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이 세계 및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 달 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보통계센터 소장)
국제 원유가격 변동의 원인
국제 원유가격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7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아시아지역에서 거래되는 원유의 기준가격이 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6월에 배럴당 111달러로 연중 최고가격을 기록한 후 하락을 거듭하여 1월 현재 45달러 내외에서 등락하고 있다. 유가가 7개월 동안 무려 60% 가량 하락한 것이다.
이러한 유가 하락은 크게 네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석유시장의 공급 과잉이다. 세계 석유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미국 세일오일(타이트오일)의 생산 증가로 인하여 2014년에 석유의 공급이 수요를 하루 90만 배럴 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둘째는 지정학적 불안의 완화이다. 지난해 상반기 중 유가 상승을 부추겼던 리비아 내전과 우크라이나, 이라크 사태 등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하반기 들어서면서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도 리비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협상이 타결되어 중단되었던 리비아의 원유 생산과 수출이 급증하면서 유가 하락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셋째는 OPEC의 시장점유율 방어 정책이다. OPEC은 2014년 11월 27일 개최된 총회에서 유가가 급락세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생산목표인 하루 3천만 배럴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OPEC이 산유량을 감축하여 유가가 지지된다 하더라도 미국 등 비OPEC 산유국의 생산 증가로 인해 OPEC의 판매수입 확대를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려진 불가피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넷째는 달러화의 강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와 함께 급속히 진행된 달러화 강세에 따라 지난해 상반기 중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던 원유 선물시장의 투기성 자금이 금융시장의 안전자산을 찾아 대대적으로 유출되었다. 또한 원유거래에 사용되는 달러화의 강세는 수입국 입장에서 원유가격이 비싸지는 효과를 가져와 석유수요의 둔화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향후 국제 원유가격은 당분간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 하락으로 세일오일 유전과 같이 생산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유전의 생산이 점차 폐쇄되면서 유가가 반등세를 보이겠지만,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에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가가 저점을 확인하고 상승하기 시작하더라도 2015년 연평균 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60달러를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예기치 못한 지정학적 사건으로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확산되어 수요가 침체된다면 유가는 추가적으로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 있다. 주요 분석기관들과 투자은행들의 2015년 유가 전망치는 엄청난 편차를 보이고 있는데, 1월에 발표된 전망은 낮게는 47달러에서 높게는 75달러에 이르고 있다. 어쨌든 종전의 유가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아진 수준이다.
저유가가 가져올 세계경제 영향
이와 같은 저유가가 가져올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제한적이나마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유가 하락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석유수출국과 석유수입국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저유가는 석유수입국들에게 교역조건 개선과 함께 물가의 하락을 가져온다. 이에 따라 수요 측면에서는 소득을 개선시키는 효과로 인해 소비가 증가하고 생산측면에서는 비용 감소에 따라 생산과 투자가 증가한다. 반면에 석유수출국들에게는 이와는 반대의 결과를 유발하여 경제에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유가의 하락은 석유수출국에서 석유수입국으로 소득을 이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세계 경제 전체적으로는 유가 하락이 전반적인 수입물가의 하락을 유발하여 교역량 증대에 기여할 것이다. 특히 선진국들의 수입물가 하락으로 수입이 늘어나면 신흥국들의 수출도 늘어나면서 세계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은 주요 석유수입국이면서도 셰일오일의 생산 증가에 힘입어 전체 석유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국내산 원유가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유가 하락이 소비의 확대 등 경제에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소비자물가 가중치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세율이 낮아서 유가 하락이 가처분 소득의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최근 미국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셰일에너지 산업에서 투자의 감소가 우려되고 있지만, 석유와 가스 분야의 투자는 총 투자의 9%, GDP의 1% 정도에 불과하여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석유수입국에서도 유가 하락이 실질소득 개선과 소비 촉진에 기여하면서 유로존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는 유로존 경제에 저물가 기조를 심화시키면 경기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중국·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석유수입국도 유가 하락에 따른 소비 진작과 기업의 생산비 절감으로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인도는 경상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될 수 있고 유류보조금 축소로 재정적자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 추진 중인 경제개혁 정책에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엔화 