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력소매 시장 전면자유화와 시사점 

 

 

정지홍(한전 경제경영연구원)

 

  올 4월 일본의 전력소매 시장이 전면 자유화됐다. 자유화 이전에는 전국 10개 전력회사가 각자 지역에 대해 전력 공급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주택용 전력 소비자가 다른 전력사의 전기를 구입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현재에는 소비자가 자유롭게 전력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 전면자유화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력소매 사업자 증가, 다양한 요금제 출시 및 새로운 결합상품의 등장이다.

 

 

新전력사업자와 새로운 결합상품 등장 


통신, 유통, 에너지 기업 등 다양한 업종의 300개가 넘는 기업들이 전기를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기존 전력회사가 아니면서 자체 보유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 또는 구입한 전력을 전기 사업자의 송배전망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공급하는 사업자를 신전력사업자라고 한다. 신전력사업자들은 기존 보유하고 있던 판매 인프라를 기반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2016년 4월부터 9월 말까지, 계약전력 50kW 미만 고객들의 약 3%가 다른 사업자로 전환하였다. 자유화에 따른 또 다른 변화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요금제 출시와 새로운 결함상품의 등장이다. 동경전력은 전면자유화에 대비하여 올 1월 新요금플랜을 발표하였다. 전력 소비량이 낮은 고객을 위한 스탠다드 요금제, 전력 다소비 고객을 위한 프리미엄 플랜 요금제를 개시하였다. 또한 통신, 인터넷, 생활서비스, 가전, 가스․에너지 등 다양한 업종의 회사와 제휴하여 결함상품을 출시하였다. 예를 들면, SoftBank와 제휴하여 휴대폰 및 통신서비스 혜택을 제공하고, 인터넷 기업인 Sonet과의 제휴를 통해 동경전력 고객 전용 광통신 상품을 판매하고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동경전력과 같은 기존 전력회사 뿐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신전력사업자들도 다양한 사업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신전력사업자 중 기존 에너지 사업을 하던 기업들은 발전능력 확대 및 사업자간 수평연대 증가를 통해 전력‧가스‧석유를 포함하는 메가 에너지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석유기업인 JX Nippon은 11,000개 주유소를 활용한 석유와 전력 결합판매를 검토하고 있으며, 도쿄가스는 가스와 전력 결합판매를 추진하고 가스기기 판매 및 수리 영업점을 전력 판매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통신 등 비에너지사업자들은 기존 자산을 바탕으로 결합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 및 사업기반 등을 활용하여 제휴·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  Softbank는 자회사 SB Energy를 통해 신재생 발전사업 추진하고 5천만 명의 통신고객을 대상 으로 전력과 통신 결합서비스 제공한다. 지자체 주도의 신전력사업자들은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를 실현하고 있다. 지역 사업자로서의 친숙함, 친환경에너지 및 지역고용 확대로 고객에게 어필하고 있다. 군마현 나카노조마치는 지자체 최초 신전력사업자 재단법인인 나카노조마치전력을 설립하고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통해 환경보호와 에너지 자급자족을 실현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올 1월 일본의 전력소매 시장 자유화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하여 기존 전력회사, 신전력사업자, 신전력사업자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고 있는 고객 및 언론사를 만났다. 그 당시 전면 자유화가 임박함에 따라 사업자 업무 증가로 사업자 일부는 방문 불가능 입장을 표명할 정도로 매우 분주한 상황이었다. 회의에서 만나본 대다수의 전력 분야 전문가들은 몇 개월 후에 전면자유화가 시작되는 상황인지라 시장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었다. 특히 초기 시장 선점을 위해 다양한 요금제와 새로운 결합 상품을 출시하며 경쟁적으로 요금을 인하하고 있지만, 실재 원가 절감에 대한 부분보다는 초기 시장선점을 위한 단기적인 요금 인하 효과일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남겼다. 과거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사례를 보면, 단순히 전력산업 자유화로 인한 영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시장 자유화 초기에는 가격 하락이 이루어진 반면 이후 가격이 상승된 사례도 지적하였다.

 

 

 

해외 사례 및 일본의 전력산업 변천과정


  일본의 전력소매 시장 자유화 보다 앞서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도 전력산업 개편 및 소매시장 자유화를 추진하였다. 가장 먼저 자유화를 시작한 영국은 ’89년 전력법(Electricity Act)을 근거로 국영기업 분할을 실시하고, ’90년부터 발전 및 배전회사 지분매각과 함께 3단계에 걸쳐 ’99년 에는 모든 고객 대상의 소매시장 자유화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자유화를 통한 경쟁은 소비자 만족도 증대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최근 설문에 따르면 전반적인 소비자 만족도가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전력회사의 신뢰도와 관련된 문항에서도 절대 다수가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였다. 또한 시장의 경쟁 촉진을 문제해결책으로 인식하는 전력 당국과는 달리 일반 국민들은 에너지기업의 재국유화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독일은 유럽 공동체 내에서 독일의 전력과 가스 가격을 경쟁적인 수준으로 낮추려는 목적으로 ’98년 에너지법을 발표하고 전력 자유화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영국 사례와 마찬가지로 민영화와 경제도입에도 불구하고 품질은 낮아지고 요금은 증가하였으며, 안정적인 전력공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간산업으로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작년 TOPPAN Form社가 수행한 전력소매 시장 전면자유화에 대한 설문을 보면, 기존 전력회사와 신규 전력회사 비교시 20,000명의 응답자 중 83%가 가격을 최우선 고려 사항이라고 답변하였다. 또한 응답자의 65%만이 전면자유화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으며, 신전력사업자로 판매사 변경 여부에 대해 60%가 관심이 없다고 답변하였다. 전력소매 시장 전면자유화에 대한 인식이 낮은 이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일본 내에서 전력소매 시장 자유화가 한번에 급진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기 때문에 실재 국민들이 느끼는 변화의 강도가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전력산업 변천과정은 크게 5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 변화는 ’95년 발전 부문에 있어 경쟁원리를 도입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이 특정전기사업자이며, 민간회사인 이들은 특정지역에 한해서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하게 됐다. 2단계는 ’99년에 소매 부문에서 일어났다. 주로 대규모 공장 등의 산업 부문에 많은 특별고압소비자(계약전력 2,000kW 이상인 고객)로 하여금, 전력의 구매처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 것이다. 3단계는 ’03년 소매 부문의 자유화 영역을 2차 개혁 당시의 계약전력 2,000kW 이상인 전력 소비자에서 50kW 이상인 소비자로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것과 일반전기사업자의 송배전 부문을 감시하기 위한 중립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후 4단계는 ’08년에 있었으며, 전력 공급의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그린전력거래 등이 주 내용이었다. 끝으로 5단계는 올해 4월부터 시작된 소매시장 전면 자유화이다.


  일본의 전력소매 시장 전면자유화는 이제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성공과 실패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일본은 변화하고 있다. ’16년 전력소매 시장 전면 자유화를 시작으로 ’17년에는 가스 소매업, ’18년에는 열사업 분야까지 에너지부분 전면 자유화 도입을 계획 중이다. 국내에서도 전력소매 시장 자유화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가별 전력 상황이 다름을 우선 인식하여야 한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 이후로 발전력이 부족하고 요금 급등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면 자유화를 적극 추진한 것처럼, 국내 상황을 먼저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전력산업 구조와 방향에 대한 논의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본 기고문은 한국전력공사의 공식 견해가 아니며, 작성자 개인의 의견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