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을 갖춘 에너지 정책을 당부하며

 

고려대학교

박호정 교수

 

21세기는 레질리언스, 즉 회복탄력성의 힘을 갖춰야 하는 시대다. 무언가 충격이 발생할 때 다시 강건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지난 10여년 사이에 글로벌 경제는 고유가와 저유가 사이의 급격한 롤러코스터를 거쳤으며, 셰일혁명을 목격하였으며, 후쿠시마 사태를 경험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테러의 확산, SARSMERS와 같은 질병, 그리고 기후변화 등 다양한 위협을 경험하였다. 이 모든 현상들은 초연결망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이제는 국지적 변화가 글로벌 영향으로 쉽게 확대될 수 있는 이른 바 복잡계 사회로 진입하였다. 예상치 못한 충격을 흡수하고 진보와 도약을 이룰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힘을 키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을까? 회복탄력성에 대한 시중의 베스트셀러를 보면, 유산소 운동, 근력운동, 장력운동, 그리고 뇌력운동까지 다양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할 때에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한두 가지 운동에 편중하기 보다는 효과적인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을 둘러 싼 작금의 논의에서도 회복탄력성에 대한 관점이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로, 에너지 안보 개념은 회복탄력성의 제1조건이다. 미국과 일본의 에너지 정책은 행정부 권력의 교체에 변함없이 언제나 에너지 안보 중심이었다. 현재 국내의 에너지 전환은 환경성과 안정성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여기에 에너지 안보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안보를 적절한 가격으로 지장없이 에너지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 물량 리스크와 가격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한 개념이다. 이와 같은 에너지 안보 개념을 에너지 포트폴리오, 특히 2030년까지 획기적으로 확대한다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적용해서 살펴보자. 전 세계적인 추세를 보아도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당연히 환영받아야 하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수입에너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태양광과 풍력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하지만, 간헐적인 공급원인 신재생에너지의 주요 백업자원으로 특정 에너지원에만 편중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과 중국의 영토갈등으로 희토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국내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희토류 비축문제도 가격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최근에 네오디뮴 등 희토류 가격이 다시 상승추세에 접어들자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서는 형국이다. 그나마 희토류나 석유 등은 자원을 장기간 비축할 수 있어 가격상승이나 공급제한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지만, 천연가스는 1개월 이상 장기간 비축이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끈기있게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

 

둘째, 기후변화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갖춰야 한다. 원전과 신재생의 대립각을 세우는 방식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의 성과를 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정책 논의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전략이 명시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탈원전과 병행해서 신재생을 확대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온실가스 배출이 천만 톤 증가하였고, 2016년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상조건으로 신재생 전력공급이 감소한 점과, 수송용 연료 수요 증가, 그리고 신재생 백업자원으로서의 화력발전 이용 등 다양한 이유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의 실패에 기여하였다. 앞의 에너지 안보이슈를 다시 짚어보면, 그나마 독일은 풍부한 유연탄 자원을 바탕으로 나름 전력공급 지장에 대한 플랜B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와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셋째,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지난 5년 사이 우리는 두 개의 혁명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었다. ‘셰일가스 혁명‘4차 산업혁명이다. 1차와 2차 산업혁명에서 석탄과 석유의 관계에서처럼 에너지와 신기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최근 서울대 황철성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가 10에서 20와트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수학적 계산을 슈퍼컴퓨터가 한다면 수십 메가와트의 에너지가 소비된다고 한다. 2040년 무렵에 디지털 데이터의 양이 상상하기 힘든 바이트의 규모로서 지금보다 약 100만 배 더 증가할 것이며, 에너지 이용의 양도 기존보다 100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사고과정을 닮은 뉴로모픽 등 신기술이 개발되면서 에너지 효율도 향상되겠지만,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에너지 소비량의 증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뇌력운동의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넷째, 안정적인 전력수급 계획의 회복탄력성이 필요하다. 신재생발전은 원자력이나 화력발전에 비해 작은 규모로 단편적으로(piecemeal) 들어오기 때문에, 발전계획과 실적 사이에 오차규모가 발생하기 쉽다. 반면 신재생이 대체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타 발전원은 큰 규모(bulk)로 감축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처럼 대형 규모의 에너지 전환기술을 백스탑 기술(backstop technology)이라고 하는데, 단편적인 편입자원으로서의 신재생발전에 관한 세심한 일정이 마련되어야만 기술간 대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신재생 포텐셜을 파악할 수 있는 지역별 미시적인 연구에서부터, 신재생 입지선정의 갈등관리까지 종합적인 대책과 이행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사항 외에도 회복탄력성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제 우리 체질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때라는 점이다. 아쉽게도 이미 상당히 늦은 감이 들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착수해야 한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그에 따른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전략이 다르듯이 우리 경제와 사회의 코드는 유럽과도 다르며 미국과도 다르며 일본과도 다르다. 화력발전, 신재생, 원전 등의 이용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과 편익에 대한 한국 고유의 추정치가 개발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적이면서도 회복탄력성을 제고할 수 있는 에너지 포트폴리오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