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의와 에너지 시장의 방향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신 세돈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에서 돌아온 지 채 보름도 안 된 712일 미국무역대표부는 한국의 통상산업자원부 장관에게 한 통의 서한을 보내왔다. ‘한미FTA협정 제22.2조에 의거하여 협정개정(amendments)이나 수정(modifications)을 포함하는 한미FTA협정의 운영(operations)상의 제반문제를 협의(consider)하기 위한 특별공동위원회를 30일 이내에 개최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특별공동위원회와의 후속협의를 통하여 한미FTA협정의 적용문제를 점검(review)하고, 시장접근에 있어서의 현안문제점을 해결함과 동시에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 문제해결을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위 의 한미 FTA협정의 적용문제(implementation)에 관해서는 미국이 별로 따질 것이 없다. 한국이 협정을 잘못 적용(implementation)한 적도 없고 또 미국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도 없다. 협정을 잘못 해석하거나 혹은 협정의무를 위반하거나 혹은 협정에서 보장하는 혜택을 거절한 적도 없다. 한국에게 흠 잡힐만한 잘못은 없다는 얘기다. 미국이 계속해서 협정적용이나 협정의무위반이나 협정이익거부를 일방 주장한다면 한국은 합의(consensus)할 수 없다. 결국 미국은 협정(22-4)에 따른 분쟁해결절차를 밟아야할 것인데 이 절차는 매우 지루하다. 양국 및 제3국의 3인 위원으로 된 분쟁해결위원회를 구성하는 데에만 최대 126일이 소요되고 그 위원회가 최종보고서를 제출하는 데에만 최장 225일이 더 걸릴 수 있다. 게다가 분쟁에서 미국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미국에게 남은 카드는 한미 FTA협정의 일방적 파기 선언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미국에게 별 이득이 없어 보인다. 한미 FTA협정 24.5조에 따르면 한 나라는 상대국가에게 서면으로 협정종료를 알리는 것만으로 종료된다고 규정되어있다. 사전 동의나 사후승인이 필요 없다. 종료를 알리는 서면통보 이후 180일이 지나면 협정은 효력이 사라진다.

 

한미 FTA협정의 파기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제품에 대해 관세율을 높이고 비관세장벽을 높인다고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창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제품 대신 일본이나 중국제품들이 그 공백을 메울 것이 너무나 뻔하다. 국제경제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무역전환(trade diversion)현상이다. 반면에 미국에 대한 한국의 반감은 급증할 것이다. 협정파기로 한국의 경제적 타격이 클수록 반감은 비례해서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적 지향은 미국에서 중국 쪽으로 더 기울어질 것이다. 미국이 강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한국은 미국에 대해 더 반감을 가질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정책 수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한미 FTA협정파기는 미국으로서는 쓸 수 없는 카드다. 그리고 한국도 미국도 모두 다 그것을 알고 있다.

 

다음으로 위의 시장접근에 있어서의 현안문제점이란 주로 금융, 법률, 경영자문과 같은 전문서비스업 분야에 대한 보다 폭넓은 시장개방과 규제완화일 텐데 이 부문에 관해서는 큰 무리 없이 양국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위 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이다.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대 한국 무역적자는 중국(+516억 달러), 독일(+152억 달러)에 이어 세 번째(+139억 달러)로 증가폭이 커졌다. 그러나 이 정도의 대한국 무역적자로 한미 FTA협정을 개정하거나 파기까지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트럼프행정부의 진의도 무역적자의 축소에 있다고 판단된다면 양국의 의견합치는 비교적 쉽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수입을 하면 된다. 이런 점에서 철강과 자동차 부품분야는 물론 에너지 분야는 한미FTA협정 문제 타결의 좋은 돌파구가 될 것이다. 특히 LPG나 셰일석유와 같은 전략상품은 물론 원유의 대미수입을 크게 확대함으로써 한미 무역적자를 상당 폭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자료] 미국의 국가별 무역적자 : 2011-2016

