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다! 통일 후 정유산업은 ?

김 경 술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한 공급체계
  북한은 아직 본격적인 석유시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로 볼 수 있다. 자력갱생의 에너지 정책원리에 의거,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의 사용을 정책적으로 최소화한 결과이다. 북한에서 석유의 사용은 철저하게 군사용, 수송용, 발전용에 국한되어 왔다. 산업용 보일러도 대부분 석탄보일러이며, 석탄화학산업에 비해 석유화학산업은 미미한 정도이고 가정·상업부문의 석유소비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수송용도 버스, 트럭, 선박, 각급기관 및 단체용 등에 국한하여 지원되었으며 철저하게 국가기관에 의해 공급되고 소비되어 왔다. 이렇듯 국가에 의해 관리되어 오던 북한의 석유 수급체계는 공산권이 몰락한 1990년대 초반부터 크게 위축되기 시작하였고,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의 지속적인 감소로 지금은 국가 전체적으로 만성적인 석유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2013년 북한의 일차에너지 석유 공급량은 71만TOE로 1990년 공급량 252만TOE의 28.2%에 불과하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부터 매년 50만톤 내외의 원유를 수입하여 신의주 인근의 봉화화학공장에서 정제하고 있으며, 석유제품도 별도로 수입하고 있다. 제품수입도 2000년대 중반까지 연간 50만톤 수준을 유지하다가 점차 감소하여 2013년에는 13만 2천톤에 그친 바 있다. 북한의 유일한 원유 수입선인 중국이 2014년 1월부터 현재까지 대북 원유수출 실적을 영(零)으로 공표하고 있으나 국내외 전문가들은 여전히 비슷한 양의 원유가 공급되고 있어 봉화화학공장이 30% 선의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가배급제에 근거한 북한의 석유유통 시스템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나 수요를 충족하기에 크게 부족하며, 배급된 물량도 음성적인 민수시장으로 대거 유출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민수시장은 각급 기업소, 군부대 등에서 유출된 물량과 밀수된 물량 등이 연유장사와 장마당의 연료시장 등을 통해 유통되는 구조이며, 이러한 자생적 석유 유통체계가 나름대로 음성적인 석유 유통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석유와 북한 석유산업의 현대화
  통일 후 국내 석유산업이 겪게 될 가장 큰 도전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북한 석유산업을 현대화하면서 남한 석유산업과 통합할 것인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도전의 시작은 북한의 석유 수입, 생산, 유통 및 소비를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를 확충하는 동시에 산업계의 주력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시킴으로써 북한에 본격적인 석유시대를 도입하는 광범위한 과정이 될 것이며, 이는 결국 북한 산업의 효율을 끌어올려 북한 경제를 정상화하는데 석유부문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현 시점에서 통일에 대비한 국내 석유산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북한 석유산업의 현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일 시점까지의 북한 석유산업의 장래를 예측하여 장단기적인 정책과제들을 도출, 사전적 대응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국내 정유산업이 처해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남북이 통합되고 대륙과 연계된 통일 한국시대의 한반도 통합석유시스템을 구축,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지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석유산업의 북한 진출은 북한 내 석유수요의 확대와 산업 및 사회 기반시설의 확장 속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진출 방식은 자본 및 인력의 투입 여부와 위험도에 따라 크게 석유제품 공급 단계, 도․소매단계 진출 단계, 생산시설 투자 단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초기에는 국내에서 생산된 물량을 단순히 북한 지역에 공급하는 형태의 진출 전략이 안전하다. 공급의 대상은 통일 직후 진출하는 남한 기업, 북한 내 기존의 석유사업자들, 대규모 소비가 있는 생산 시설, 운송 업체 등일 것으로 예상되며, 지역적으로는 현재 석유소비가 대부분 집중되어 있는 평양과 신의주, 개성, 원산, 라진․선봉지역으로의 공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도․소매단계 진출단계에서는 북한 전역에 걸친 주유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 전개될 것이다. 