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문화, 태권도 이야기

이 봉(가천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올림픽 무대의 태권도

  태권도가 하계 올림픽 경기대회에 등장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시범경기 종목으로서 서울에 이어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도 참가하였다. 199494일 파리에서 열린 제103IOC(국제올림픽위원회)총회에서 드디어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중국의 우슈, 일본의 가라데가 경쟁하였으나 태권도를 당할 수는 없었다. 한국의 운동문화가 세계 206개 회원국에 전파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의 문화제전인 올림픽 대회의 주종목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5천년 한국 문화의 저력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2000년 호주의 시드니, 2004년은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 아테네, 2008년은 아시아 문화의 중심이라고 자랑하는 중국의 베이징, 2012년은 현대 스포츠의 종주국 영국의 런던에서 태권도는 힘차게 기합을 넣었다. 한글. 우리말로!

두 해 뒤인 2016년에는 남미의 브라질 리우에서, 그리고 6년 후인 2020년에는 하계 올림픽을 두 번째 개최하는 도쿄에서 태권도는 그 위용을 뽐내게 되었다.

대한민국 태권도는 나라와 겨레의 성원에 힘입어, 20세기의 고난과 질곡을 뛰어넘어 21세기 스마트 시대에 각광받는 올림픽 스포츠로, 예절과 겸양의 도를 수행하는 생활 속의 심신 수련으로 도약하고 있다.

올림픽의 맨몸 투기 스포츠는 모두 네 가지가 있다.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을 시원으로 유럽에서 발전해온 복싱과 레슬링, 그리고 동아시아 무사들의 심신단련에서 현대화한 한국의 태권도와 일본의 유도가 그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 기원의 스포츠인 레슬링과 복싱은 팔다리를 노출한 복장이고, 아시아의 태권도와 유도는 도복 안에 신체를 가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네 가지 올림픽 투기 중 두 가지는 선수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서 주먹 또는 발로 가격하는 타격형이고 두 가지는 선수 두 사람이 서로 붙잡아서 쓰러뜨리는 전도형이라는게 재미있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전사양성을 위한 무술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장에서 쓰러뜨리고 급소를 가격하여 무력화하는 기술이 통합되어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격투 기술의 진화에 따라 붙잡고 쓰러뜨리는 기법과 간격을 두고 주먹 지르고 발로 차는 기법이 분화된 것은 동서양의 공통현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근대 스포츠에서는 선수의 안전이 필수요소이므로, 자연히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기술은 제한하고 승부를 가리게 된 것이다.

태권도 자랑을 한 가지 늘어 논다면, 태권도는 여성 친화적 스포츠라는 점이다. 태권도는 올림픽 무대에서 남여 각 4체급 겨루기 경기를 개최해왔다. 그러나 유도는 최초에 남자만 개최하였고 복싱과 레슬링 역시 남자경기만 해왔다. 비록 최근에는 여성에게 참가기회를 열었으나, 태권도는 투기사상 최초의 남녀평등을 실현한 인권존중의 운동이다.

석유와 태권도

1979, 이란혁명으로 야기된 제2차 오일쇼크로 인하여 중화학공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던 한국경제는 큰 위기를 맞았다. 이란의 원유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원유가격이 배럴당 10달러 선에서 30달러 이상으로 급등한 것은 물론 원유 비축이 부족하던 당시의 한국경제는 공장이 멈추게 될 위기에 빠졌다. 석유가 국제 외교와 분쟁의 무기로 등장하였다. 한국의 고위관료들은 산유대국인 사우디왕국을 대상으로 국운이 걸린 원유확보에 외교력을 집중하였다.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개발도상국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한국의 각료로 구성된 원유확보사절단은 왕자가 맡고 있던 석유장관을 쉽사리 접견할 수 없었다. 고국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석유확보가 벽에 부딪쳤다. 천우신조였던가! 한국의 석유사절은 왕자의 자녀를 가르치는 태권도 사범의 협조로 석유장관이던 왕자를 만나게 되었고, 석유 위기를 넘기는데 태권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무용담(?)이 전해진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태권도 경기에는 아랍에미리트의 알 막툼 공주가 출전하였다. 이래저래 막대한 오일달러를 배경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동경제에 태권도는 수많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사우디,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이집트, 리비아, 카타르, 예맨, 시리아, 레바논에서 한국의 태권도사범들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한류의 정신을 심어왔다.

에피소드

필자는 2006년 가을학기에 연구년을 맞아 한 학기를 호주에서 보냈다. 호주 퀸즈랜드의 골드코스트에서 머무르며 레저, 스포츠, 관광이 융합된 세계적인 명소의 풍광을 만끽하였다.

하루 온 종일 남태평양, 큰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듣기에 싫증이 난 아내가 한국에서는 문 밖에만 나서면 산, 산 인데 여기는 어마어마한 바다와 수십 리에 이르는 모래밭만 있어요.”라고 배부른 투정을 하였다. 여름이면 남들 다가는 동해에 가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빈정거리던 아내가 산이 그립단다.

지도를 보고 찾아간 산이 해발 900미터 쯤 되는 스프링부룩 국립공원이었다. 한국의 강토는 온통 정겨운 산에 기대어 아늑한 편이나, 호주의 산은 열대우림이 울창하고 인적이 드물어 영화 쥬라기공원에서처럼 괴기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윽고 하산 길 산 중에 큰 호수가 아름다워 들려보니 힌즈댐이다. 파노라마처럼 절경을 전망할 수 있는 곳에 노천카페가 있어 카푸치노 두 잔을 부탁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Taekwondo Australia’라는 잡지가 꽂혀있는 것을 보았다. 잡지를 뒤적거리니 여주인이 말을 건다.

한국에서 왔느냐? 태권도를 아느냐?” 짐짓 태권도학과 교수라는 걸 밝히지는 않고 코리안이라는 대답을 하고 되물었다. “태권도를 좋아하세요?”

남편은 빨간 띠, 딸은 파란 띠, 자기는 노란 띠, 아들은 검은 띠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도심에서 멀리 있는 높은 산 속의 댐에 부속한 작은 카페에서 드문드문 손님을 맞이하는 가정주부가 어찌 태권도를 수련한단 말인가? 제일 가까운 태권도장은 100km이상 거리가 있는 브리즈번에나 있을 터인데.

사연인즉 이랬다. 아들이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퍼스에서 한국인 고 김석봉 사범에게 2단까지 배웠다. 그 아들에게 온 가족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가족이 모두 모이면 엄마는 품새 태극 2, 누이는 태극 4, 아버지는 태극 6장을 아들이 가르치고 한 달간 연습하여 아들이 심사를 한단다.

카페의 여주인은 태권도잡지를 힌즈댐 여행 기념품으로 가져가란다. 아마도 그분은 일주일 후에 브리즈번에서 열린 영연방 태권도대회에서 필자가 퀸즈랜드 총독과 함께 메달을 시상하는 중계방송을 보고 깜짝 놀랐으리라 생각한다.

그때 브리즈번의 영연방 태권도경기장에서 만났던 기품이 넘치고 우아한 쿠엔틴 브라이스 퀸즈랜드 총독은, 20084월에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에 의하여 오스트레일리아연방 최초의 여성 총독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