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석유시장의 변화와 정유산업에 대한 시사점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오세신

이란 핵협상 타결에 따른 영향
저유가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이란 핵협상과 그리스 문제, 달러화 강세 등이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또 다시 유가 하방압력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핵협상은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 그동안 타결에 대한 기대는 끊임없이 있어왔지만 핵협상이 수차례 연장되면서 불확실성이 다소 컸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협상 타결의 의의는 2002년부터 이란의 핵개발 문제가 국제사회에 부각된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란의 핵활동을 최소 수준으로 제어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란은 최소 15년 이상 핵 관련 활동을 제한받게 되며 보유한 농축 우라늄과 원심분리기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또한 UN의 핵사찰 기구인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군사시설을 포함해 모든 이란의 핵 활동 의심 시설에 대해 접근이 제약 없이 허용된다. 이를 대가로 서방은 핵프로그램과 관련해 이란에 부과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제재 아래 놓여 있는 이란의 원유수출도 제재가 풀릴 경우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이 원유공급을 당장 늘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의지대로 결국 대이란 제재는 이란의 합의안 이행 여부를 검증한 후에 해제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IAEA가 12월까지 관련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어서 이르면 내년 초에나 이란의 원유수출이 증가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시장은 영향권 아래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핵협상 타결로 인해 유가에 대한 하방압력이 지금부터 나타날 것이란 의미이다.
이미 석유시장에서는 석유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공급과잉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로 인해 현재 미국의 석유재고는 사상 최고 수준이며,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올해 상반기 동안에 많은 재고를 쌓아 온 상황이다. 따라서 내년에 이란으로부터의 원유공급이 늘어난다고 기대된다면 정유사들 입장에서 굳이 당장 석유재고를 더 이상 확보할 유인이 퇴색되어 석유시장에서도 실질적으로 원유를 구매하는 수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이는 원유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스 경기침체에 따른 영향
여기에 그리스 문제도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유가 하락 요인이다. 비록 그리스가 국민투표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유로존 탈퇴와 디폴트라는 고비를 넘겼지만 그리스가 강력한 개혁안을 수용해야하기 때문에 그리스의 경기침체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이뿐만이 아니라 유럽 공동체 또한 3년 동안 그리스에 850억 유로 이상을 쏟아 부어야만 해서 그나마 최근에 달궈지기 시작한 유로존의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되었다. 차라리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도 이러한 이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신흥 경제국들의 경제성장세 둔화 문제와 함께 유럽 경제에도 또 다시 적색불이 켜지면서 올해 들어 사그라지는 기미를 보였던 달러화 강세는 또 다시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3월까지 20% 이상 하락했던 유로화 대비 달러환율은 이후 1.13$/?? 수준으로 안정화되는 듯 보였지만 그리스 사태로 인해 다시 하락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올해 연말에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매우 높은 가능성으로 점쳐지고 있어 내년 초까지 달러화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 문제로 인한 세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와 함께 달러화 강세로 인한 달러화로 거래되는 원유가치의 상승은 결국 원유가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저유가시대가 정유사에 미치는 영향
이렇게 중요한 석유시장 요인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킴에 따라 저유가 시대가 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이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정유사들이 재고손실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던 것처럼 또 다시 정유사들에게 손실을 안겨줄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한 유가가 하락하면 정제마진도 나빠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유산업에 대한 걱정은 실로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과연 유가 하락이 정유사들에게 마냥 안 좋은 것인지는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건 유가 하락이 아니라 무엇이 유가 하락을 초래했느냐이다.
간단하게 결론부터 말하면 석유수요의 부진이 야기하는 유가 하락은 정유사에게 부정적이지만 원유공급이 크게 늘어 발생하는 유가 하락은 정유사 수익에 매우 긍정적이라 하겠다. 석유수요가 줄면 유가도 하락하지만 정제마진의 축소도 함께 동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유사들 입장에서는 마진과 판매량이 함께 줄어드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경제 불황으로 석유수요가 줄면서 유가가 폭락했던 2008년 하반기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유례없는 금융위기로 세계 석유수요가 감소하면서 정제마진도 동시에 악화되어 유럽의 정제시설들이 폐쇄되는 등 정유산업이 큰 위기를 마주했던 시기이다.
반면에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직전까지 목격된 저유가는 OPEC으로부터 원유공급이 급증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이 시기에는 세계 석유수요도 빠르게 증가해 정제마진도 대체로 높게 유지되었다. 실제로 유가와 정제마진의 높은 상관관계가 발견되는 것도 2000년대 이후이다. 석유수요가 주로 유가 등락을 좌지우지했던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저유가 시대는 그 원인에 있어 이전과는 매우 다르다. 지난해 하반기에 우리가 경험했던 유가 폭락은 공급과 수요 문제가 함께 혼재되어 있다. 미국 셰일오일 개발로 원유공급이 2012년부터 빠르게 증가해 온데다가 세계 경기둔화로 지난해부터 석유수요 부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유가 폭락을 촉발했으며 갑작스런 시장의 변화로 정제마진도 상당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가가 안정되고 있는 올해는 정유산업에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정유산업 성장을 위한 방안
OPEC이 시장 지배력 확대를 위해 원유공급을 사상 최고치 수준으로 늘리고 있고 세계 석유수요는 비록 신흥 개도국과 유로존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긴 하지만 저유가를 바탕으로 다시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해 상반기 정제마진도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앞서 언급되었다시피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도 유가 하락에 대한 하방 압력이 높아 저유가가 상당히 오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결국 그 요인이 공급측면으로부터 상당부분 발생하고 있는 만큼 석유수요 증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회복에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고유가보다는 저유가가 정제마진과 정유산업에 도움이 된다. 과거 2000년대 원유가와 정제마진이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 것은 이 당시 유가 상승이 중국과 인도의 고속 성장으로 세계 석유수요가 빠르게 증가한데 기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유가는 세계 경제를 갉아먹고 석유수요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해 유가 폭락의 시발점이 된다. 과거 두 차례의 석유파동기와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목격된 유가 폭등이 어김없이 유가 폭락으로 이어졌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은 고유가가 아닌 저유가라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정유산업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 정유산업이 걱정해야 할 것은 저유가가 아니라 역내 경쟁이다. 중국과 인도, 그리고 중동 산유국들도 정제시설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석유제품 수출에 대한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 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금이라도 나은 정제마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첨단시설에 대한 투자와 기술 개발 노력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국내 정유산업이 단순한 먹을거리 산업이 아닌 에너지안보에 중요한 축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수출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가 없는지 점검해 봐야할 것이며 중국과 일본, 인도와의 시장 개척을 위한 외교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도록 역량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