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비전 2030 계획 통해 국가개조 추진...
- 포스트 오일 시대 대비..최고 실세인 무함마드 부왕세자 주도 -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아람코의 태양광 발전시설이 주는 함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는 명실 공히 세계 최대의 석유기업이다. 사우디의 부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아람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보유하고 있다. 원유 보유량은 2610억 배럴로, 미국 최대 석유기업인 엑손모빌의 10배나 된다. 이 회사는 하루 103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2.5%를 차지한다. 그런데 아람코가 지난해 3월부터 다란의 본사 건물 지붕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했다. 아람코는 태양광을 전기로 전환하는 패널 144개를 통해 최고 35㎾의 전력을 생산, 본사 건물의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 전기 일부를 태양광 발전으로 대체하고 있다. 아람코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상당한 함의가 있다.

 

 사우디에선 석유를 알라의 ‘축복’이라고 부른다. 국토의 90%가 사막인 사우디가 오늘날 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검은 황금’인 석유 덕분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 2위 규모로 2683억 배럴 정도로 추정된다.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1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 규모로는 세계 1위이다.


사우디 정부는 수십 년간 석유를 수출해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이용해 국민들에게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전기와 수도 무상 공급, 에너지 보조금 지급뿐만 아니라 높은 연봉의 공공 일자리를 제공해왔다. IMF에 따르면 사우디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6489억 달러로 세계 20위, 1인당 GDP는 2만677달러로 세계 38위다. 특히 전체 인구 3000만여 명 중 1만5000여 명에 달하는 왕족들은 대부분 억만장자들이다. 사우디 경제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배럴당 100달러에 달하는 고유가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순항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크게 늘어나고 원유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국제유가는 2014년 11월부터 곤두박질쳤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사우디는 저유가에 따른 재정난으로 2014년 말 이후 외환보유액이 1823억 달러나 감소했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건국 83년 만에 사상 최대 규모인 980억 달러(GDP대비 15%)에 달했다. 올해 재정적자는 GDP 대비 19%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우디 정부가 지난 9월 장관의 연봉을 20% 삭감하고 공무원들의 상여금 지급을 취소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조치를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우디는 앞으로 저유가 시대가 상당기간 계속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가 이런 전망을 하게 된 것은 저유가 현상이 단순히 석유 수급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태양열, 수력, 풍력, 조력,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가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에 각국이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적극적으로 줄이면서 화석연료인 석유의 소비를 줄이고 있다. 또 석유는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국제유가는 과거처럼 배럴당 100달러대로 올라가지 않고 40~50달러 선에 머물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사우디로선 더 이상 석유에만 목을 맬 경우 국가가 생존하기 어렵다고 인식하고 석유 없는 미래에 대비할 수밖에 없게 됐다.

 

 

    

 

 

 ‘포스트 오일시대’를 준비를 위한 비전 2030
△제도 개혁 △경제전략 수립 △석유 의존도 감소 산업정책


사우디는 ‘포스트 오일시대’에 대비해 ‘비전 2030’ 계획이라는 국가개조 작업에 착수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81)은 지난 4월 25일 각료회의를 열고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부왕세자(31)가 주도해 추진할 비전 2030 계획을 승인했다. 비전 2030 계획은 사우디의 탈석유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광공업·관광·금융·물류 등 비석유 부문을 개발해 재정 수입원을 다각화하는 등 대대적인 경제 개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비전 2030은 활기찬 사회, 경제 번영, 야심찬 국가 등 3가지를 목표로 할 것”이라며 “GDP에서 비석유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16%에서 50%로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는 정부 수입의 75%, GDP의 45%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이 구조를 뜯어고쳐 석유 없이도 지속되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육성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주식 5%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아람코의 최고위원회(일종의 이사회) 의장이다. 아람코의 기업 가치는 상장할 경우 2조5000억 달러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람코의 지분 5%를 팔 경우 최소 1250억 달러의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아람코는 앞으로 석유회사에서 에너지산업 회사로 탈바꿈해 석유·화학과 건설 분야뿐만 아니라 태양열 등 다양한 신사업으로 투자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지분 매각 자금과 국유지·공단 등을 팔아 모은 최대 2조 달러의 자금을 국부펀드인 퍼블릭 인베스트먼트 펀드(PIF)에 투입할 계획이다. PIF는 사우디 정부가 2008년 주요 제조업과 산업 인프라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한 기금으로 현재 자산 규모는 3000억 달러에 달한다. PIF는 설립 당시 재무부 소속이었지만 지난해 초 경제개발을 총괄하는 국왕 직속의 경제개발위원회(CED)로 소속을 옮겼다. CED는 사우디의 경제개발을 총괄하는 부서로 위원장은 무함마드 부왕세자이다. PIF는 앞으로 세계 최대의 펀드가 될 것이 분명하다. PIF는 앞으로 해외 투자를 현재의 5%에서 2020년까지 50%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는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로 자산규모는 8900억 달러이다.

 

 

비석유부문의 수입창출을 위한 경제구조


사우디 정부는 2030년까지 GDP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40%에서 65%까지 높이기로 했다. 또 국영기업 일부를 민영화해 비석유 부문에서 얻는 정부 수입을 현행 1630억 리얄에서 2030년까지 1조 리얄로 6배 늘릴 계획이다. 실업률을 현행 11.6%에서 2030년까지 7%로 줄이고, 노동 인구 내 여성 비율을 22%에서 30%, GDP 대비 중소기업 비율을 20%에서 35%로 높이기로 했다. 광산 개발 분야에서 9만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매년 70억 리얄 상당의 이윤을 창출할 방침이다. 특히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순례하는 행사인 하지에 더 많은 무슬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할 계획이다. 장기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게 5년 내에 그린카드(Green card·외국인 영구체류증)를 발급해주기로 했다. 사우디의 민간 기업들은 주로 건설, 부동산, 전기, 통신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이 산업들 중 80%의 노동력이 외국인 근로자들로 구성돼 있다. 민간 기업들을 활성화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들의 체류를 완화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비전 2030계획을 주도하고 있는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우디에서 최고 권력 실세이자 왕위 계승 2순위자이다. 사우디 전체 인구의 70%는 30대 미만의 젊은 층이다.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자신과 같은 또래인 국민들을 위해 석유가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개혁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우디의 미래를 위한 무함마드 부왕세자의 승부수가 성공할 지 주목된다.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한국일보>모스크바 특파원, 국제부 수석 차장.<주간한국> 편집장 역임.‘홍군vs청군-미군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패권 쟁탈전’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