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 ] SK 이노베이션이 ‘ 탈석유 시대 ’ 를 대처하는 방법
대한석유협회
박종현
세계적으로 ‘ 탈탄소 ’ 시대로 전환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 국제해사기구 (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도 선박부문의 오염물질 배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 2020 년 1 월에 시작하는 이 규제는 'IMO 2020' 으로 불리며 , 선박용 연료의 황 함유량 기준을 현재 3.5%(35,000ppm) 에서 0.5%(5,000ppm) 으로 줄이기로 했다 . ‘IMO 2020’ 으로 정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 당장은 현재 선박용 연료로 사용되는 벙커 C 유의 수요가 줄어들 수 있으며 , 황 함량이 낮은 저유황연료유나 경유 수요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정유업계 중 SK 이노베이션은 2017 년 11 월 이사회를 통해 ‘IMO 2020’ 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VRDS(Vacuum Residue Desulfurization,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 ) 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 타 정유업체들은 석유화학 등 비정유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이 때 , SK 이노베이션은 왜 정유부문의 투자를 단행했을까 ? VRDS 는 무엇이고 , 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 SK 이노베이션 홍보실 김정훈 과장을 만나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
▶ 안녕하세요 . 김정훈 과장님 !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
안녕하세요 . 저는 SK 이노베이션 홍보실 김정훈 과장이라고 합니다 . 현재 기업 PR 및 언론 관련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 최근 몇 년간 저희 SK 이노베이션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 특히 회사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다방면에 걸친 투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정유부문에서는 이 VRDS 증설이 대표적이고 , 비정유부문에서는 배터리 ∙ 소재사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 이에 기반해 SK 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 상승 여력을 외부에 널리 알리고자 , 여러 모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
▶ 작년 4 분기 실적과 관련해서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이 언론에서 많이 들려오던데 , 회사 분위기는 어떤가요 ?
2018 년 연초만 하더라도 정유업계는 4 년 연속 흑자를 달성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어요 . 일각에선 ‘ 수퍼사이클에 진입했다 ’ 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요 . 실제로 국내 정유업계는 지난 3 분기까지만 하더라도 ‘ 영업익 8 조 달성 ’ 이라는 대기록을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죠 . 하지만 4 분기에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 휘발유 정제마진이 악화되어 ‘ 영업익 8 조 달성 ’ 의 대기록 작성은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으로 보여요 . 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저로서도 많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
▶ 사실 , 국제유가 변동으로 인한 재고평가손익은 일시적이고 단기간에 미치는 영향이잖아요 ?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 , 미세먼지 등 환경이슈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 에너지 전환 ’ 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SK 이노베이션은 현재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나요 ?
네 . OPEC 이나 IEA 등 에너지 전문기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증가를 둔화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 심지어 중동의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필두로 하여 경제에서 차지하는 석유의존도를 낮추고자 하고 있을 정도로요 .
국내 정유업계는 일찍이 이런 상황들을 예상하고 그 대비를 해 왔어요 . SK 이노베이션은 일찌감치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투자해 왔고 , 작년에만 유럽 ( 헝가리 ), 중국 , 미국 등지에 글로벌 증설을 결정했죠 . 특히 작년에는 석유화학 등 비정유부문에 대한 정유사들의 대규모 투자 집중된다는 소식이 언론에 많이 나왔어요 . 2~3 배 높은 영업이익률을 고려하면 , 회사입장에서는 비정유부문에의 투자전략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
▶ SK 이노베이션은 그 전에 정유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네 . 맞아요 . 2017 년 10 월 31 일 이사회에서 VRDS(Vacuum Residue Desulfurization, 감압잔사유 탈황설비 ), 즉 정유부문에의 투자를 결정했어요 . 그 배경에는 국제해사기구 (IMO) 의 선박 연료유 황 함량 규제 강화가 있었죠 . 국제해사기구는 2016 년 말 , 연료의 친 환경성을 높이기 위해 2020 년 1 월부터 전 세계 선박 연료유의 황 함량 기준을 기존 3.5%(35,000ppm) 에서 0.5%(5,000ppm) 로 대폭 낮추겠다고 발표했어요 . SK 이노베이션은 이 ‘IMO 2020'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VRDS 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
▶ IMO 2020. 듣기에는 해운업계와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 정유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가요 ?
IMO 2020 은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유황 연료유인 감압 잔사유 (VR) 의 수요를 감소시킬 것으로 보여요 . 해운사 입장에서는 이 규제에 배기가스 정화장치인 스크러버 (Scrubber) 를 설치하거나 , 연료를 저유황유로 변경하거나 , LNG 엔진으로 교체하는 등으로 대응할 수 있어요 . SK 이노베이션은 저유황 연료유 시장에 주목했어요 . 해운사들이 스크러버를 설치하기에는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 LNG 엔진으로 교체하기에는 연령이 낮은 선박들을 보유한 업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저유황 연료유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죠 .