 

수 입

수 출

무 역 적 자

2011

2016

2011

2016

2011

2016

Δ

캐나다

3137

2781

2813

2660

324

121

-203

멕시코

2628

2941

1981

2309

647

632

-15

영국

513

543

559

554

-46

-11

35

독일

987

1142

491

494

496

648

152

일본

1289

1322

657

633

632

689

57

중국

3994

4628

1040

1158

2954

3470

516

한국

567

567

434

427

133

272

139

총계

22081

21892

14803

14537

7278

7355

77

(*) 자료: 한국무역협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기치아래 미국최우선 에너지계획(America First Energy Plan)’을 발표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미국 내 화석연료의 적극개발 및 수출, 에너지산업 관련 규제 대폭 완화 및 연방환경보호청 기능과 역할 제한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정책과 OPEC의 감산이 맞물려 미국의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6년 하루 890만 배럴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20174924만 배럴까지 증가하였다. 전년도 보다 3.8%이상 증가한 것이고 이 수치는 계속 증가하여 2018년에는 하루 1,000만 배럴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정도라면 OPEC의 감산목표를 거의 상쇄할 규모로 판단된다. 미국이 세계 원유시장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석유시장에의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저유가는 장기화 될 것이 분명하다. 금수조치로 세계석유시장에서 미미하던 미국의 역할은 금수조치 해제와 트럼프 정책이 맞물려 획기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이다. 비단 원유 뿐 만 아니라 천연가스 시장에서의 미국의 영향력도 크게 높아질 것이다. 미국의 천연가스는 낮은 생산비에 힘입어 중장기적으로 가격이 안정되어있고 또 국내 소비 대비 생산량이 훨씬 더 많아 수출에도 유리하다. 이중에서도 LNG가 미국의 수출을 주도할 것이다. 미국산 LNG는 도착지제한 조항이나 의무인수조항과 같은 경직적인계약에서 자유로운 유연한 계약조건의 장점이 있고 또 유가와 연동되지도 않으므로 미국산 LNG의 경쟁력은 상당히 높다.

 

특히 미국 뿐 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청정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LNG수요는 크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라서 미국과 한국간의 무역불균형을 시정하는 좋은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비단 원유나 LNG 뿐만 아니라 신재생 에너지를 포함하는 에너지 산업 전반에 걸쳐 한미 간의 기술협력과 인적 교류는 물론 상호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적 노력에 대해 매우 강하게 비판해왔으며 이를 입증하듯 취임하자마자 오바마 대통령시절에 추진했던 많은 기후관련 정책들을 재검토하거나 폐지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파리협정이다. 항간에서는 탈퇴로 얻을 실익이 적고 탈퇴 반대여론도 있어서 탈퇴가 회의적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을 내세우며 탈퇴를 감행했다. 그렇지만 파리협정문에 따르면 가장 빨리 탈퇴가 된다 하더라도 협정의 발효일 이후 최소 4년이 걸린다. 결국 가장 이르게 보더라도 2020114일은 되어야 탈퇴하는 것이 되므로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 내내 파리협정 안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정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 여러 에너지 관련 국내 행정규제조치를 폐지하거나 완화시킬 것이 확실하다.

 

이제 정리하면 이렇다. 미국은 한미FTA협정의 재개정협상을 통하여 협정을 파기하기보다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이 근본 목적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환경보다는 고용과 성장측면에서 에너지 정책을 접근할 것이며 그러는 과정에서 보다 값싸고 대량의 원유 및 천연가스의 수출시장을 확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미국의 정책은 OPEC의 감산노력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며 따라서 향후 세계 원유 및 천연가스 시장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미국산 LNG나 원유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므로써 무역분쟁을 원만히 해결하는 단초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에너지 산업 전반에 걸쳐 한미 양국 간의 기술교류 및 상호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이제 석유에 관한 한 중동의 시대에서 미국의 시대로 방향타가 돌려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