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연료유 소비세제의 문제점과 정상화를 위한 정책제언
성명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대표적인 소비품목에 부과되는 피구후생조세의 의미
석유류(에너지 포함)는 특성상 술∙담배 등과 함께 고율의 세금이 부과되는 대표적인 소비품목이다. 술∙담배의 경우 고세율의 부과목적은 국민건강 증진, 음주∙흡연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비용의 감축, 국민보건 관련 재정악화 방지에 있다. 석유류의 경우에는 환경오염이나 교통혼잡 등과 같은 사회적 비용의 감축 등에 있다. 사회적 외부비용을 세율에 반영하여 부과하는 소비세를 흔히 피구후생조세라고 한다.
술∙담배∙석유류의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그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 역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여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품목간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세율을 부과하는 주된 목적은, 일정 범위 내에서 소비를 조절하여 사회적 외부비용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세이론에 의하면, 석유류를 포함하여 에너지에 부과되는 세금은 원칙적으로, 소비시에 파생되는 환경비용∙혼잡비용 등 사회적 외부비용을 세율에 반영하여 결정하는 것이 국민경제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보장하기 위해 바람직하다. 소득수준이나 경제발전단계가 비슷한 경우에도 국가별로 유류세율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국가별로 세금에 대한 문화적∙정서적 인식 차이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적 외부비용을 정확히 집계하여 모두 세율에 반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다만 최소한 개념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여 세율을 책정하는 피구후생조세의 의미에 입각하여 조세정책을 전개하는 것이 선진국의 일반적인 추세이다.
소비구조의 왜곡을 초래하는 유종 간 세율격차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에너지세제개편을 추진하였다. 이를 통해 확립한 에너지세제개편의 기본정신은 피구후생조세적 관점에 입각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비용∙혼잡비용이 큰 유종일수록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 연료유에 대해 고세율의 소비세가 부과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미국처럼 국토면적이 넓지만 인구밀도가 낮은 국가에서는 자동차 연료유의 세부담을 낮게 책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이다.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인구밀도가 낮고 교통혼잡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혼잡비용이 낮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중교통의 건설∙운용비용이 개인교통수단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에 개인교통을 권장하는 것이 훨씬 더 비용효율적이라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물리적으로 수평적 이동거리가 매우 긴 국가적 특성으로 인해 유류세를 높게 책정하면 일반 국민들의 경제생활이 큰 타격을 입고 국가경제적으로도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대중교통수단보다는 개인교통수단을 더 권장한다.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예외에 해당된다. 우리와는 근본적∙환경적으로 여건과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유류세, 그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연료유는 특성상 높은 소비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높은 교통혼잡∙환경오염비용을 세율을 통해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서구선진국에서는 자동차 연료유의 경우 소비자가격 중 세금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약 3분의 2에 이르는 국가도 있다.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보다 세금비중이 조금 낮다. 최근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생산원가가 하락하고, 그 결과 세금비중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유가하락에도 불구하고 국내유가 하락률이 국제유가 하락률보다 낮은데 이는 세금 때문이다. 반대로 국제유가 급등시에 국내유가 상승률이 국제유가 상승률보다 낮았었던 것도 세금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 비용이 국제유가와 관계 없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피구후생조세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비용의 차이가 큰 경우 유류세율의 차이가 큰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적 비용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세율 차이가 크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왜곡을 야기한다. 특히 소비자가 지출하는 소비자가격 중 세금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을수록 세율 차이가 소비자가격의 차이를 확대시키므로 왜곡의 크기 또한 더 크게 증폭된다.
자동차 연료유의 경우 세금비중이 높기 때문에 유류세 정책이 시장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따라서 에너지세 정책이 가격을 통해 에너지 소비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외부비용의 차이가 명백하게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다른 유종 간 세율격차가 객관성을 벗어날 정도로 현저하면 소비구조의 왜곡은 물론이고, 자원배분 왜곡, 산업왜곡, 사회후생 감소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 피구후생조세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동종∙유사 목적으로 소비되는 유종들 사이에서 세율격차가 크게 벌어지면, 고세율∙고가격 유종에서 저세율∙저가격 유종으로 급격히 소비가 대체된다. 일차적으로는 소비대체에 따라 정부의 재정손실이 발생하여 정부부채가 증가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유류세 과세의 본질이 훼손되면서 국가경제적으로도 자원배분이 왜곡되면서 커다란 후생손실을 초래한다. 합리성에 기초한 시장선택이 아닌, 세율 및 가격왜곡으로 인해 생산∙소비의 왜곡현상이 발생하면서 국민경제적 비용손실이 크게 확대된다.
