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방안

글·문영석|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석유산업의 여건변화

image우리나라의 에너지 분야는 급격한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에너지산업의 내적 측면으로는 정부중심에서 시장중심으로, 생산자중심에서 소비자중심으로, 공급관리중심에서 수요관리중심으로 정책 방향의 기본 축이 전환되고 있다. 에너지산업 외적 측면으로는 동북아 지역의 석유 수급 불균형에 의해 격렬한 자원 확보 경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이에 더해 기후변화협약을 필두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에너지공급자원 확보와 함께 효율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산업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이와 같은 에너지부문의 과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석유 산업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21세기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특히 최근의 고유가 현상은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국민경제의 유가변동에 대한 취약성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의 고유가 상황은 이라크 전쟁 종료 이후 중동지역의 정치적 불안상황이 지속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며, 이 상황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따라서 에너지수급구조 및 산업구조의 근본적인 취약성 해결을 위한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에너지정책의 수립 및 일관된 추진이 요구되고 있다.

총성 없는 에너지 패권시대에 대비, 「에너지자원 안정  확보를 위한 국가적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성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국내 에너지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자원전쟁”이라 할 정도로 주요국가의 에너지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시베리아 송유관을 자국에 유리한 노선으로 유치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은 對러시아 정상외교, 대규모 차관제공 의사표명 등 전 방위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중국이 에너지소비의 ‘블랙홀’로 등장하면서 각 국의 에너지확보 전선에 비상을 초래하고 있는데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너지자원의 전략적 확보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노력은  크게 미흡한 상황에 있다. 소요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에너지 안보제고 보다는 에너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해소에 에너지정책이 주로 할애되고 있는 실정이다. 총성 없는 에너지 패권시대에 대비, 「에너지자원 안정  확보를 위한 국가적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성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국내 에너지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우리나라 대통령의 카자흐스탄-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자원외교 및 에너지 안정 확보의 중요성이 국가적인 과제로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국의 대응 동향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집권 초에 체니부통령을 위시한 주요부처의 장관 및 보좌관으로 구성된 국가에너지전략개발위원회(NEPD)를 발족시키고, 이들로 하여금 “국가에너지정책”을 작성토록 지시하였다. NEPD 2001 5월에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현재의 미국에너지상황을 위기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해 국가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전략을 집대성하여 담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라도 하듯 러시아 역시 2003년에 “2020년까지의 국가에너지 전략"을 수립하였다. 이에 근거해 러시아는 자국의 에너지자원 개발 및 이용이 최대한 국가이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에너지정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주목되는 내용은 러시아의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동시베리아 및 극동지역에 대한 자원개발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러시아가 이 지역의 개발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서부시베리아 중심의 자원개발과 유럽시장 일변도의 수출방식에서 탈피해 태평양지역으로 시장 다변화를 모색하여, 국제 에너지시장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확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일본 또한 2002년 “에너지정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이에 근거해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사정은 위의 나라들에 비해 훨씬 열악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와 같은 주변 국가들의 에너지·자원 확보노력에 뒤쳐져있는 상황이다. 동북아지역의 국가 간 에너지확보 경쟁은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에너지문제의 단적인 예가 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에너지안보체계의 강화, 에너지저소비형 사회·경제구조로의 이행, 친환경적 에너지 수급구조의 달성 등 에너지부문이 이루어야 할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 에너지시장의 질서변화를 직시하고 이에 걸 맞는 에너지안보와 효율과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우리 나름의 국가에너지정책 수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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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응 방향

최근의 고유가 기조는 앞으로 장기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그리고 동북아 주변국의 자원 확보 경쟁이 그 어느 때 보image다 치열해 지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수급구조의 취약성을 감안할 때 지금보다 에너지부문에서 정부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보완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21세기는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와 효율적 활용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정부 내에 에너지정책을 종합 기획하고 관리하는 부 단위의 독립적 행정부서 신설이 요구된다. 그것이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산자부 내 에너지담당 차관제의 도입도 그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에너지 행정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 내에 에너지정책을 종합 기획하고 관리하는 부 단위의 독립적 행정부서 신설이 요구된다.
그것이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산자부 내 에너지담당 차관제의 도입도 그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에너지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시장의 자율기능 확대와는 별개로 정부 역할이 지속돼야 한다. 시장이 담당할 수 없는 에너지안보 과제는 여전히 정부의 몫이며, 에너지 기술기반이 취약한 우리 여건에서 이 부문의 기술혁신도 정부가 선도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아울러 세계 각지의 매장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자원외교도 추진해야 한다.

