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선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서서히 스러진다. 출근하는 새벽길, 뺨에 닿는 시린 바람과 파랗게 높아진 하늘은 가을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요망한 날씨 탓에 매미와 귀뚜라미가 동시에 울어대는 우스운 일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은 가을이다. 식어드는 열기에 모두의 마음 한구석 자그마한 구멍을 내는,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며 여행하기 좋은 계절. 올해의 뜨거운 여름을 열렬하게 환송하기 위해 한주의 끝에서 여행을 찾는다. 혼자이든, 함께이든 추남 추녀를 위한 가을 여행지를 소개한다.

 

 

낭만에 대하여, 홍천

온통 붉고 노란 산과 내쉬는 숨마저도 파랗게 느껴지는 가을. 조금 센티해지고, 조금 낭만적으로 바뀌는 가을에는 역시 홍천이다.

 

샛노란 사랑가, 홍천은행나무숲

홍천 은행나무숲은 개인 사유지다. 이곳 주인의 아내가 만성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자 홍천 삼봉약수가 소화 불량에 효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홍천으로 왔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의 쾌유를 빌며 한 그루 한 그루 소중하게 묘목을 심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지금의 은행나무숲이 되었다. 언론에 공개되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2010년부터 1년 중 10월에만 개방하기 시작했다. 십수 년을 살아온 부부들에게는 부부싸움을 유발하는 이야기일수도 지만, 연인들에게는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다. 주인 부부의 사랑 이야기 때문인지 홍천 은행나무숲은 조금 더 화사한 느낌이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노란빛이 달달하게 술렁인다.

 

가을에 물든 사찰의 정원, 수타사 생태숲공원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공작산 자락에 함께 자리해 있다. 우적산에 있다가 세조 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수타 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수타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색이 듬뿍 담긴 농도 짙은 가을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가을의 햇살은 그 빛조차도 가을을 닮았나 보다. 수타사의 정문 봉황 문을 지나면 흥회 루가 바로 보인다. 때마침 앉아 있는 두 여행객이 그 속에 녹아들어 하나의 풍경처럼 보인다. 좌선하는 돌을 지나 수타사의 문화재를 보관 전시하는 보장각을 마지막으로 봉황문 입구에서 봤던 생태숲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은 수타사의 큰 정원 같은 느낌이다.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보이고 이미 지고 없지만 연꽃 연못이 넓게 보인다.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과 함께 여행 온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화사하다.

 

동심 유발 알파카 랜드

알파카 월드는 11만 평 푸른 숲에 조성된 강원도 1호 동물원이다. 내 기억 속의 동물원은 서울대공원에버랜드가 전부였다. 딱딱한 우리아니면 가짜 사파리. 알파카 월드는 동물들이 최대한 자연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호랑이나 곰은 없지만 양이나 염소, 말 같은 가축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코스모스 사이에 있는 계단을 차곡차곡 밟아 올라갔다. 중간쯤에서 벌써부터 꺅-- 대는 어린아이들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몽실몽실한 엉덩이가 보이고 엄마를 따라다니는 새끼 알파카가 아이들의 손을 따라 바쁘게 입을 움직인다. 아이고 어른이고 난리다. 밑에서 조랑말에게 당근을 주는 서너 살 아이의 뒤태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가라앉고 있다. 짧아진 해를 뒤로하고 가을 속으로 걸어간다.

 

가을의 운치, 억새

 

핑크빛 가을, 경주 핑크뮬리

미국 동부에서 자라는 억새로, 항상 보던 억새와 다른 색다른 억새다. 핑크 하면 봄이라지만 가을에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제주에도 있지만 내륙인 경주에도 있다. 첨성대를 배경으로 핑크빛 물결이 바람을 따라 사부작 거린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들 핑크 바다에 푹 빠져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다. 핑크색의 억새로 색다른 가을을 만나보자.

 

영남 알프스 - 빛의 평원, 간월재

가을 하면 울긋불긋한 단풍나무나 하늘하늘한 가을꽃을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의 운치에는 억새를 당할 재간이 없다. 영남알프스는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신불산, 영축산, 고헌산, 간월산 등 7개의 산군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중 간월재에서는 약 10만여 평의 억새 군락지에서 억새축제가 열린다. 간월재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나무 대신 키 작은 억새가 자라는데. 매해 이맘때가 되면 늦가을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 평원으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 파래소 폭포 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고, 하단 길인 사슴농장 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하다. 무릎관절이 좋지 않거나 아이와 함께 가는 가족 산행이라면 하단 길로 올라가면 된다. 가을을 담뿍 담은 길을 지나 1시간 30분가량 걸었을까. 옆으로, 앞으로 빛을 받아 술렁이는 억새가 보인다.

억새는 빛에 민감하다. 이른 아침이나 해질 무렵, 한낮에도 빛의 방향에 따라 따르다.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는 은빛 바다 같기도 하고 노랗게 익은 벼 잎사귀 같기도 하다.

 

가을산책

드라마 촬영 세트장

오래된 교복과 달동네,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촬영지이지만 그 시절을 겪어온 사람들에게 하나의 추억이 될 듯하다.

순천 드라마 촬영 세트장은 순천시가 조성하고 운영하는 오픈 드라마 세트장이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순천 읍내, 1960년대의 서울 달동네, 1980년대의 서울 변두리를 재현해 두었다. 220여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덴의 동쪽>, 영화 <늑대소년> 등 수십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여기저기 교복을 입고 나름의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순천만 국가 정원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보호하기 위해 순천 도심과 순천만 연안습지 사이에 조성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정원으로,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영국의 찰스 젱스가 직접 디자인했다.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에 이어 순천만 정원으로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 34만 평에 달하는 부지에 수백만 종의 꽃과 나무가 수목원 구역, 습지센터 구역, 세계정원 구역, 습지 구역, 참여정원 구역으로 나누어져 식재되어있다. 가족들, 연인들, 출사지로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순천 호수 정원에서 내려다본 정원의 풍경은 한 장의 작품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순천만 습지

순천만 갈대밭의 총면적은 순천시 교량동과 대대동, 해룡면의 중흥리, 해창리 선학리 등에 걸쳐 약 15만 평에 달한다. 어느 한군데 어설픈 곳 없이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갈대들이 군락을 이룬 순천만 갈대밭은 국내 갈대 군락지로는 최대 규모라고 한다. 대대동이 가장 넓은 군락지를 이루며, 해룡면 상내리의 와온마을에서 보는 갯벌의 낙조는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흑두루미, 재두루미, 황새, 저어새 등 국제적인 희귀 새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 새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가을에는 갈대가 장관을 이룬다. 용산 전망대에서 보는 일몰은 계절과 상관없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가을, 우리의 낭만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