약세에 따른 원유수입 부담이 완화되어 무역적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 국가들과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석유수출국들은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악화되면서 유가 하락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동 국가들은 원유와 석유제품이 전체 수출액과 재정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유가 하락이 재정수입 감소와 경제성장 둔화로 직결될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국가들의 에너지·금융·군수 부문에 대한 고강도 제재로 인해 자본 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는 상황이어서 유가 하락은 러시아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부문이 수출의 70%, 재정수입의 50%를 차지하는 러시아는 2015년에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모두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러시아는 4천 5백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어서 디폴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베네수엘라인 것으로 보인다. 석유부문이 수출의 90%, 재정수입의 50%에 이르는 베네수엘라는 이미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물가상승률이 60%를 넘는데다 외환 보유액도 200억 달러 내외에 불과해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8%와 0.3%로 높지 않지만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위험요소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들 산유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융위기가 미국이 연내에 추진하려는 금리 인상과 중첩된다면 여타 신흥국들로부터 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신흥국들로 확산된다면 유가 하락의 긍정적 파급효과보다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
유가 하락은 국내 경제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의 하락이 전반적인 물가의 안정으로 이어지면서 가계무문에서는 실질구매력 개선에 의해 소비지출이 확대되고 기업부문에서는 생산비용 감소에 따른 투지지출이 확대되어 경제성장률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유가는 우리나라의 교역조건을 개선시켜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유가의 변동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경제의 석유집약도(석유투입량/GDP) 감소로 인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부가가치 백만 원을 창출하기 위해 투입되는 석유의 양은 1997년 0.137toe로 최고 수준을 기록한 후 계속 하락하여 2013년에는 0.074toe로 낮아졌다. 이는 그동안 석유가 가스와 전력 등 다른 에너지원으로 꾸준히 대체되고 석유의 이용효율도 향상된 데에 기인한 것이다.
분석하는 기관과 분석모형에 따라 결과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국제 원유가격 10% 하락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1~2% 포인트 상승시키고 소비자물가는 1~2% 포인트 하락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기획재정부)는 두바이유 가격을 배럴당 75달러로 전제하고 2015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3.8%, 물가상승률을 2.0%로 전망하였다. 2015년의 유가가 전망 당시의 전제치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성장률은 더 높아지고 물가는 더 낮아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유가 하락이 오히려 대외 수요 부진으로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고 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의 하락도 부정적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위험 요소는 있지만 저유가가 세계 경제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수출에 기여할 것이고,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對산유국 수출 규모가 크지 않아 저유가에서 비롯되는 대외 수요 부진을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GDP갭이 과다하거나 물가 안정에 따른 임금 절감의 기대심리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심각한 디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산업업종별 유가하락의 영향
한편, 거시경제적인 관점의 긍정적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산업 업종별로는 유가 하락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저유가로 석유집약도가 높은 항공업을 비롯한 운수업, 물류업은 수익성이 개선되겠지만, 석유정제업과 석유화학업의 수익성은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정제업과 석유화학업은 이미 세계적인 공급 과잉에 직면해 있고, 유가 하락기에는 재고자산의 평가손은 물론 원재료비 하락에 비해 최종제품의 가격 하락 폭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석유정제업은 2015년에도 중동과 인도에서 신규로 가동될 예정인 정제시설이 각각 하루 80만 배럴과 30만 배럴에 이르고 있어 정제마진의 압박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석유의 정제와 판매 등 하류부문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 석유산업이 국내 수요의 정체와 수출 수요의 감소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유가 하락으로 인해 위기감이 더 고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저유가로 인해 셰일오일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의 석유제품 공급이 축소되고 중동 산유국의 재정 악화에 따른 설비 확충이 지연되면 점차 정제마진이 개선될 수도 있다. 따라서 당장에는 원유도입의 효율화와 정제·유통비 절감 노력을 강화하면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 석유산업이 보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원유의 개발과 생산 등 상류부문 사업의 확대, 해외 정제시설 운영 등 하류부문 사업의 해외 진출, 그리고 여타 관련 산업으로의 다각화를 꾸준히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