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문춘걸
관세율과 경쟁력
현재 우리나라가 외국산 나프타를 수입할 때의 관세율은 0%이다. 반면 원유를 수입해 국내에서 나프타를 제조하면 관세율은 1%이다. 이는 외국 정유사가 제조한 나프타를 우대하고 국내 제조업체를 차별하는 정책에 해당한다.
이로 인하여 국내 정유사가 외국 정유사에 비하여 내수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이렇게 자국 기업을 역차별하여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관세율 정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고 OECD국가를 비롯한 주요국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관세율의 파급효과
원유와 나프타는 국민경제적 파급효과가 아주 큰 기초 원자재이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산업의 기초 원료이기 때문에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면, 일차적으로 국내 정유사가 공급하는 나프타 가격을 상승시키고, 이차적으로 석유화학제품의 가격 상승을 유발하며, 연쇄적으로 거의 모든 산업의 제품 가격을 상승시켜 물가, 생산, 고용, 수출에 증폭된 규모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대하여 무관세를 적용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실제로 34개 OECD국가 중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 미국 뿐이며, 미국은 산유국으로서 자국의 원유채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의 본래 목적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기초 원자재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완제품에는 부과하는 경사관세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유독 원유에 대해서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비경쟁 원자재로 분류되는 석탄, 철광석, 동광, 알루미늄광, 양모, 면, 원목, 원피 등은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며, 해당 원자재를 사용하여 생산한 가공품을 수입하는 경우에는 품목별로 2%에서 8%의 관세를 부과하여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또한 원당은 원유와 같이 3%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원당 가공품인 설탕 수입시에는 물량 한도 내에서 5%의 할당관세를 적용하여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고 있다. 이에 비해, 수입나프타는 영세율을 적용하고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대하여 1%의 관세를 부과하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투입산출분석을 통하여 관세가 부과되는 원유와 원당의 국민경제적 파급효과를 계측하여 그 크기를 비교하면 원유가 원당보다 현저하게 파급효과가 커서 원유에 대하여 무관세를 적용하는 것이 국민경제적으로 더 중요하고 시급함을 확인할 수 있다.
현명한 판단이 필요
현재 정부는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3%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는데, 국민경제적 파급효과가 아주 큰 원유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하고 나프타에 대하여는 역관세를 유지함에 따라 그 노력의 결실을 깎아 내리고 있다. 물론 관세로 확보되는 안정적인 조세 수입이 매혹적이겠지만 그 규모가 국민경제적 손실에 비할 바가 아니며, 특히 경제성장률을 제고와 고용 증대가 시급한 경제상황에서는 소탐대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