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숨쉴 권리, 영토주권이 먼저다”

파이낸셜뉴스

산업부 최갑천 차장

 

연초부터 '불청객'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매일 아침 휴대폰에서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게 한국인들의 일상이 돼버렸다. 미세먼지 상태를 실시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까는게 엄마들 사이에 상식인 세상이다. 반도체공장에서 쓸 법한 초미세먼지 방지용 방진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한국적인 현상이다. 모처럼의 가족나들이도 미세먼지가 좌우한다. 오죽하면 팔순을 앞둔 필자의 어머니마저 "무슨 놈의 나라가 6.25때보다 숨쉬기가 더 힘드냐"고 할 지경이다. 미세먼지. 영어로는 'Particulate Matter(PM)'라고 부른다. 미세먼지는 지름이 10μm보다 작은 미세먼지(PM10)와 지름이 2.5μm보다 작은 미세먼지(PM2.5)로 나뉜다. PM10이 사람의 머리카락 지름(50~70μm)보다 약 1/5~1/7 정도로 작은 크기라면, PM2.5는 머리카락의 약 1/20~1/30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작다. 대기오염물질인 질산염, 황산염 등 을 포함한 미세먼지는 호흡기 질환부터 발암까지 수 많은 질병들을 초래한다. 미세먼지를 '보이지 않는 암살자'로 부르는 이유다.

 

■우리 탓하는 미세먼지 대책
그런데,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놓고 최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 14~18일 발생한 고농도 초미세먼지에 대한

 서울시의 대책때문이다. 서울시는 당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비장한 듯 보였다. 그는 대책을 발표하며 "숨 쉴 권리는 최우선으로 보장받아야 할 시민의 첫 번째 권리입니다. 미세먼지로부터 생존권을 위협받는 지금은 명백한 재난 상황입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침묵의 살인자, 일급 발암물질을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저는 미세먼지 대란의 최일선 사령관이라는 각오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과 대중버스 무료제를 시행했다. 여기에는 하루 50억원 가까운 혈세가 투입됐다. 혈세낭비다, 박 시장이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 행정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서울시는 산하기관인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을 통해 근거를 제시했다. 1월 중순 고농도 초미세먼지의 주범이 자동차와 난방 등 우리나라 내부오염 영향이라는 것이다. 북서풍을 타고 온 중국발 미세먼지는 이번 조치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원인의 60~70%는 중국이라는 '정설'을 깬 것이다. 박 시장은 2014년 서울시장 재선 당시 ‘서울시내 초미세먼지 20% 이상 감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당시 박 시장은 공약집에 "중국발 미세먼지로 대기 질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간다. 인체 위해성이 큰 초미세먼지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4년 새 미세먼지에 대한 박 시장의 철학이 바뀐 것인가.
 
중앙정부도 미세먼지 대책으로 내부 규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1월 고농도 미세먼지가 이어지자 '민간 차량 2부제'를 강제하는 규제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역시 미세먼지의 책임이 출퇴근 운전자, 생계형 운전자 등에게 있다는 시각이다. 차량 2부제 규제는 마치 문재인 정부 초기 미세먼지 대책 카드로 내밀었다 슬그머니 접은 경유세 인상 규제를 떠오르게 한다. 필자는 감히 예언한다. 차량 2부제 규제는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흐지부지 백지화될 것이다.


■영토주권 노력은 왜 뒷전인가
미세먼지 발생원인이 오로지 중국에만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상식으로 알던 원인은 도외시한 채 '우리 탓'만 한다는 게 못마땅할 뿐이다. 국립환경과학원도 지난 1 15~18일까지 4일간 지속된 미세먼지 공습의 원인이 내부 요인이 더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중국 등 외부발생 비중이 15 57%에서 18 38%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반면, 국내 자동차나 발전소에서 배출한 질소산화물이 대기정체로 축적된 요인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시나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결과를 부정하진 않는다. 인구 2000만명이 넘는 초과밀지역인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내부요인만큼 중국발 요인이 크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 서울시나 정부가 지난 수 십년간 우리 국민을 괴롭힌 미세먼지나 황사 문제를 두고 중국을 향해 얼마나 외교적 노력을 했는지 따져볼 수 밖에 없다. 매년 겨울과 봄철이면 북서풍을 타고 온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 아직까지 석탄을 주연료로 사용하는 중국의 현실때문이다. 매일의 미세먼지 농도는 변화가 있겠지만 중국의 영향권을 벗어날 순 없는 노릇이다. 중국이 베이징 등 대도시의 살인적인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공장을 산둥성 등 한국과 인접한 해안지역으로 대거 이전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다. 하지만,
 2016년 발행된 ‘중국 내 석탄화력발전소의 공간적 분포’ 연구에 따르면 1998년 해안 지역인 산둥성과 저장성 일대의 총 석탄발전용량은 각각 10GW 수준이었으나 2011년에는 각각 65GW 6배 이상 늘어났다. 그만큼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늘어났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마오쩌둥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지난 30여년간 중국은 엄청난 산업화를 이뤘다. 그 대가로 인접국 한국은 국민이 황사와 미세먼지를 흡입하는 영토주권 침해를 수 십년간 감내한 걸 서울시나 정부가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국가 차원에서 중국을 향해 제대로 된 항변이나 한 적이 있는가. 이것은 영토주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 우리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 등에 대해 배타적인 통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바로 영토주권이다. 적어도 미세먼지 문제에서는 중국에게 영토주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과거 국제분쟁 사례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1920~1930년대 이른바 '트레일 제련소' 분쟁을 겪었다. 1900년대 초 캐나다는 미국과의 국경지대에 트레일제련소를 건설했다. 이 제련소는 캐나다의 산업화 정책 속에 공장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공장이 커질수록 대기오염물질인 아황산가스 배출량도 증가했다. 제련소에서 16㎞가량 떨어진 국경 넘어 미국의 한 마을 주민들이 고스란히 아황산가스 피해에 노출됐다. 이 마을은 10년 넘게 주민들의 호흡기질환뿐 아니라 농작물과 수목에까지 이상발육이 생기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한계에 다다른 마을 주민들이 제련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하지만 피해입증이 어려워 유해가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미국 정부까지 나섰다. 미 정부는 캐나다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자국민과 영토에 피해를 입힌 건 영토주권 침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미국의 강경대응에 캐나다도 공동조사에 응하게 됐다. 수 년간에 걸친 국제조사기구의 조사를 통해 트레일제련소의 책임은 밝혀졌다. 캐나다는 제련소 환경시설을 강화하고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진행했다.

서울시나 정부에게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 진정성있는 미세먼지 대책을 추진하려면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려는 영토주권 노력이 먼저라고. 공짜 버스나 차량 2부제 정책은 그 다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