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여행의 힘열두 살 꼬마! 가우디 건축물에서 길을 찾다

박창수 작가, 프리랜서 기자

저서: ‘여행! 사람 사랑을 만나다’ ‘잇츠’ 등 다수

고민 속에 떠난 여행
  “뭐하는 짓이야. 누가 그렇게 가라고 했어?”
  다혈질 성격이니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고 주먹으로 아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분명히 앞뒤에 서있던 외국인 누군가는 이 광경을 쳐다보았을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 못지않게 아빠인 나 또한 국제공항에서 흉한 꼴을 보인 셈이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하여 탑승 게이트 입구 의자에 앉아서도 한참동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아들은 아빠의 폭력(?)에 토라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있고 아빠는 화로 인해 흥분된 얼굴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둘은 말이 없었다.
  정확하게 3년 전 이맘때이다. 아빠는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겨울방학 기간에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무렵 몇 년 간 미술공부를 했던 아이는 예술중학교 미술과에 갈까 말까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로서는 적잖게 답답했다. 예술중학교에 가려면 입시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다 더욱이 도전에 대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결국 아이를 위해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스페인의 역사와 건축 미술 등을 불러보는 여행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새로운 다짐이나 자신의 계획과 목표를 정확하게 세우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래서 떠난 여행길이다. 

여행 중에 생긴 일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길에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스톱오버로 3박 4일을 보냈다. 그 이전에 터키를 보름 동안 여행하면서 살갑게 보낸 민박집이 있었기에 이스탄불의 문화유적지도 보여줄 겸 그곳에 머물렀다. 마침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고흐의 특별전시회도 열리고 있어 더욱 좋은 기회였다. 이스탄불의 그랜드바자 탁심거리 하기야소피아성당 블루모스크 등등 주요명소들을 둘러보고 고등어 캐밥과 로쿰같은 먹거리 체험까지 터키에서의 짧은 일정을 알차게 끝내고 난 터였다. 사실 아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뭐든지 새로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이었기에 여행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은 드디어 아타뒤르크공항에서 터졌다. 지그재그로 된 출국장 펜스는 아이들이라면 얼마든지 고개를 숙여서 통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침 사람이 많지 않으니 녀석은 강아지 담벼락 아래 구멍을 통과하듯 잽싸게 펜스 아래로 이동한 거였다. 자신의 날렵한 행동이 자랑스럽기라도 한 듯 먼저 출국심사대 앞에 도착해서 웃고 있었다. 순간 나는 창피스러움과 당황스러움은 물론이고 실망감에 휩싸였다. 이미 여행 전에 이동시에는 개별 행동을 취하지 말아야하며 공항 기차 비행기 버스 전시공간에서는 뛰거나 큰소리로 떠들면 안된다고 몇 번을 말했건만 아들은 그런 아빠의 에티켓 희망사항을 망각한 것이다.

  역시 아빠는 자식 못이기는 아빠일 뿐이었고 아이는 천상 아이였다. 즐거운 여행길에서 어린 자식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나서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내내 아무말없이 의자에 앉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주변만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녀석을 지켜보자니 마음 한 켠 안스러움이 느껴졌다. 아들의 든든한 우군인 엄마가 동행했더라면 모를텐데 아빠가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처지인데다 그것도 낯선 땅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니 말은 안해도 녀석은 울고 싶은 심정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겠는가. 먼저 화해의 카드를 꺼냈다.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오른 후 토라져서 말도 안하고 있는 녀석에게 간식으로 준비했던 바나나와 쥬스를 건네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덥썩 받아먹었다. 배가 든든해지자 타고난 낙천적인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드리드에 가면 어디를 갈 것이며 저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종알종알 질문을 이어갔고 차근차근 대답을 해주자 언제 야단을 맞았느냐 싶게 녀석의 얼굴은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찬 미소로 번져나갔다.
  마드리드에서의 3박4일은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시내에 위치한 프라도미술관 박물관 왕궁 마요르광장 등을 둘러보고 두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자정된 중세 요새 도시 똘레도에도 다녀왔다. 이왕 갔으면 본전을 빼야한다는 아빠의 욕심 때문에 여행 일정은 잠시도 쉴 틈 없이 빽빽했지만 12살 아들은 공항에서의 사건 이후로 투정부리는 일없이 열심히 따라다녔다.