통화, 소유권, 인구이동 등 통일체계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된 시점에는 북한 내의 석유 판매시설과 저유소 등의 유통시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내에서의 판매망은 초기에 거점별 직영주유소를 설치하고 이후 자영주유소의 비중을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된다. 거점별 직영주유소는 상표의 동질성 강조, 제품의 신뢰 확산, 운영방식에 대한 표준 확립, 가격정책 등을 위해 필요하다. 직영주유소의 정착 이후에는 자영주유소 중심의 상표 주유소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산시설 투자 단계에서는 석유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한 본격적인 투자가 진행되어야 한다. 우선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두 개의 정제공장, 봉화화학공장과 승리화학공장에 대한 개보수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김경술(2014) 김경술, 북한 중장기 정치경제체제 변화전망 및 에너지 인프라 수요분석 공동연구, 에너지경제연구원, 2014
에 따르면, 이들 시설을 보수 및 정비하기 위한 현재 시점의 투자비는 봉화와 승리가 각각 970억 원, 1,140억 원으로 총 2,11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동 연구는 현재의 두 개 정유설비를 개보수하여 사용해도 2030년에서 2035년경에는 신규설비의 증설이 필요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존 설비 개보수를 추진할 것인 지, 신규설비 증설을 언제 추진할 것인 지, 신규설비 증설 시 고도화설비를 포함할 것인 지 등에 관한 다양한 투자계획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적기에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의주권, 원산·함흥권, 청진·나선권 등은 기존 저유설비, 향후 수요규모 등을 고려할 때, 새로운 대형 저유시설의 건설이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평양·남포권의 경우는 대규모 탱크터미널의 설치가 필요할 것으로 분석된다. 대규모 물량이 운송되는 평양·남포 사이의 제품관을 제외하면, 북한 지역의 송유관 건설은 제품관, 원유관 모두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없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통일로 인한 석유제품 수요증가로 전략 비축을 증가시켜야하는 정책수요가 예상된다. 남북을 합한 한반도 전체 소비량의 90일분을 비축해야하기 때문이다. 비축시설 건설은 북한 지역의 정제능력 규모를 고려할 때, 제품 비축을 위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인 고민
  통일은 국내 정유산업에 다가올 거대한 환경변화로 기존의 미래전략과 전혀 다른 새로운 전략적 고민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석유 상류부문 진출은 가장 대표적인 전략적 고민이 될 것이다. 북한에는 서한만·안주·동한만·경성만·길주·평양·회령분지 등의 석유 부존 가능지역이 있으며, 서한만분지의 경우에는 석유・가스 부존 유망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석유기업도 북한 석유 상류부문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이를 정유산업과 연계하여 추진하는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만, 북한 석유지질 정보 부족, 외국기업과의 기존 계약으로 인한 탐사지역 제한 가능성, 중국과의 대륙붕 경계 미확정으로 서한만 분지 탐사활동 제약 등의 리스크 요인은 투자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풍력, 태양광, 지열, 청정석탄에너지, 수력 등 개발 잠재력이 있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하는 전략도 지속적인 수익창출을 위한 사업다각화 방안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초기 북한 지역의 투자 혹은 재건을 위해 공급되는 석유에 대한 정부의 다양한 지원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며, 그 일환으로 북한으로 판매되는 석유제품에 대해 수출되는 제품과 동일하게 원유 관세 및 부과금을 면제하는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통일 후 초기, 대북투자의 높은 위험요인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며, 투자세액공제를 포함한 다양한 세금공제가 지원될 필요가 있다. 석유제품 품질 규격은 남한과 동일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품질관리에 대한 규제는 엄격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세제혜택, 보조금 등의 혜택을 받은 석유, 다른 석유제품들과 혼합된 형태의 가짜석유 등 다양한 형태의 불법석유류가 남한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산업이 통일이라는 거대한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효율적인 한반도 통합석유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장기 안정적인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를 위시한 산·학·연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