산업자원부는 이미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에너지기본법”을 입법예고(2004.9.6) 하고 이번 가을 정기국회에서 법 제정을 계획하고 있다.

“에너지기본법”의 제정 목적은 에너지문제를 국가적인 아젠다로 부각시켜 해외 자원 확보 등 국가적 차원의 에너지 분야 과제를 범정부차원에서 추진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에너지 분야는 과거와 달리 정부주도의 독점적 산업구조에서 경쟁적 시장구조로 이행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에너지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는 민간부분과의 협의 및 조정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주요 에너지정책의 수립 및 집행에 민간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도 담당하게 되어, 에너지정책의 국민적 수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안보(자원개발 및 공급안정성 확보)와 관련해서는 주변국과의 지정학적(Geopolitics)고려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전략 수립이 요청된다. 국내 에너지현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민간 협의체가 다양한 의견수렴 및 정책조정 역할을 수행하고, 에너지안보/동북아 에너지협력과 같이 대외정책을 포함하는 장기과제에 대해서는 “장기에너지정책” 수립을 통해 대비하는 정책면에서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최근에 부각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입지 문제를 위시하여 에너지관련 사회적 갈등현상 해소도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주목하여 에너지정책의 방향이 정해져서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수급구조를 더욱 취약하게 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현안에 대한 합의 도출 노력과 함께 대외정책과 연계된 장기 에너지정책 방향을 함께 준비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석유산업의 발전전략: 동북아 석유시장 창출 및 환경친화적 산업화

두 차례의 석유 위기 이후 한국을 위시한 동북아 석유 수입국의 에너지 정책성과를 평가하면, 에너지 종류의 다양화면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 수입선의 다변화 측면에서의 성과는 매우 미약하다는 것이 솔직한 진단이다. 동북아 각국 정부는 “탈석유” “탈중동”을 정책 목표로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탈석유”는 원자력 및 천연가스의 비중 제고로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 “탈석유”는 오히려 중동의존도가 더욱 심화되는 추세에 있고,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다.

그 동안 석유 안보는 ‘수입 의존도 감축’이라는 협의의 개념으로만 해석되어 수출국과 수입국간에 zero sum game을 펼쳐온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에너지안보는 생산국과 소비국간에 공유할 수 있는 개념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2000년대의 석유시장은 세계적으로 단일 시장화 되는 과정에 있으며,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국경에 관계없이 활동을 하고 있다. 동북아 석유시장의 형성은 이와 같이 통합되어 가는 국제 석유시장의 추세 속에서 시장을 안정화 시키고, 세계의 석유 안보와 석유가격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동북아 석유시장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러시아 원유의 동북아시아 공급을 실현시키고, 이를 통해 동북아 국가들이 계속 필요로 하는 중동 원유 역시 안정적인 가격에 지속적으로 수입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게 되면, 동북아 석유시장은 러시아 원유를 매개로 해서 세계 석유시장에 더욱 더 통합된 시장으로 성숙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석유의 안정적 공급”과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동북아 석유시장의 형성을 한국 석유산업이 궁극적으로 지향할 장기적인 비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발전 전략은 환경친화적 산업으로의 전환이다. 향후 석유산업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요인은 ‘환경’이 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다. 석유의 생산, 전환, 소비는 환경오염의 주요한 원인이며, 그 중에서도 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의 대기오염물질은 국제적 환경규제의 핵심적 사안이다. 우리가 수출의 대부분을 의존해야 하는 선진국일수록 지구온난화문제에 적극적인 점을 감안할 때,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석유의 효율적 소비, 에너지 저소비형 제품의 생산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여건변화를 감안하면,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절실히 요구되는 과제는 바로 에너지 저소비·고부가가치형 사회경제구조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앞으로 시장주도형, 수요관리형 에너지정책을 적극 추진하게 될 것이며,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석유산업도 크게 변화해야만 한다. 시장기능의 회복은 곧 개방과 경쟁을 의미하며, 수요관리형 정책은 곧 석유산업의 효율성 증대 요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정부의 지원에 의존해 생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는 지났으며, 어느 기업이 보다 효율적으로 낮은 가격에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의 위상이 좌우될 것이다. 이번 고유가를 계기로 한국 석유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을 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