스페인 건축의 위대함
  아들을 위해 기획한 스페인여행의 핵심은 바로셀로나였다. 천재건축가 가우디의 다양한 건축물들과 피카소의 청소년기 시절 초기작품 상당수를 소장하고 있는 피카소 미술관을 맘껏 보고 즐기도록 해주자는 거였다. 마드리드에서 여덟 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달려간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은 나름대로 녀석에게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가우디 건축물의 야외 전시장이나 다름없는 ‘구엘공원’은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녀석의 발길을 분주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직선이 아닌 곡선을 위주로 한 건물들과 화려하고 독특한 모자이크 장식, 돌로 지은 석굴,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져서 동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연상시키는 건축물 등을 보는 녀석의 표정은 신기함의 충만 그 자체였다.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가우디투어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한 3개의 건축물 또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건축공사가 133년째 현재진행형인 성가족대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물결치는 듯한 리듬을 건물 전체에 표현한 ‘카사밀라’, 햇빛을 받으면 거대한 보석처럼 가지각색으로 빛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다를 형상화한 건물 ‘카사바트요’ 는 실용미술에 대한 꿈을 꾸는 꼬마에게 있어서 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아들의 관심을 주목시킨 또 하나의 현장은 역시 피카소박물관이었다. 30여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간 박물관에는 피카소의 10대 시절 습작 작품들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기에 녀석의 눈높이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선 볼거리였다.

  여행에서는 많은 것들을 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먹고 잘 자는 것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참 발육시기에 있어 뭐든지 잘 먹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다양한 여행경험을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노하우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적은 돈을 들여 아들이 먹는 즐거움도 갖게 하고자 신경을 썼다. 한식이지만 다양한 반찬을 곁들인 아침 저녁 하루 두 끼 식사를 정성껏 제공해주는 민박집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또 이곳 저곳 찾아다니는 동안 꾸준히 먹을 것을 달고 살아야하는 녀석의 입을 챙기고자 현지 마켓에서 구입한 과일 빵 과자 우유 요거트 음료 등을 그날그날 먹을 분량만큼 챙겨서 배낭에 넣고 다니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을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녀석이 한다는 말이 여행하는 내내 집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먹어서 살이 찐 것 같단다. 남의 나라까지 가서 아빠가 끓여주는 백숙을 먹어본 사람은 자기밖에 없을 거라며 자랑 반 비아냥 반 떠들어댔다. 아이가 원하는 길을 찾아주고자 이스탄불 – 마드리드- 똘레도 – 바르셀로나로 이어졌던 그 겨울의 11박 13일의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미래를 만들어 가는 여행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아들은 6학년 신학기를 맞이했다. 한동안 입시에 대한 말이 없더니 5월이 되어서야 뒤늦게 녀석은 일단 예술중학교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준비기간이 넉넉지 않아 걱정이 됐지만 내심 여행을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여기면서 입시미술 지원에 신경을 썼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비용을 감당해야 했기에 힘이 들었지만 녀석의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것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입시는 아쉽게도 실패로 끝났다.
  일반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여전히 예술고와 미대를 거치는 미술공부를 하겠다는 것에 변함이 없었다. 주 2회 애니메이션과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면서 교내외 각종 공모전에서 이런 저런 상을 받았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던 녀석이 지난해 여름 갑자기 새로운 선전포고를 했다. 진로를 예고와 미대가 아닌 건축학과로 바꿨다는 것이다. 건축가가 되겠단다. 자식 뒷바라지가 당연한 의무가 된 나로서는 다행이다 싶었다. 앞으로 4년 동안 미술입시 지원에 들어갈 비용 부담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녀석의 수학실력이 겨우 학년 평균수준에 머물러 있었기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최근 반년 동안 미술학원에 가지 않는 대신 수학공부에 집중한 녀석의 기말고사 성적이 1등급을 코 앞에 둔 수준으로 올라섰다. 미술 기초실력이 있는데다 이젠 수학실력도 월등히 좋아졌으니 녀석은 건축가의 꿈에 한발 더 가까워졌다는 듯 요즘 의기양양해졌다.   
  성장기 아이들의 꿈은 수시로 달라지기도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까지는 아직 3년이 남았으니 녀석의 목표도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3년 전 겨울 천재건축가로 불리는 가우디의 대작들을 보고 돌아온 여행이 아들의 새로운 목표설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두고 볼 일이다. 건축가가 되겠다는 녀석의 꿈이 구체화되기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