저세율 대체 유종이 초래할 환경오염과 교통혼잡
소비자들은 똑똑하다. 연비 차이로 인한 연료비 절감유인에 따라 최근 디젤승용차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 간 가격차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음에도 유종간 소비대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새로운 대체 유종이 나타나고, 그 유종에 세율이 부과되지 않거나 환경비용∙혼잡비용에 미달하는 수준의 저세율이 부과된다면, 이미 고세율이 부과되고 있는 휘발유∙경유보다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해지면서 소비대체도 극심해질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개인이 부담하는 총비용이 사회적 비용에 미달하여 시장의 실패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환경오염이나 교통혼잡을 발생시키고 국민경제 부담을 가중시킨다. 고세율 과세유종에서 저세율 과세유종으로의 급격한 소비대체를 통해 유류 관련 세목의 세수를 급감시킴으로써 재정에도 큰 부담을 초래한다. 부족한 정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유류 소비와 관련이 적은 부분에서 증세가 불가피해진다. 이는 유류를 소비하는 않는 계층이 유류를 소비하는 계층에 교차보조해주는 불공평성 문제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사회적 외부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상태에서 왜곡된 소비가 이루어지면, 원인자∙수익자의 불일치에 따른 교차보조 문제와 불공평성, 후생손실, 사회후생의 감소 등 여러 측면에서 국민경제에 후생손실이 발생한다. 형평성 측면과 효율성 측면 모두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연료유로 휘발유, 경유, LPG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전기차, 수소전지차 등 실험실 수준에서 타당성을 타진하거나 조금씩 보급이 시작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밖에 제한적으로 대중교통 수단 중 시내버스 등이 압축천연가스(CNG)를 사용하고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보급이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잠재적으로 천연가스가 일반승용차의 연료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천연가스는 대부분 취사용∙난방용 도시가스와 발전용 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 연료유와 달리 저율과세되고 있다. 소비형태와 목적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피구후생조세적 관점에서 혼잡비용과 관련이 없다는 점도 저율과세의 한 요인이다.
CNG 시내버스의 경우 혼잡비용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수단의 특성상 개인교통수단 연료유와 차별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시내버스 CNG는 예외적 사항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일반승용차 가운데 천연가스차로 개조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아직 그 숫자가 크지는 않지만 증가율은 매우 높다. 세법에서는 아직 천연가스를 승용차연료유로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환경∙혼잡비용을 반영한 세율이 적용되고 있지 않다. 세율 및 가격격차가 현저하다. 따라서 장차 CNG 승용차의 급증이 예상된다. 특별히 절대적∙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세금 차이에 의한 화폐적∙금전적 요인에 의해 CNG가 기존의 자동차 연료유(휘발유, 경유 등)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는 정부 조세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에너지 소비구조를 왜곡할 위험이 상존한다.
특별히 다른 연료에 비해 기술적∙환경적 측면에서 우수성이 있다거나, 또는 현재는 아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관련 기술이 충분히 성숙되어 잠재적 우월성을 지닌 경우라면 새로운 연료유에 대해 조세정책적 차원에서의 지원, 즉 저율과세 또는 면세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피구후생적조세 관점에서 무차별한 조세의 부과가 바람직하다. 과거에는 미처 연료유로 인식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과세하지 않았을 뿐, 사회적 외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자동차 연료유에 동일원칙의 피구후생조세 적용
원칙적으로 동종 목적의 연료유에 대해서는 동일 원칙에 의해 적정 수준의 세율을 차별없이 고르게 부과하는 것이 조세원칙과 국민경제 및 재정의 지속가능발전에 부합한다. 잠재적으로 천연가스가 자동차 연료유로 사용되거나, 현재 규제를 통해 소비가 제한되고 있지만 일반승용차에 택시연료인 LPG가 허용되는 경우, 휘발유나 경우와의 세율격차 해소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율격차가 가격격차를 유발하고, 소비대체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에너지 과세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릴 위험성이 매우 높다. 환경∙혼잡비용을 세율에 반영함에 있어서는 개념적으로 연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연비는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에 객관적 지표로서 무게감이 떨어진다. 세금은 객관성∙투명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연비에 대한 대리변수로서 열량 등을 기준으로 세율책정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대안인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친환경 차량이라고 하더라도 혼잡비용은 부담하여야 한다. 환경친화차량의 경우에도 주행으로 인한 교통혼잡은 피할 수 없다. 연료유의 종류에 관계없이 혼잡비용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친환경 차량의 경우 직접적인 오염물질 배출은 없거나 미미하다. 그러나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간과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아울러 백보양보하여 태양열 등 재생가능한 무공해에너지를 사용하는 전기자동차라고 하더라도 교통혼잡에 의해 발생하는 혼잡비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일반적인 화석연료 자동차와 완전히 동일한 비용을 발생시킨다. 보급 확대 차원에서 일시적∙잠정적으로 보조금 지급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들과 동일하게 혼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은, 흔히 간과하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자동차 연료유의 경우에는 자동차 주행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여 총체적 관점에서 무차별적으로 피구후생조세를 적용∙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