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산업이 나아갈 방향은?
온기운(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근 수년간 수익 급속히 악화
한국 정유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수출 및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적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정유업계의 매출액은 정유와 비정유 부문이 대략 9대 1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비중이 상대적으로 매우 큰 정유 부문이 오히려 손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비정유 부문이 이 손실을 보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출액영업이익률을 보면 2012년에 정유부문이 -0.3%로 2010년과 2011년의 2.2%에 비해 급락했다. 작년에는 -0.01%로 마이너스 폭이 다소 줄긴 했으나 영업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그동안 정유사들의 실적을 떠받쳐 주었던 비정유 부문의 실적마저 최근 악화되고 있어 실적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석유화학과 윤활유를 포함한 비정유 부문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11년 17.6%를 정점으로 2012년 14.8%, 작년 11.9%로 낮아졌다. 정유 4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0.6~1.6%로 상장사 제조업종의 평균 영업이익률 5~8% 수준에 크게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부문만을 놓고 볼 때 한국 정유사들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메이저들은 물론 한국의 제조업 평균 매출액영업이익률에 훨씬 못미치는 저조한 수준이다. 더구나 최근 수년간의 실적악화가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정유산업의 구조변화가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성격이 짙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구조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
정유사들의 실적을 악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은 미국발 ‘셰일혁명’으로 표현되는 비전통에너지 생산 급증과 세계적인 정제능력 확장에 따른 수출증가세 둔화, 정제마진의 악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통적인 석유는 미국의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등의 생산확대에 따라 공급대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휘발유, 경유 등 전통적인 석유제품도 생산이 증가해 가격이 저렴해진 천연가스로 대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2011년부터 석유제품 순수출국으로 전환되면서 수출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세계 정제산업은 공급초과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중국 정부가 정제능력 4만b/d 이하 소규모 정제공장의 폐쇄를 추진하고 있어 기업들이 오히려 정제능력 확대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IEA(국제에너지기구) 분석에 따르면 세계 정제산업의 공급능력(CDU)은 2011~2016년에 9.6mb/d 늘어나 2016년에 102.7mb/d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능력 증가의 약 95%는 비OECD 국가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 의한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 단독으로 공급능력 증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3mb/d의 증가가 예상된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최근 한국 석유제품 수출부진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품목별 수출금액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석유제품은 작년에는 수출이 전년보다 5.9% 감소한 527억 8,700만달러를 기록했고 품목별 수출 순위도 반도체에 밀려 2위로 떨어졌다. 올들어 8월까지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0.5% 늘어난 354억 9,400만달러를 기록했으나 수출증가율은 전체 수출증가율 2.5%을 밑돌았다. 정유사들은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등으로의 우회수출 확대 등 수출증대 노력을 다각도로 벌이고 있으나 수출전선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 부진과 맞물려 험난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제마진 악화는 정유사들의 실적악화로 직결되고 있다. 원유와 석유제품간 스프레드 축소는 정제마진 악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년 원유가격은 배럴당 3.8달러 하락했으나, 경질 국제석유제품 가격은 4.3달러 하락해 스프레드가 축소되었다. 올해는 마진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데, 단순 정제마진은 올해도 마이너스가 이어지고 있고, 크래킹마진을 포함한 복합정제마진은 작년 배럴당 4달러 중반에서 올 6월에는 2달러선으로 떨어졌다.
수출증가세 둔화와 정제마진 악화에 더하여 최근 국내경기 부진에 따라 내수마저 위축되어 정유업계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2011년 이후 추진했던 알뜰주유소, 혼합판매, 전자상거래 등 각종 시책들이 정유업계 전반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국내에서 내년부터 아시아에서 최초로 국가 단위의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이로 인해 정유업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의 전방위적인 자구노력 필요
이상의 상황을 종합하면 국내 정유 산업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를 업계나 정부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유사들은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뿐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시장다변화와 사업다각화 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면서 국내 석유수요가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고 향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석유산업이 과거 고도 성장을 하던 시기와 같은 성장세와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대부분 선진국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석유제품 수요증가율은 연평균 1%대에 그치고 있는데 특히 한국과 산업구조가 유사하고 한국보다 앞서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석유제품 내수가 해마다 1~2%의 감소율을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내수위축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석유제품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도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정제능력의 지속적인 확장과 셰일가스 등 비전통에너지 보급 확대 등으로 더 이상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석유제품의 내수와 수출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시장을 다면화하는 한편, 석유정제 중심의 사업구조를 점차 다각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전통 석유나 가스의 경우 기존 석유매장지역의 매장량 고갈과 탐사성공률 하락 등으로 경제성 있는 생산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추가적인 생산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메이저들이 하류부문의 사업을 구조조정하고 대신 상류부문에서 비전통에너지 탐사 및 개발‧생산에 대한 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석유기업들도 향후 전통에너지보다는 비전통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한 상류부문 투자에 더욱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계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금융지원이 필요하다. 리스크가 높은 상류 부문에서 탐사와 개발·생산 등을 하려면 리스크를 완화해 줄 수 있는 성공불 융자확대나 각종 보험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
셰일혁명으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이다.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납사에서 에틸렌 등의 기초원료를 만든다. 문제는 납사가 에탄 베이스의 가스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다. 가격 차이가 10배 이상 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에틸렌 수요가 둔화되어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최근 중동국가들이 천연가스에서 값싼 에틸렌을 생산하고, 최대 수요국인 중국도 연산 100만톤급 이상의 대형 에틸렌 플랜트, 특히 석탄화학기반 에틸렌(CTO) 설비를 잇따라 신․증설하고 있어서 공급과잉을 부채질하고 하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셰일충격마저 겹쳐 한국 석유화학 업계의 경영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다만 천연가스에서는 원유에서 나오는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의 부산물이 거의 추출되지 못하기 때문에 원유 쪽은 나름대로 강점을 갖고 있고 이를 수익극대화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한 때 수익성이 높았던 파라자일렌이 최근 공급과잉 상태에 빠지는 등 또다른 악재가 더해지고 있는 만큼 석유화학 업체들의 전방위적인 자구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인식전환 불가결
정부는 소비자 부담 완화라는 측면에서 석유제품 가격인하에만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시장개입과 그로 인한 정유사의 수익성 악화를 통해 정유사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할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과거 휘발유값을 리터당 100원 인하하도록 한 조치나 알뜰주유소, 혼합판매 등의 규제는 석유제품의 가격 인하를 통해 소비자들의 에너지 소비부담을 줄여주자는데 목적이 있었으나 이는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역기능을 낳았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반도체, 항공기, 철도차량, 선박용엔진, 발전설비 등과 함께 정유산업에 대해 빅딜을 추진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 바가 있다. 지금의 정유 4사 체제는 당시 정부의 빅딜정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정유산업을 과점체제라고 매도하며 일방적으로 규제를 가하기보다는 현재 처해 있는 어려움을 인식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국제 석유산업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주시하며 한국 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의 정유산업이 국제경쟁의 대열에서 완전히 밀릴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