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에너지산업 여건과 국제 유가 전망

이 달 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올해는 지난해 11월 발효된 파리협정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신기후체제가 본격 출범한다. 올해는 또한 미국에서 기후변화 자체를 부인하고 화석에너지 개발 확대를 에너지정책의 기조로 삼는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다. 이런 상반된 흐름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에너지산업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기후체제 약화와 미국의 리더쉽

파리협정은 201512월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도출됐다. 이 협정의 발효 조건은 55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비준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배출량의 55%를 넘은 후 30일이 경과되는 것이었다. 파리협정은 이들 조건을 모두 충족해 지난해 114일자로 발효됐다. 이로써 파리협정에 서명한 197개 국가는 자국 내의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온실가스 감축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어 지난해 11월에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2)에서는 파리협정의 세부 이행규칙을 2018년까지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 회의의 의장국인 모로코는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마라케시 행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이 선언문에는 기후변화 문제가 시급하고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사안이므로 기후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와는 반대로, 오는 120일 출범하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들을 반대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파리협정은 상원의 인준을 받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안보 강화와 고용 창출을 위해 미국 내 석유와 가스, 석탄 등 화석에너지 개발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는 화석에너지 개발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취임 후 조속한 시일 내에 철폐하겠다고 공언했다. 예를 들면, 오바마 행정부에서 도입된 연방 공유지에서의 셰일오일과 세일가스 개발에 관한 각종 규제가 폐지 대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에서 환경문제를 고려해 승인이 거부됐던 키스톤 XL 송유관을 비롯한 석유가스의 인프라 건설을 다시 추진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석탄발전 축소 등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수립된 청정전력계획(CPP)도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는 에너지원 간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하며,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생산세액공제나 투자세액공제 등 연방 정부의 지원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트럼프가 선거기간 중 내걸었던 공약과 대통령 당선 이후 지명한 에너지 및 환경 부처 장관들의 화석에너지 우호적인 성향을 보면 신기후체제의 약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논의에서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그런데 미국의 리더십이 상실되고 미국의 기후행동이 후퇴한다는 것은 파리협정의 이행력이 약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국제적으로 조성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큰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겠지만 그 속도는 둔화될 수 있다.

 

 

유가전망과 감산 이행 가능성은?

한편, 국제 유가는 석유산업을 비롯한 모든 에너지산업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국제 유가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산유량을 줄이기로 결정한 이후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동안 공급 과잉과 저유가 상황에서도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을 벌였던 OPEC은 지난해 1130일 열린 총회에서 올해 1월부터 6개월 동안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1210일에는 러시아를 포함한 11개 비OPEC 산유국이 OPEC의 감산에 동참해 하루 56만 배럴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월 평균 배럴당 27달러로 12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뒤 상승 추세를 보이다가 감산 합의 후 급등해 12월 평균은 52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중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보인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셰일오일(타이트오일) 생산이 저유가 지속과 자본투자 축소로 인해 본격적으로 감소하면서 세계 석유시장에 만연했던 공급 과잉이 다소 완화됐기 때문이다.

2017년에도 국제 유가는 석유의 수급은 물론 세계경제 상황, 달러화의 가치, 지정학적 사건, 기후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역시 수요와 공급이 유가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수요보다는 공급 측면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OPEC과 비OPEC이 얼마만큼 감산 합의를 실행에 옮길 것인지와 미국 셰일오일의 생산의 증감 여부가 수급 균형의 회복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먼저 OPEC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우디가 다시 산유량을 조절하기로 한 것은 석유시장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사우디는 지난 2년 동안 셰일오일 등 고비용 원유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저유가를 용인하며 생산을 늘려왔다. 하지만 사우디는 저유가가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재정 상황이 악화되는데다 2018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IPO(기업공개)를 앞두고 있어서 유가를 부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OPEC 회원국들이 모두 합의한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적다. 과거 사례를 보면, OPEC이 감산에 합의해도 합의사항을 제대로 준수하는 국가는 사우디와 그 동맹국인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에 국한됐다. 이를 감안하면 감산 이행률은 목표의 60%인 하루 70만 배럴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OPEC 회원국 중 이란과 리비아, 나이지리아는 감산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란은 서방국의 제재 이전의 생산 수준을 고려해 하루 9만 배럴의 증산이 허용됐고,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는 내전과 정정 불안으로 생산 차질을 빚고 있어서 생산한도를 두지 않았다. 최근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의 생산은 정세가 호전되면서 회복세에 들어섰다. 이들 두 나라에서 예상되는 생산 증가분은 양국 정부가 공언하는 증산 계획의 절반만 잡아도 하루 40만 배럴이 된다.

이에 따라 OPEC 전체의 감산 물량은 하루 30만 배럴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OPEC의 감산 기준은 역대 최고인 지난 10월의 생산 실적인데, 올해 연평균 생산 추정치보다 약 50만 배럴 많은 양이다. 그러므로 감산 대상 기간이 올해 연말까지 연장되더라도 올해 OPEC 생산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20만 배럴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OPEC 산유국들의 감산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OPEC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 유전지대에서는 기후 여건상 감산을 위해 유정을 폐쇄했다가 복구하기가 어렵다. 러시아는 노후 유전의 자연 감산과 함께 신규 유전의 가동을 지연시키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미국의 원유생산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에 대응해 셰일오일 생산자들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생산방법을 찾았지만, 생산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위해서는 유가가 평균적인 손익분기가격이라 할 수 있는 배럴당 55달러는 넘어야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비OPEC 전체의 올해 생산은 캐나다, 브라질 등의 신규 유전 가동에 따른 생산 증가로 올해보다 하루 20~40만 배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2017년 석유공급은 OPEC과 비OPEC을 합쳐 2016년에 비해 하루 40~6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의 세계 석유수요는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소비 확대로 전년 대비 130만 배럴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수요 증가분이 석유공급 증가분보다 70~90만 배럴 많은 양이다. 지난해 연평균 공급 과잉이 50만 배럴 내외로 추정되므로, 2017년에 들어서 세계 석유시장은 공급 과잉이 모두 해소되는 모습이다. 비록 느슨한 형태지만 OPEC과 비OPEC이 감산 합의를 통해 최대한 증산을 억제하려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세계 석유 수급의 균형 회복은 2017년 국제 유가 상승의 주요인이 될 것이다. 다만 사상 최고 수준으로 누적돼 있는 석유재고와 달러화의 강세는 유가의 상승폭을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평균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52~55달러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평균 두바이유 가격이 41.4달러이므로, 이와 비교해 30% 정도 상승한 수준이다. 그러나 OPEC과 러시아의 감산 이행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면 유가는 추가로 상승할 것이다. 반대로 세계경기가 침체되거나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의 생산 회복이 더 빠르게 진행되면 유가 상승폭은 더 작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