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패러독스

전재완(산업연구원 연구위원/환경에너지산업팀장)

저유가, 금년 하반기부터 상승기조 전환 예상

  새해들어 국제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시장이 예측한 수준보다 훨씬 가파르다. 머지않은 시기에 국제 유가가 다시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그냥 그대로 받아드리기에는 마뜩잖은 구석이 많다. 60달러가 바닥이고 곧 추세 전환이 될 것이라고 권위있는 국제 에너지 연구기관들의 예측 결과가 발한지가 한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 유지에 따른 저유가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것이 세계 경제 성장을 부추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의 이런 관측은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이 최근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필요하면 증산도 고려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때를 같이해 나와 저유가의 지속 가능성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지금은 국제 유가의 향배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유가가 지금수준에서 벗어나 상승 기조로 전환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도 유가가 금년 하반기부터 상승세로 반전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국내외 여러 가지 상황과 유가 전망과 관련한 연구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면 향후의 국제 유가는 지금의 수준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인 후 상당기간 안정 추이를 유지할 것 이라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IMF와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도 이러한 예측과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저유가로 인한 제조업 경쟁력 변화

  정부는 국제유가 하락에 다른 저유가 경제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저유가로 시민들의 실질 가처분 소득이 증가되어 가계 소비가 늘어나고 기업들은 생산비용 절감으로 수출가격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가공무역형 산업구조와 수출이 산업의 주요 기반이 되는 우리 경제구조의 특성상 저유가 기조는 당연히 환영받을 만하다.
  우리 경제는 저유가의 긍정적 경제 효과를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가 잇다. 1980년대의 경제호황과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빠르게 벗어난 데에는 당시의 저유가 기조유지가 크게 기여를 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저유가가 우리 경제에 많은 도움이 중 것이라고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저유가 파급효과는 과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많고 기대효과도 다를 것 같다. 이번 저유가의 가장 큰 특징은 셰일가스 보급확산으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점이 많다. 셰일가스 보급 확대로 형성된 저유가 구조는 전 세계의 석유와 가스 수급구조를 변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유, 석유화학, 발전, 비철금속, 시멘트 등 에너지다소비형 산업의 경쟁력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저유가의 최대 수혜국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석유화학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천연가스 원료를 이용하는 설비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천연가스 계통의 에탄을 원료로 하는 올레핀계 제품생산이 증가하는 한편, 원유계통의 나프타 베이스 방향족계 석유화학 제품의 경쟁력은 BTX(벤젠, 톨루엔, 자일렌)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미국의 철강산업은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생산 설비가 갱신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철강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
  셰일 가스로 촉발된 저유가로 세계 주요 산업의 생산 및 수출입 동향 변화, 산업별 비용구조 및 채산성 변화의 영향, 국가별 산업의 비교우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미국 제조업의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저유가의 최대 수혜국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저유가를 기반으로 에너지다소비형 업종을 중심으로 미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해외로 나간 제조업의 미국내 U-TURN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이 최근의 저유가 기조는 우리나라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우리의 주요 시장이자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들의 산업경쟁력을 강화시켜 상대적으로 우리가 곤경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며 이미 에너지다소비형 산업들을 중심으로 이런 현상들이 상당히 가시화되고 있다.


저유가로 우리나라 정유산업 어려움 가중 

 정유업계는 최근 3년 연속 정유부문에서 적자가 발생했다. 법인기준 매출액은 정유(90) : 비정유(10) 인데, 정유부문 영업이익이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소위 위기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영실적 악화가 일시적 현상이냐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에 의한 것이냐는 점이다. 정유산업의 경영 악화와 관련하여 최근의 여러 가지 관련 동향과 대내외 흐름을 종합하면 현재의 정유산업 위기가 수급구조 악화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위기이며 이러한 흐름이 상당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공급은 늘어나고 수요는 줄어드는 이러한 수급구조가 고착화되는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급구조 악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셰일가스 보급 확산으로 가스의 빠른 석유 대체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지적되고 있다. 셰일가스 보급확산이 가뜩이나 어려움 겪고 있는 우리 정유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셰일 가스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생변수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내부 대응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상대가격 개편으로 석유제품 수급구조 개선

  정유산업의 위기 대응과 관련하여 본질적이며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에너지 상대가격 구조의 왜곡으로 초래된 에너지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시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가 안정과 산업지원 등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정부 개입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그 결과 정부정책은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창출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에너지 소비구조의 비효율과 이로 인한 에너지 낭비 현상이다.
  지금은 이러한 비효율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비효율 발생의 메카니즘은 대체 관계에 있는 에너지 원들이 정부개입에 의한 상대가격 구조의 왜곡으로 수급 구조가 뒤틀려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직설적이며 다르게 표현하면 가스와 석유가 사용되어야 할 부분에 전기가 대체되고 석유가 사용되어야 할 부분에 가스가 사용되는 상황이 비효율의 메카니즘이라는 것이다. 
  전기는 가스나 석유에 비해 생산비가 2배 이상 비싼 고급에너지다. 하지만 값이 싸다 보니 주물공장이 전기로를 쓰고 비닐하우스에서 전기로 난방하는 일이 허다하다. 가스가 주로 사용되던 가정용 취사와 난방 기기도 전열기구에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냉난방에 필요한 열에너지는 1차 에너지인 가스나 석유를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전기 난방의 에너지효율은 34% 수준으로 가스 난방의 85%나 등유 난방의 80%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우리는 2차 에너지인 전기 사용량 중 약 4분의 1을 냉난방에 쓰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전환 손실이 큰 전기 사용이 늘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에너지 낭비가 고착화된 것이다.


저유가의 양면성 인지와 대응책 준비 필요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세일가스 보급확산으로 촉발된 저유가 기조는 다양한 경로로 우리나라 제조업 뿐만 아니라 국제 분업구조에 다각적인 영향을 주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부정적인 효과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정유업계는 저유가로 설상가상의 상황이 되었다.
 위기 타개를 위해 업계의 자구책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지금의 정유업계 상황이라면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저유가가 항상 긍정적 효과만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대책도 양면을 다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정부에 주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