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관세 인하, 고유가의 대안이다

조창익 한림대 교수

20세기 후반 이래로 국제 경제는 개방화와 세계화의 기치 아래 급변하고 있으며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자본, 인력의 국제적인 이동에 있어서도 그 규모가 크게 증대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의 부존여건과 생산조건이 열악한 탓에 그 수요의 충당을 위해 전량 혹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원재료 혹은 일부 제품에 있어서는 생산국이 처한 다양한 상황에 따라 그 수입가격이 크게 변화하고, 이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서민생활물가의 요동과 불안정 및 실질소득의 감소 등에 가공할 만한 위협을 주는 존재가 되어 왔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원료 및 중간재에 대한 관세 정책은 항상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어 왔는데, 이는 중간재에 대하여 관세 유지를 통해 우리나라 중간재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무세화를 통해 중간재 가격을 하락시키고 이에 따라 최종재의 생산 및 수출을 증가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2004년 칠레와의 FTA 시행 이후 최근까지 총 8개의 FTA를 체결 및 발효함으로써 원재료와 완제품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공산품의 관세율을 철폐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향후 중간재와 완제품간의 세율 불균형 논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바, 중간재에 대한 관세율 정책은 FTA 시대에 더욱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며 이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겠다.

일반적으로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입하는 원재료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수입가공품에는 관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경사관세(tariff escalation)제도를 적용하고 있. 이렇듯 가공도에 비례해서 관세율을 높게 부과하는 관세율 구조를 채택하는 이유는 완제품에 대한 관세 이외에 완제품에 사용되는 중간투입물의 수입 관세까지 고려하여 최종생산물의 생산과정 자체에 대한 보호 정도를 높이기 위함으로 인식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자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무세화 하겠다는 기본 방향을 설정하여 특히 석탄, 철광석 등 산업에서 원유와 같이 필수적인 원재료에 대해서는 0%의 수입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원유는, 수출에서 큰 비중을 담당하고 있는 정유산업의 핵심 원재료이자, 석유화학이나 철강과 같은 국가 기간산업의 에너지원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3%의 기본관세가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원유에 대한 할당관세(일정 수량까지는 면세 혹은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고, 그 이상의 수입량에는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다단계 관세부과제도)의 적용은 고려하지 않고 여전히 휘발유와 경유, 등유 등 5%의 기본관세율이 적용되는 수입 석유제품에 대해서는 3%의 실행관세율을 부담토록 하는 정책은, 실제 수입물량이 극히 제한적인 석유제품에는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유가 인하의 효과가 높은 원유를 배제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는 국제유가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정부가 원유에 대한 관세부과를 통한 세수입의 증가 혜택을 받아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과연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심대한 회의를 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원유수입 물량이 2011년 기준으로 월평균 약 7,700만 배럴에 달하는 것을 감안할 때, 무관세가 적용되는 나프타 제조용 원유, 석유 수출 물량에 대한 관세 환급분 등을 제외하더라도 2010년도 대비 2011년에 징수한 원유 관세액은 매월 최소 수백억 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현재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휘발유, 경유 등 가공제품이 아닌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하여 미국, 호주, 멕시코 등 네 나라뿐이다. 그러나 미국은 0.1~0.2%, 호주도 0.3~0.4%로 매우 낮은 관세율을 부과하고 있으며, 현재 10%의 높은 수입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멕시코의 경우에도 산유국으로서 전체 원유 소비의 고작 0.4%만 수입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의 수입원유에 대한 관세의 부담은 실로 엄청나게 높은 규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필자가 참여한 연구의 결과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수입원유에 부과된 관세를 인하할 경우 궁극적으로 국민 경제적인 효과도 높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관세 인하를 통한 원유 관세수입 감소는 7,190억 원17,980억 원이고, 나프타 제조용 원유를 제외할 경우 원유 관세수입 감소는 5,870억 원14,670억 원 정도 예상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세인하의 긍정적인 효과로서, 먼저 원유에 대한 관세율 인하는 석유제품 전반의 가격을 하락시켜 이를 중간재로 사용하는 산업전반의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석유의 투입비중이 높은 업종인 농림수산업, 비연료광업, 펄프지류, 기초화학, 비금속광물제품, 도소매, 음식숙박, 운수보관, 열공급업, 화력발전 등의 원가경쟁력이 기타 업종들 대비 상대적으로 크게 개선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현재 CIF(수입항도착가격) 기준으로 3%의 원유 관세를 무관세로 인하하게 되면, 휘발유, 경유 등 수송용 제품뿐만 아니라, 산업용 및 발전용 제품에도 영향이 미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름값이 최대 2.7%까지 인하되면서, 전체 소비자 물가는 0.24%p 인하되고 가계 전체 소비자 후생은 약 1조원(가계당 평균 약 72천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총소득 가운데 난방과 영업 등을 위해 필수적으로 소요되는 에너지 소비지출의 비중이 높은 저소득계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소득 대비 최대 4배 정도까지 유리해져 계층간의 소득재분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물류·석유화학·서비스 등 주요한 연관 산업의 경쟁력이 보다 강화되어 기초화학 등 제조업에서 2,200여 명, 운송·도소매 등 서비스업 약 8천 명 등 국가적으로 고용 면에서 총 1만여 명 가량 증가할 것으로 분석되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관세인하는 앞서 말한 대로 정부의 조세수입의 감소를 초래하여 국가재정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반된 견해에 대해 정부 당국이 정책적인 딜레마에 빠질 수 있음은 당연히 예상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여전히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고, 최근의 중동정세 및 이집트 사태 등으로 인하여 국제유가가 향후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늘 도사리고 있는바, 운송이나 철강, 양회, 석유화학 등의 국가 기간산업에 소요되는 연료비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이야말로 국가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원유 수입관세율의 인하 및 폐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또한 물가관리가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는 국면에서는 경제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원유 도입단계(이를 통상 upstream이라 한다)에서의 관세인하 및 폐지는 물가관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이러한 보다 광범위한 효과를 위해서 정부의 전향적인 움직임을 기대해 본다.