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에너지믹스와 에너지가격 그리고 우리의 미래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인류와 에너지
아주 오래 전에 프로매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건네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다. 프로매태우스는 요즘 말로 에너지를 인류에게 선물하였고 그 덕에 인류는 자연 속에서 생존력을 향상시켰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산업혁명으로 이름지어지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바로 석탄이라는 고농도의 자원을 활용하는 기술혁신을 통하여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힘은 자본주의를 고도화하고 동시에 제국주의를 태생케 하였다. 이를 통하여 인류는 육지뿐 아니라 하늘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에너지는 석탄에서 석유, 원자력으로 확대되었고 그리고 최근에는 사려깊은 가이아 가이아: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
가 깊숙이 감춰두었던 셰일가스와 같은 자원에까지 손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밥하고 빨래하고 휴식을 취하는 모든 일상을 이러한 고농도의 에너지자원에 의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각국의 경쟁력과 안보도 이러한 에너지에 의하여 생사가 나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의 의도적인 석유가격 전쟁으로 그 러시아가 휘청거리는 상황을 볼 수 있지 않나. 그 와중에 에너지밀도, 전기화밀도, 원전밀도 등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막대한 에너지다소비 시스템을 구축하고 소요되는 에너지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를 구현한 대한민국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프로매태우스가 우리 한국사회를 보면 진심으로 만족스러워 할까.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의 중요성
이러한 중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석유금수조치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듯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은 국가유지의 핵심적 기반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에너지수급이라는 용어보다 에너지안보(security)라는 용어를 정부정책보고서에서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에너지안보는 말 그대로 “에너지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차 2차 석유파동을 경험하면서 우리나라의 에너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발전연료의 70%에 이르던 석유를 단기간에 퇴출시키고 석탄, 가스, 원자력으로 성공적으로 다변화시킨 저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전력망의 경우에도 배전설비의 포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30년에 걸쳐 220볼트로의 승압을 과감히 추진하여 성공하였다. 이러한 풍부한 에너지인프라의 조기구축은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 육성과 한강의 기적 실현의 가장 핵심적인 성공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다고 그리고 정말 대단한 정책적 선택이었고 추진력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단한 나라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성공은 점차 빛을 바래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녹색성장이라는 최고의 국정우선순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에너지시스템은 고장이 나기 시작하였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거대한 에너지시스템이 의지가 아닌 관성으로 항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걱정스럽다.
에너지안보는 큰 틀에서 본다면 공급물량의 확보에 문제가 생긴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측면에서 가격파동보다는 물량파동을 에너지시스템 실패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마다 시기별로 그리고 자원보유량 및 소비행태에 따라 에너지안보는 상당히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에너지안보(SECURITY)는 과거의 실천적 정의는 탈중동이었고 이는 곧 중동석유로부터의 자유가 그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안보의 개념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다. 일본에서도 예전에 가스파이프 라인의 결정과정에서 일본정부와 가스사용자인 동경전력간의 논쟁이 발생한 바 있었다. 동경전력은 비용이 적게 드는 노선을 희망했으나 일본 정부는 분쟁의 소지가 적은 노선을 고집한 바 있다. 이것이 경제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하는 안보적 차원에서 에너지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작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에너지에 대한 중요성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
우리나라가 바라보는 에너지는 무엇일까. 정부는 에너지를 통하여 거대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고 각종 보조금정책을 발표하고 있고, 소비자들은 제 값을 내는 것을 당연하듯 요금인상을 거부하고 있고, 연구계는 지루한 기술개발보다는 단기 수익성위주의 비즈니스모델을 강조하고 있고, 지역은 어떠한 에너지설비도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수급안정에 대한 고려나 우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각종 상황상 대규모 블랙아웃에 대한 취약성이 대단히 위험한 나라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와 같이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체제하에서 블랙아웃 가능성 등으로 인하여 국가안보의 차원으로 그 의미가 점점 더 커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석유산업, 원자력산업 그리고 중전기산업 공히 이러저러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수급과 산업 공히 위기에 있는 것이다. 과연 한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 에너지문제를 이토록 소홀히 여기고 가볍게 여겨도 되는 것일까.
