발유
,
등유
,
경유
,
납사 등의 형태로 변환을 시켜야 우리에게 현실적인 쓸모를
지니게 된다
.
이 말인즉슨 산유량이 늘어나면 일단 정유설비도 증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글로벌데이터
(GlobalData)
가
2022
년까지 중국과 중동을 중심으로
1980
년대에 맞먹는 대규모
정유설비들이 진입한다고 분석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는 그림이다
.
산유량 지속 증대된다면 정유설비도
그만큼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
따라서 석유의 공급과잉만큼 정유설비의 공급과잉 또한 불가피하다
.
화학도 다를 바 없다
.
이미 셰일혁명으로 큰 재미를 본 미국의 에탄
크래커들이 최근 대규모로 진입하면서 공급과잉을 가시화 했는데
, 2021
년 이후로는 단순히 미국뿐만 아니라
역시 중국과 중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설비들의 진입이 예정되어 있다
.
물론 이는 시황에 따라 연기될 개연성도
있지만
,
역사적인 양상으로 살펴본다면 그렇게 안이하게만 바라볼 것도 아니다
.
즉 장기적인 공급과잉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
화학산업은 석유산업이 태동된
1900
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시작된다
.
당연히 당시 미국과 유럽의 화학업체가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었는데
,
이
판도를 깨트린 것이 바로
1930
년을 전후로 한 일본이다
.
그들은
낮은 임금과 지대를 바탕으로 함과 동시에
,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대규모이자 신식설비를 앞세워
미국
/
유럽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화학업계를 주름잡게 된다
.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로 인해 그들도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서
‘
낮은 가격
’
의
이점이 사라지게 되는데
,
이 때
1970
년을 전후로 한국과
대만이 일본과 똑 같은 전략
,
즉 저가 전략을 토대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일본을 밀어내고 역시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된다
.
하지만 우리도 이제 경제가 발전했다
.
임금과 지대는 만만치 않게 높으며
,
설비 자체도 아무리 정기보수를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도 구식이다
.
반면
현재 중국과 중동은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자금력과 에너지 보유량
,
그리고 낮은 임금과 지대를 바탕으로
우리가 일본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유
/
화학 산업을 장악하기 위해 점차 진입하고 있다
.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될까
?
역사만 봐도 답은 뻔히 나와 있다
.
그렇다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정답은 하나다
.
기술의 장착이다
.
사실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유수의 화학기업들
,
즉 다우뒤퐁
(DowDuPont),
바스프
(BASF),
신에츠
(Shin-Etsu)
등은 이제 순수화학기업이라
부르기 힘들다
.
농화학
, IT
소재 등등 다양한 기술을 장착해
사실상 특수소재업체로서 명성을 유지해가고 있다
.
그들이 이렇게 기술을 장착하게 된 이유 역시 우리와
같은 고민에서 나왔다
.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70
년대에 우리가
저가 전략을 바탕으로 시장에 밀고 들어오자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발전한 것이었다
.
이제는 반대로 우리가
그들을 보고 배워야 할 때다
.
마침
4
차 산업혁명과 스마트시티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세상이 점점 변하고
있다
.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세상이 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
한국이 택시노조의 힘으로 시장 진입을 틀어막은 글로벌 승차공유
1
위
업체 우버
(Uber)
의 기업가치가 현재 얼마로 평가 받는지 아는가
?
150~200
조원이다
.
그저 스타트업 내지는 벤처기업이라고 무시하고 있는 분이 있었다면
안타깝게도 그만큼 시대의 방향성과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
참고로 같은 자동차 업계로 분류되는
‘
한국의 자랑
’
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이 약
25
조원으로 그들의
1/10
수준에 불과하고
,
우리나라 최고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우버와 유사한 약
250
조원이다
.
그만큼 세상의 변화는 급격하고 혁명적이다
.
그래서 지금이 산업혁명이다
.
싸이클 산업은 좋고 나쁨의 패턴이 있다 . 우리는 그에 익숙하다 . 1970 년대 이후로 약 50 년 간 이를 경험하면서 기다림에 익숙해져 있다 . 분명히 또 기다리면 공급과잉이 해소되는 몇 년 뒤에는 지금보다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 . 그렇지만 몇 년이 아니라 10 년 , 20 년 뒤를 바라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그 때가 되면 전기차 기반의 자율주행차량의 등장으로 석유산업이 사양세에 접어들고 있을 지도 모른다 . 마치 1900 년을 전후로 석유가 등장하면서 석탄을 완벽하게 몰아낸 것처럼 말이다 . 변화를 취하는 것은 선택사항일까 필수사항일까 ? 역사를 봐도 , 그리고 미래를 봐도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