▶ VRDS. 한글로 풀어도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인데 , 이게 확 와 닿는 개념은 아닐 것 같아요 .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VRDS 는 말 그대로 고유황유인 감압 잔사유 (VR) 에 수소를 첨가해 황을 제거하는 설비인데요 . 이런 과정을 ‘ 탈황 ( 脫黃 )’ 반응을 일으킨다고 해요 . 이 과정을 통해 감압 잔사유는 경질유나 저유황유로 전환되어 생산됩니다 . VRDS 의 핵심 장비로는 반응기 (Reactor) 라는 것이 있어요 . 내부 온도는 최대 400 도까지 상승하고 , 수심 2,000m 아래에서 받는 압력이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설비죠 . 반응기는 4 기가 한 단위 (Train) 로 이루어지고 , 2 기는 탈금속반응 , 다른 2 기는 탈황반응을 담당해요 . 탈금속반응을 통해 부식성이나 연료의 품질저하를 방지하게 되고 , 탈황반응으로 황 함량을 낮추게 됩니다 . 아 , 이 때 제거된 황은 기체 또는 액체 상태로 배출되는데 , 추가로 황을 분리해 별도의 황 제품으로 만든 후 중국 등지에 수출한답니다 .
▶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 졌네요 . VRDS 에서는 그럼 황 함량이 낮아진 선박 연료유외에 어떤 제품이 같이 생산이 되는건가요 ?
고부가가치를 지닌 다양한 경질유 제품들이 함께 생산돼요 . 그동안 감압증류를 통해 생산된 감압 잔사유는 아스팔트를 생성하는데 사용되어왔어요 . VRDS 를 통해서는 저유황연료유는 물론이고 , 디젤 , 나프타 , LPG 등 고부가 제품으로 변환됩니다 . 간단하게 말하면 이전에는 한 가지만 생산할 수 있었지만 , 앞으로는 4 가지 이상을 생산할 수 있게 돼 수익구조 다각화가 가능해지는 거죠 . 감압잔사유를 하루 4 만 배럴을 투입하면 , 저유황유는 하루 3 만 4 천 배럴 , 디젤 , LPG, 나프타 등 고부가 석유제품은 하루 6 천 배럴 생산할 수 있는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
▶ 투자규모는 어느 정도고 , 과거에도 이런 투자가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
VRDS 에는 약 1 조원이 투자되었어요 . SK 이노베이션의 정유부문 투자는 이번 VRDS 투자가 3 번째입니다 . 2017 년 11 월에 SK 네트웍스에게 주유소 사업을 양수받은 것을 제외하면 , 공장 설비투자는 10 년 전인 2007 년 울산 CLX 에 신설된 제 2 고도화설비 (No.2 FCC) 투자가 마지막이었죠 . 당시 제 2 고도화설비에는 약 2 조원이 투자되었고 , SK 에너지는 제 2 고도화설비를 통해 상압잔사유에서 휘발유 등 고부가 석유제품을 하루 6 만 배럴 생산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어요 .
[ 표 ] SK 이노베이션 역대 정유부문 투자
지역 |
OC/ 사업 |
착공시기 |
완공 ( 예정 ) 시기 |
투자규모 |
현황 |
울산 |
SK 에너지 석유 |
2007 년 1 월 |
2008 년 3 월 |
약 2 조원 |
No.2 FCC( 제 2 고도화설비 ) : 일일 6 만배럴 생산 |
전국 |
SK 에너지 석유 |
2017 년 8 월 |
2017 년 11 월 |
3,015 억원 |
SK 네트웍스 석유도매 (Wholesale) 사업 양수 |
울산 |
SK 에너지 석유 |
2017 년 11 월 |
2020 년 하반기 |
약 1 조원 |
VRDS( 감압 잔사유 탈황공정 설비 ) : 일일 4 만배럴 생산 |
* 자료 : SK 이노베이션
▶ VRDS 는 울산 남구의 SK 울산콤플렉스 (SK 울산 CLX) 내에 폭 120~140m, 길이 1km 의 좁고 긴 부지 ( 약 83,800 ㎡ ) 에 신설된다고 들었어요 . 공장이 들어서긴 어려운 조건이라고 하던데 그럼에도 설비를 설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해당 투자를 결정한 데에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모두 고려했어요 . 우선 , 전문가들은 VRDS 를 통해 SK 이노베이션이 추가적으로 연간 3,000 억원 수준의 EBITDA 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 2020 년에는 SK 이노베이션의 저유황유 생산량이 약 400 만 톤으로 확대돼 국내 1 위의 저유황유 공급자가 될 것으로 예상돼요 . 또한 , 상대적으로 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저유황유 공급을 통해 환경적인 가치도 창출할 수 있게 되어 , 평소 최태원 회장님이 강조해온 ‘DBL(Double Bottom Line) 경영 ’ 을 실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
▶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나 새해 다짐 같은게 있다면요 ?
새해엔 모두가 건강하시고 하고자 하는 일들이 다 잘 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 물론 저희 SK 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구요 . 회사가 정유 ∙ 비정유부문 가릴 것 없이 다방면에 걸친 투자를 펼치고 있는 만큼 이 Well-balanced Portfolio 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크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이를 위해 저도 올 한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
정유사업은 본래 유가변동 등 외부요인이 경영실적에 미치는 비중이 높았다 . 다만 장기적으로 한 부문에서의 수요가 감소할 것이 자명한 적은 없었다 . 이에 국내 정유업계는 비정유부문 등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 SK 이노베이션처럼 기존 시장을 확대함으로써 수요를 창출해나가고 있다 .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국가가 산유국을 포함한 세계 60 여 개국에 석유제품을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정유업계가 정유부문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특히 SK 이노베이션의 정유부문 투자는 , 4 분기 정유사업 실적 악화 등 어려운 난관들을 국내 정유업계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를 기대하게 하는 이유이다 .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