에너지안보를 다루는 원칙은 다양하다. 경제 환경 형평성의 균형을 중시하는 지속가능성은 아마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원칙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균형을 구현하는 구체적이고 기본적인 모습은 ‘에너지 베스트믹스’이다. 어떤 것이 베스트믹스인가. 베스트 에너지믹스는 에너지수입비용, 인프라구축비용, 갈등비용 그리고 환경비용 등의 총합이 최소가 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단순화시켜보면 우리나라처럼 기름 한 방울 나지않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에너지수입액이 최소화되는 지점일 수도 있다. 하여간 우리는 에너지 베스트믹스를 구현하기 위하여 논쟁하고 실천해 온 것이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의 기조였다.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하는 베스트믹스에 대하여는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그 방향을 설정한 바 있다.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하여 우리의 에너지믹스를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단한 바 있다. 고급에너지인 전기에너지가 석유나 석탄보다 싼 심각한 왜곡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믹스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비자들의 연료선택을 결정하는 최종소비자 가격의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에너지믹스는 에너지가격이다.
최종소비자가격은 요금과 세금으로 구성된다. 현재의 세금은 석유과세 전기면세(금번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하여 발전용 유연탄에 대한 과세를 신설한 바 있으나)의 뚜렷한 차별이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세제조정을 통하여 전기화속도의 조절로 에너지수입 및 환경부담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사업자가 갖는 요금의 경우 전기와 가스는 규제가격이고 석유는 나름 자유화 가격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두 가지 주요 요금체계가 점차 원래의 요금설계 원칙과 괴리가 심각해지고 있는 점이다. 전기요금의 경우 항상 총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낮은 요금수준을 통하여 각 사업자의 수익률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석유의 요금부문을 보더라도 상당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유가격은 싱가포르 지표를 활용하고 있다. 이에 일정부분 수익을 업계가 자율적으로 경쟁적으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 알뜰주유소라는 정책수단을 영향력있는 지표로 활용하게 됨으로서 자연스럽게 정부가 최종요금까지 조절하게 된 상황이다. 만약 알뜰주유소에 보조를 강화하면 이를 레버리지로 해당지역의 가격을 싱가포르가 아니 동네지표에 의하여 다시 재설정된다. 즉 알뜰주유소에 대한 지원보조금의 조정으로 결국 전체 석유가격의 조정을 유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모든 에너지의 최종소비자가격은 정부가 직접 간접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모든 주요에너지산업계의 수익률을 정부가 직간접으로 결정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각 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이러한 현상은 97년 석유자유화조치와 아직 전력산업구조개편이라는 프레임에서 본다면 이는 공식적으로는 결정되지 않은 정부주도의 가격조정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느 경우에도 친시장적인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정책수단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어느 경우에는 친소비자 어느 경우에는 친산업계로 기울어질 수 있는 상황이므로 대단히 정교한 조정이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과거에는 통상 관련 산업계의 적정 수익률을 보장하는 선에서 친소비자 성향을 보여왔었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당한 수준으로 친소비자 성향을 보이고 있지 않나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반적으로 에너지산업계는 적자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가격결정방식도 이상하고 그 결과도 이상하다.
에너지 베스트믹스로의 추구
에너지 베스트믹스는 우리와 같이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제조업 국가의 입장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러한 베스트믹스를 결정하는 가격결정 메카니즘과 제도는 에너지비용의 최소화뿐 아니라 건전한 산업계의 생존까지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건전한 에너지산업은 결국 소비자들의 편익을 중장기적으로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그들의 수익률을 제로나 적자로 관리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파퓰리즘이다. 결국 국가적인 수급, 산업과 소비자의 이익을 모두 공정히 결정하는 가격방식의 채택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가격결정방식은 지나친 친소비자 성향을 갖는다. 이는 결코 소비자의 이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입지난으로 위기상황인 전력의 경우에도 가격의 정상화는 블랙아웃 방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변동되는 유가와 글로벌한 공급초과 현상으로 석유산업 역시 대단히 위기상황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의 석유산업은 오히려 국가의 보호와 지원으로 새로운 경쟁자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친소비자 가격정책은 석유산업뿐 아니라 미래의 소비자의 이익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적합한 새로운 가격결정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시장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유해보조금으로부터 강인하고 산업과 소비자의 이익을 단기 중장기적으로 균형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싼 에너지값이 소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에너지 베스트 믹스를 새로운 “가격 포뮬라”로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도 살고 에너지산업계도 살고 우리 소비자도 사는 현명한 지름길이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전기와 석유는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대한민국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야 말로 에너지분야의 사회적 책무이다. 만약 정치권이 눈을 감는다면 에너지계 내의 헌신과 혁신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산학연과 관(官)그리고 시민사회계가 합심하여 소비자와 산업계를 설득해야 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해법인 에너지세제와 가격 정책의 합리화를 위하여 각자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석유산업, 전력산업, 신재생산업 등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그리고 결국 소비자의 혜택을 높이고 대한민국의 생존을 지키는 일이다. 이제 가격 포뮬라를 두고 모두 모여 고민을 시작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