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도,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석유정책 3종 세트는 폐지해야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석유전자상거래, 혼합유 판매, 알뜰주유소 정책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이른바 석유정책 3종 세트이다. 이 정책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란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시절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값이 너무 오르자 이를 잘 살펴보라는 취지였다. 이 때부터 석유제품 값을 낮추기 위한 취지에서 석유정책 3종 세트가 등장하였다.

 

3가지 석유정책의 취지

세 석유정책의 취지를 먼저 살펴보자. 석유전자상거래는 온라인 전자상거래를 통해 석유제품 가격이 투명하게 잘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가격경쟁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또한 무자료거래나 음성거래를 줄임으로써 가짜휘발유의 유통도 줄이자는 부차적인 목적도 있었다. 혼합유 판매는 어차피 석유제품이 다 똑같고 차별성이 없으니 브랜드를 구분하지 말고 섞어서도 팔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유통업자인 주유소에서 싼 가격의 석유제품을 찾아서 구입할 것이므로 정유사 공급가격을 깎을 수 있지 않겠냐는 취지이다. 알뜰 주유소 정책은 보다 직접적으로 정유사와 주유소에 압력을 가하는 정책이다. 정부가 그린벨트의 땅을 값싸게 제공하고 정유사로부터 싸게 기름을 공급받아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등 알뜰 주유소 설립과 운영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다른 주유소들에게 가격인하 압력을 주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석유정책 3종 세트는 정부가 석유제품의 값을 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 정부는 무리수를 두었다. 일례로 석유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유사들과 수입사들에 대해 석유 수입부과금을 환급하여 세금을 깎아 주었다. 혼합유 판매정책을 위해서 브랜드와 무관하게 상품을 팔고 살 수 있도록 하여 제품의 정체성을 약화시켰다. 알뜰 주유소에게는 그린벨트 땅까지 제공할 정도로 공정하지 못한 경쟁여건을 제공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석유정책 3종 세트는 좋은 정책이 아니다.

 

 

공정성을 저해하는 정책들

또 다른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경쟁을 촉진한다고 하였으나 사실 진정한 의미의 경쟁을 왜곡하였다. 세금을 감면해주고 값싼 땅을 제공해주는 것은 공정거래 정신에 위반되는 것이다. 그것도 공정성을 권장해야 할 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다. 이른바 '공정한 경쟁여건(level playing field)'을 정부 스스로 훼손하는 것으로 경쟁정책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일례로 오프라인으로 거래하는 대리점들과 주유소들이 전자상거래 가격에 맞춰달라고 요구하는데 사실 수입부과금을 환급받아 할인한 가격에 맞추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파괴하면 경쟁의 기반이 흔들린다. 어느 제품인지 모르게 되면 품질과 서비스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혼합 판매를 허용한 후 저질 일본산 경유가 다량으로 수입·유통되어 논란을 빚고 있다. 브랜드가 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둘째, 이처럼 비정상적 경제적 이득에 기초한 정책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정책의 비가역성(非可逆性) 함정에 빠지기 쉽다. 전자상거래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연장해 달라고 하는 바람에 본래 한시적인 일몰정책이 결국 내년 6월까지 연장되었다. 혼합판매 정책도 외국산 저품질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사람들이 큰 이득을 보게 되면서 이를 되돌리기도 쉽지 않아졌다. 알뜰 주유소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알뜰 주유소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기존 주유소협회 외에 알뜰 주유소협회가 생겨나서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석유정책 3종 세트의 부산물로 새로운 이해집단들이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경쟁을 촉진하려고 시작한 정책이 새로운 이해당사자들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오히려 경쟁 환경이 더욱 혼탁하게 된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효과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정유사와 주유소는 이미 공급과잉이 될 정도로 산업구조가 경쟁적이다. 혹 경쟁을 위반한 경우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이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미 엄하게 다스려서 수차례 담합도 적발한 상태이다. 산업부까지 나설 필요가 없다. 석유전자상거래 실적 중 주유소 직접 매수비중은 13-15%에 그치고 있다. 혼합판매정책 역시 본래 취지를 못 살리고 품질 나쁜 외국산 제품과 가짜석유가 퍼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알뜰 주유소는 크게 싸지도 않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많은 기존 주유소와 과잉경쟁을 벌이고 있다.

 

 

재검토가 필요한 정책의 건전성과 우선순위

의도하는 정책적 효과를 제대로 얻지 못한다는 점 외에도 석유정책 3종 세트는 급하지도 않은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 때와 같은 고유가 시기에는 소비자들에게 주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러한 정책이 제시된 배경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14년 하반기부터 몰아닥친 저유가 추세로 인하여 어차피 석유제품 가격이 많이 내렸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지난 정부의 한물간 정책을 붙들고 매달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석유정책 3종 세트는 그리 중요한 정책이 아니다. 진정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석유제품 가격을 낮추려면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 국내 휘발유 가격 중 세금비중은 60% 가까이 되고 정액제로 운용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제 원유가격이 배럴당 120달러 대에서 움직이던 지난해 중순의 국내 휘발유가격은 리터당 2천원대였지만 국제 원유가격이 배럴당 45달러 대로 떨어지더라도 국내 휘발유가격은 1,400원 정도로 밖에 낮아지지 않아 국제유가 하락분이 국내 기름값 인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골칫거리인 가짜석유도 유류세를 낮추면 자연히 해결된다.

 

정작 정부가 우선순위를 두고 고민해야 할 우리 석유정책은 국내 석유산업의 경쟁력 향상과 산업구조 및 공급과잉의 문제이다. 한 때 우리나라 수출품목 1위를 차지했던 석유제품은 이제 중국, 중동 및 미주지역의 정제능력 급증과 저유가에 따른 수익구조의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좋지도,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석유정책 3종 세트는 폐지할 때가 되었다. 정부는 정책의 건전성과 효과와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