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협회보 기고문
에너지원 과세형평성 제고를 통한 에너지 수요관리 방안
홍성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전기는 편리한 에너지이다. 전기 코드를 콘센트에 꼽기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고, 사용 과정에서 어떤 오염 물질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편리한 전기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없다. 특히 우리 모두가 전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한파 속에서 더욱 그러하다. 왜 이러한 모순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우리는 편리한 에너지라는 전기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그 이유는 전기에 대한 수요가 공급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여름이나 겨울의 피크 시간대에 필요한 전기 수요량을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공급량이 부족하고, 이러한 경우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전기 소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공급체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단적인 예가 2011년의 ‘9·15 순환단전’ 사태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전기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이 주로 추진되어왔다. 전기가 부족하니 발전소와 송전망을 더 지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웃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우리의 원전 비리 사건을 보면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공급 확대에만 치중한 정책으로는 전기 수급 문제를 ‘안전하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단 원자력 발전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기저 발전 에너지원인 유연탄의 경우에는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다. 더군다나,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이, 이제는 송전망을 새로 건설하는 것도 상당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오는 사안이 되었다. 인구가 적은 지방에 원자력 발전소나 유연탄 화력 발전소와 같은 대형 발전소를 건설하여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인구가 많은 도시로 공급해온 기존의 공급확대 정책이 점점 타당성을 잃고 있는 것이다.
전기 수요가 공급에 비해 많은데,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해결책은 수요관리에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요관리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소비 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지난 여름 9·15 순환단전 사태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이러한 수요관리 정책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소비 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수요관리 정책에는 상당한 행정비용이 든다. 보이지 않는 전기를 얼마나 소비하는지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고, 규제를 피해 부당하게 소비하지 않는지 (예를 들어 상점이 문을 열고 냉방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규제를 받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불편이 따른다. 마땅히 다른 대체 에너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때에 전기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수요관리 방법은 에너지 가격체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전기로 에너지 수요가 몰린 이유는, 액화천연가스(LNG), 등유와 같은 대체 에너지원에 비해 전기가 더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기 요금체계와 함께 전기 대체 에너지원들의 가격체계를 조정하여 상대가격 역전 현상을 바로 잡는다면, 전기로 몰렸던 에너지 수요를 다른 에너지원들로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가격체계 조정 이전에는 액화천연가스, 등유와 같은 전기 대체 에너지원의 가격이 전기보다 비싸서 전기로 수요가 집중되었다면, 조정 이후에는 전기보다 저렴해진 액화천연가스, 등유로 에너지 수요가 분산될 것이다. 이렇게 조정된 새로운 에너지 가격체계 하에서 소비자들은 전기 소비에 대한 규제 없이 자유롭게 전기를 소비하면서 개별 에너지원의 가격을 고려하여 적정한 소비 수준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에너지 가격체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생산자나 소비자들이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비용 이외의 ‘사회적 비용’이 존재한다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은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고 수요와 공급을 효율적으로 조정하지도 못한다. 이러한 경우, 가격이 사회적 비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조세정책을 활용할 수 있다. 즉 가격이 낮은 재화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가격이 높은 재화에는 세금을 깎아주어 가격체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러한 접근법을 ‘피구 조세’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교과서적인 접근법에는 또 다른 ‘교과서적인’ 문제점이 있다. 사회적 비용을 추정하기가 매우 어렵고, 추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적 비용을 얼마나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조세정책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러 정책 대안이 존재하고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있을 때,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사실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비용을 추정하여 가격에 반영하는 교과서적인 접근법의 한계를 생각해볼 때 조금 더 현실성이 있는 방안은, 기존의 에너지세제를 바탕으로 하여 에너지원 사이의 상대적인 세부담 체계를 조정하고, 이에 상응하도록 에너지 가격체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방안을 생각해볼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기존의 에너지세제 하에서 액화천연가스와 등유에는 소비세가 부과되고 있지만, 주요 발전 에너지원인 원자력과 유연탄에는 소비세가 부과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원자력과 유연탄에 소비세가 부과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발전 에너지원에 비과세 혜택을 주면 전기 요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전기 수급 불균형 현상을 고려할 때, 원자력과 유연탄에 비과세 혜택을 주면서까지 전기 요금을 낮게 유지하자는 주장은 점점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원자력과 유연탄에 개별소비세를 신규 과세하고, 액화천연가스나 등유의 경우에는 기존의 세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때이다.
기존의 에너지세제를 바탕으로 에너지원 사이의 상대적인 세부담 체계를 조정하고자 한다면, 유연탄과 원자력에 이어 세 번째로 발전량이 많으면서 동시에 전기 대체 에너지원이기도 한 액화천연가스의 세율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에너지원의 세율을 설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결국 에너지원이 만들어내는 열량을 소비하는데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므로, 액화천연가스의 열량과 다른 에너지원의 열량을 비교하여 세율을 설정할 수 있다.
현재 액화천연가스의 세율이 킬로그램당 60원이므로, 단위질량당 유연탄이 만들어내는 열량이 액화천연가스가 만들어내는 열량의 절반인 것을 고려하면, 유연탄에 킬로그램당 30원의 기준 세율을 설정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개별소비세법에서 허용하는 탄력세율제도를 활용하여, 기준 세율의 30% 범위에서 정책적으로 실행 세율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원자력의 경우에는 에너지원인 우라늄에 직접 과세하기보다는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에 대해 단위전력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안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이 경우, 기존의 원자력 발전 관련 부담금과 함께 아울러서, 목적세나 부담금의 형식이 아닌 개별소비세의 형식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해 신규 과세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연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액화천연가스의 세율과 열량을 고려하여,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에 대해 킬로와트시(kWh)당 11원의 기준 세율을 설정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탄력세율제도를 활용하여 기준 세율의 30% 범위에서 실행 세율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 소비에 있어서 전기 대체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전기 대체 에너지원인 액화천연가스와 등유에 대해 세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액화천연가스의 세율은 킬로그램당 60원이고, 등유의 세율은 리터당 90원이므로, 탄력세율제도를 활용하여 30% 범위에서 세율을 조정하면, 각각 하한 탄력세율인 42원과 63원까지 세율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등유의 세율을 경감하여 등유와 경유 사이의 가격 차이가 더 커질 경우, 가격이 싼 등유를 비싼 경유에 혼합하여 ‘가짜 경유’를 판매하는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법집행에 있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아온 원자력과 유연탄에 대해 과세하고, 전기와 대체 관계에 있는 에너지원인 액화천연가스와 등유의 세부담을 경감한다면, 에너지원 사이의 과세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기요금을 비롯한 에너지 가격체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전기와 전기 대체 에너지원 사이의 가격 역전 현상을 바로 잡는다면 전기로 집중되고 있는 에너지 수요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세제가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의 열쇠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