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 자제해야

오승훈/문화일보 경제산업부 부장대우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 결정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제1 원칙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가격형성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시장실패가운데 하나인데, 이때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최대한 정상화하려고 한다. 정부가 가격통제를 통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법치국가에서는 정부가 무조건 가격통제를 할 수는 없다. 그 요건을 법률로 정해놓는다. 우리의 경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명시돼 있다. 독과점 시장에서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생산업체간 가격 담합 등 불공정 거래가 이뤄진 경우다.

하지만 정부는 법률에서 정해진 것 보다 훨씬 더 폭넓은 이유를 앞세워 시장에 개입해왔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명분이 물가 안정과 소외 계층 배려다. 이를 내세워 공급자인 기업들을 압박한다. 정부가 이들 기업들에게 가격을 내려라, 올려라 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다양한 행정수단들이 등장한다. 기업이 가격을 조정할 수밖에 없는 정책들을 전방위로 구사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해당 업계의 자율결정이라는 식으로 포장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정부의 시장 개입 패턴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기름값일 것이다.

최근에 한 정유업계 관계자가 사석에서 들려준 일화가 흥미로웠다.  지난 20111월 중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언급한 뒤에 정유업계를 향한 정부의 기름값 인하 압박이 거세졌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발언 직후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TF팀을 구성해 가격을 재구성하겠다"고 나섰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또한 "회계사 자격증이 있는 내가 직접 기름값 원가 계산을 해보겠다"고 거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정유4사의 주유소 원적지 관리를 담합행위로 규정하는 심사보고서를 냈다. 이에 궁지에 몰린 정유업계는 손해를 감수하고 그해 4월부터 3개월간 휘발유경유 가격을 리터당 100원씩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은 소비자에겐 인하효과가 미미했다. 원유가에 연동되는 기름값의 가격구조에서 고정비용이나 마찬가지인 세금을 그냥 놔둔 채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을 줄인다고 해결될 게 아니었다. 일부 주유소들은 유통마진을 남기려 불법 석유를 팔고 탈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유사들은 당시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050% 감소했다. 꼬박꼬박 세금을 걷어간 은 정부를 제외하곤 득을 본 쪽이 없었다.

 그 즈음 국내에서 기름을 사가는 해외 수입업체의 대표가 그 정유업계 관계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정유사의 순이익이 단기간에 감소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수입업체 대표는 "시장가격이 있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도 아니고. 한국에선 정부 자체가 리스크(risk)인가?"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외국 사업가의 눈에 한국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외환 리스크도 아닌 정부 자체가 시장의 위험요소로 비쳐졌던 셈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당시 이명박정부가 기름값을 잡겠다며 거세게 몰아붙였던 정책수단들이 대부분 실패로 결말이 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근 주유소보다 100원 저렴한 알뜰주유소의 개설(20111229), 정유사들의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기 위해 유통구조 혁신을 내걸고 도입한 석유전자상거래제도(2012330)와 폴 주유소에서 타사 석유제품이나 수입품을 섞어서 판매할 수 있는 석유혼합판매제도(201296) 가 그렇다.

석유전자상거래는 공급자간 경쟁을 촉진시켜 기름값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시행됐다. 정부는 당시 석유전자상거래에 참여할 경우 석유 수입사들에게 16원의 석유수입부과금 환급, 수입제품에 대한 할당관세 3% 감면, 바이오디젤 2% 혼합의무 면제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하지만 정유사들로선 석유전자상거래 가격과 기존 주유소 공급가가 비교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입석유에 대한 정부의 유인책들은 유일하게 국내 석유제품의 품질 기준을 충족하는 일본 수입업체들의 배만 불려놓았다.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대일무역 적자만 키운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기름값을 낮추는 구조의 비극이었다.

유통구조 혁신정책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자 박근혜정부 들어 정책당국의 고민이 깊어졌고, 급기야 최근 석유전자상거래에 수입제품에 대한 할당관세 3% 면제혜택을 오는 7월부터 없애기로 했다. 바이오디젤 혼합 의무 면제혜택도 지난 515일 폐지됐다. 석유 수입사들에게 주어지던 두 가지 혜택을 제도 시행 14개월만에 모두 없앤 것이다.

다만 16원의 석유 수입부과금 환급 제도만 1년 연장하기로 했다. 수입제품에만 주어지던 인센티브가 만료돼 거의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이 가능해진 국내 정유사들이 석유전자상거래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정유사들의 참여로 전자상거래의 공급물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경쟁이 심해지고 이는 가격 인하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수입사와 정유사가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된 만큼 추가 가격 인하 요인이 별로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유인책이 또다시 한시적으로 끝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알뜰 주유소 문제는 더 복잡하다. 정부는 알뜰주유소가 매월 증가해 연말에는 목표치인 1000개를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5월 현재 전국의 알뜰주유소는 922개로 전체 주유소 13000개의 7%를 넘어섰다. 하지만 수요의 중심지인 서울에서는 땅값 등의 이유로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게다가 파격적인 정책적 배려와 국가 재정 지원, 그리고 운영주체인 농협과 한국석유공사의 출혈에 따라 유지될 수밖에 없는 알뜰주유소의 지속가능성은 매우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국내 4개 정유사의 기름만으로도 공급이 넘쳐나고 있는 실정인데, 이처럼 비정상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해야할 명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지원을 계속하는데 대해 부담일 수밖에 없다. 국내 정유사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고, 농협과 석유공사가 부실해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기름값이 비싼 진짜 이유는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 때문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부수적인 문제만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데 대한 업계의 반감도 큰 부담일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정부의 통제간섭정책은 자주 시장을 왜곡시킨다.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킬뿐더러 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의 선순환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마치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이라고 비꼬았다. 정상적인 경기가 될 리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경쟁력 평가 중 정부규제 부담 부문에서 2011년 기준 평가대상 총 142개국 가운데 117위를 기록하는 등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 실패'가 나타나면, 가격결정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그에 앞서 가격은 시장경제의 근간이면서 최후의 보루이다. 기업의 가격 결정권은 중대한 위법이 없는 한 존중해야 한다는 게 시장 경제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들을 무시한 정부의 무리한 시장개입은 시장에서 더 큰 왜곡을 초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