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후 체제 대응을 위한 우리의 과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지난해 연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참가한 196개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에 합의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인 1750년 대비 2도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되, 가능하면 1.5도 이하로 낮추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기술력이 충분하지 않고, 선진국·개도국·후진국의 현실이 크게 다른 상황에서 신기후 체제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어쨌든 20174월까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55개국 이상이 비준 등 자국의 법적 절차를 거쳐 협약에 서명하면 신기후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부가 제시한 신기후체제 대응전략

낙관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전략의 실현가능성 여부는 미지수

우리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당사국 총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서둘러 ‘2030 에너지 신()산업 확산 전략을 내놓았다. 산학연 전문가 150여 명이 7월부터 4개월 동안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신기후 체제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신의 한 수와 같은 절호의 기회라는 기본 입장에서 출발한 낙관적인 전략이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은 기술 혁신을 통해 극복하고, 화석연료 부존자원의 부족을 새로운 기회 요소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전력·수송·산업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새로운 시장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한다. 에너지 프로슈머, 저탄소 발전, 전기자동차, 친환경 공정에 5년 동안 총 19조원을 투자해서 2030년까지 100조원의 시장과 50만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5,500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예정이다.

 

정부가 제시한 에너지 신산업의 핵심은 단연코 전기. 전력의 생산·공급과 전기자동차 관련 산업이 에너지 신산업의 핵심이다. 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 에너지, 분산형 전력 생산, 스마트·마이크로 그리드, 에너지 저장장치(ESS), 초초임계발전(USC), 초고압 직류송전시스템(HVDC), 이산화탄소 포획·저장(CCS) 사업이 주요 키워드다. 소비자가 절약한 전기를 되파는 수요자원시장도 산업화한다. 화려했던 녹색성장의 핵심이었던 제로에너지빌딩친환경에너지타운도 부활했고,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한 스마트 공장도 확대한다. 수소환원 제철이나 친환경 냉매와 같은 공정 신기술을 개발하여 제조업을 친환경 산업으로 육성하고, 버려지는 열()과 냉기를 재활용하는 국가 단위의 열네트워크산업도 육성한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화려한 에너지 신산업 구상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실제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지난 정부의 녹색성장의 핵심도 신재생 에너지였다. 전력거래소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총발전량 중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은 3.5%였다. 2011년의 비중은 2.75%였다. 5년 동안의 막대한 녹색성장 투자의 성과가 고작 그 정도였다. 그나마 대부분이 산업현장과 일상생활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이용한 것이었다.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진짜 신재생 발전의 비중은 여전히 1%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재생 에너지 정책의 부진 이유

우리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기술력에 대한 충분한 분석 필요

전기자동차 보급에 따른 전력수요도 고려, 원자력 산업에 대한 정책도 포함 요함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신재생 에너지 정책이 화려한 구호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고,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기대가 과도했기 때문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활용도가 높은 뉴질랜드·핀란드·스웨덴·오스트리아·덴마크·독일 등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기술력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신재생에너지가 천국의 연료라는 맹목적인 환상은 경계해야 한다. 환경에 아무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영원히 지속가능한 에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태양광 패널을 제작하고, 설치해서 발전을 하는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의 양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해상 풍력 단지 개발에 의한 해안의 환경 파괴도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에너지 신산업 구상에서 강조하는 신기술의 가능성도 확실하지 않다. 분산형 전력 생산이 만능의 해결책일 수는 없다. 분산형 생산은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는 것이고, 오염의 분산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력 생산의 에너지 효율에는 현실적으로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열역학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대량의 전기를 소비자에게 송전 효율을 향상시키는 일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의 저장에 필요한 기술은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어떤 기술이라도 산업화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관료주의적 발상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섣부른 관심도 위험하다. 전기자동차의 보급이 늘어나면 전력 수요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에너지 신산업 구상에는 전력 생산 확대를 위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우리가 충분한 전기자동차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안정적인 발전 시설도 갖추지 못한 제주도를 전기자동차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정책은 관료들의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엄청난 환경 파괴와 사회적 재원의 낭비로 끝나버린 발전차액제도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전기를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 신산업 구상에서 우리나라 원자력이 완전히 빠져버린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30%가 원전에서 생산되고 있고, 우리의 원자력 산업이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실용화를 추구하고 있는 스마트원자로기술도 포기할 수 없다. 원자력에 대한 정책 방향이 완전히 빠져버린 에너지 신산업 구상은 설득력이 없다.

 

 

자발적 감축목표 3억톤

적지 않은 부담이고, 위기일 수 밖에 없는 신기후체제, 단단한 각오 필요

화석연료의 소비절약과 효율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신기후 체제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부담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에 해당하는 3억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자발적 감축목표’(INDC)를 반드시 달성해야만 한다. 국내 배출량의 25.7%를 감축하고, 나머지 11.3%는 국제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한다. 전력 생산량의 70% 가까이를 석탄·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국내 배출량의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결코 쉬울 수가 없다. 현재의 산업구조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하고, 우리의 생활방식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우리가 감수해야 할 비용·고통·불편이 어느 정도나 될 것인지는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국제 탄소배출권 시장이 언제 만들어질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 제시한 약속을 가볍게 여길 수도 없다. 5년마다 우리의 이행 여부를 국제적으로 확인받아야 하고, 그 때마다 우리 스스로 목표를 강화해야만 한다.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핑계로 2012년 코펜하겐에서 자발적으로 내놓았던 감축목표를 슬그머니 축소해버렸던 얕은 꼼수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신기후 체제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고, 위기일 수밖에 없다.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화석연료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대체 연료를 개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합성섬유·합성수지·합성고무와 같은 화학제품 생산에 필요한 대체 소재의 개발은 대체 연료의 개발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물론 포기할 수는 없다. 대체 연료와 대체 소재를 개발하는 일에 훨씬 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에는 화석연료의 소비의 절약과 효율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다.

신기후 체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신기후 체제의 진짜 핵심은 기후 변화가 아니다. 선진국 주도로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구조와 생활방식을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 국제 사회가 화석연료에 대해 상당한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